평창올림픽경기장, '천덕꾸러기' 신세? 직접 가서 봤더니

[르포] 올림픽·패럴림픽 후 7개월... '굴욕'도 있지만 '모범'도 있다

등록 2018.10.19 14:18수정 2018.10.1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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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계리 일대의 올림픽 기념 시설 조감도 뒤로 평창 올림픽 프라자를 상징하는 국기광장이 보인다. ⓒ 박장식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폐막한 지 약 7개월이 지났지만 올림픽 경기장에 대한 관심은 식지 않고 있다. 경기장 사후 활용 문제를 두고 여러 언론사에서 경기장 일대를 찾아 시설이 잘 관리되고 있는지,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시설들은 어떻게 관리되는지 취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경기장들과 올림픽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되었던 건물들은 잘 활용되고 있을까? 특히 언론에 연일 보도되는 몇몇 시설들이 정말로 천덕꾸러기 시설일까? '평창의 감동'을 찾기 위해 방문한 관광객들이 올림픽을 기념할 시설 하나 없어 모두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사실일까?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평창과 강릉 일대로 향했다. 올림픽을 위해 마련되었던 장소와 경기장, 그리고 건물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예산과 시간이 투입된 시설들이 올림픽과 패럴림픽 폐막 후 7개월이 되어가는 현재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일반인들도 컬링을 체험할 수 있는 강릉컬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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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컬링센터는 일반인들의 컬링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사진은 지난 5월 3일 '강릉선 KTX와 함께하는 영미 컬링 체험열차' 팸투어 모습. ⓒ 연합뉴스

 
강릉 올림픽 파크에는 네 개의 시설이 있다. 스피드스케이팅센터, 하키센터, 아이스아레나, 강릉컬링센터. 이 시설들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올림픽 시설의 사후 활용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강릉컬링센터는 태평양-아시아 컬링 선수권 대회를 유치해 11월 3일부터 국제 경기가 열린다.

강릉컬링센터가 국제 경기를 위한 장소만으로 사용되는 것 아니다. 강릉컬링센터는 일반인들이 컬링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코레일관광개발 등에서 '컬링 체험 기차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등 모범적인 활용 방안을 제시했다. 컬링 체험을 위한 패키지 상품뿐만 아니라 개인도 컬링 체험을 예약하면 장비를 대여해주고 컬링을 강습하는 등 초보자도 쉽게 선수들을 따라 할 수 있다.

아이스아레나는 강릉 컬링 센터가 기존에 갖던 체육관의 입지를 완전히 대체하려는 모양새다. 아이스아레나는 수영장, 실내 체육 시설 등 빙상장뿐만 아니라 다목적 체육관으로 변모할 전망이다. 영동 지역 최대의 실내공연장으로의 활용도 돋보인다. 이미 피겨쇼가 개장 이후 여러 번 개최되었고 오는 27일에는 나훈아 콘서트까지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다.

강릉 선수촌과 미디어촌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유천지구에 위치한 선수촌과 미디어촌 3400여 세대는 이미 민간 분양이 완료되어 일반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관람객과 선수 등을 싣고 KTX가 오갔던 강릉역은 지금도 경강선 KTX가 운행할 뿐만 아니라 올림픽으로 인해 4년간 정동진에서 발이 묶였던 태백선, 영동선 무궁화호가 다시 운행하는 등 올림픽 이후에도 많은 이들의 발길이 오가고 있다.


'냉동창고 제안 굴욕' 빙상시설들
 

철거 진행중인 강릉 올림픽파크 강릉 올림픽 파크의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 뒤로 이번 올림픽 최대 시설 중 하나인 강릉 오벌이 눈에 띈다. ⓒ 박장식

 
다만 스피드스케이팅센터와 하키센터는 활용 방안이 두루뭉술한 상태로 훈련장만으로의 활용은 아까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스피드스케이팅센터의 경우 '냉동창고로 사용하고 싶다'는 식품업체의 당혹스러운 제안이 들어오는 등, 돔 축구장에 필적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에 비해 제대로 된 사용처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다.

하키센터의 경우 원 목적대로의 활용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국과 일본, 러시아가 참여하는 아시아 아이스하키 2018-2019리그가 개최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안양 한라, 하이원 등 세 개의 팀이 참여하고 있는데, 강릉 하키 센터를 홈으로 삼는 프로팀을 유치하거나 일부 경기에 한해 중립경기를 치르도록 지원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

스피드스케이팅센터(강릉 오벌)의 경우 눈과 비가 잦은 강릉시의 특성을 고려해 시민체육시설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캐나다 리치먼드 오벌의 모범사례처럼, 축구장이나 테니스장 등을 아이스링크와 가변으로 운영할 수 있게 개조하는 등의 슬기로운 활용방안이 필요해 보인다. 강원FC나 평창FC 등 프로나 실업 축구단의 '돔 축구장' 입주도 고려할 만하다.

횡계에 볼거리 없어 돌아간다?
 

평창 동계올림픽 흔적이 남은 올림픽 프라자. 왼쪽부터 기념 조형물, 경기장 일부 시설, 성화대, 정보통신기술관이다. ⓒ 박장식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는 올림픽 당시 스타디움이 위치했던 평창 올림픽 프라자가 있어 가장 북적였던 곳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평창 올림픽 흔적을 찾아 횡계리로 향했다가 허허벌판 빈 땅만 보고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보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애초 철거할 계획이었던 주경기장은 올림픽을 기념하는 공원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강원도는 2020년까지 기념관, 챔피언의 벽 등을 포함한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로 인해 폐막 직후부터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고 시민들은 개방된 국기광장에서 올림픽을 추억하고 먼발치의 성화대, 스타디움의 파사드를 볼 수 있어 '전혀 볼거리가 없다'는 주장이 완전히 맞지는 않는 셈이다.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알펜시아 스키점프타워는 올림픽 개최가 확정되기도 전인 2008년 개장되어 이미 관광명소로 활용되고 있다. 알펜시아 스키점프 센터에 대해 잘 알고 평창을 방문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올림픽 플라자 일대를 지나가듯 구경한 다음 지근거리의 알펜시아 스키점프 센터로 향했다.

횡계 주민들은 '찾는 이 없는 허허벌판'이라는 언론의 과도한 프레이밍에 분노하기도 했다. 횡계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주민은 "횡계가 유령도시가 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화가 났다"며 "원래 횡계는 겨울철에 스키장에서 일하는 사람, 스키를 타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지금 같은 때에는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이 당연한 것"이라며 언론 보도에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메인프레스센터는 영화관으로
 

국제방송센터(IBC)는 평창 올림픽 당시 재고품을 판매하는 아웃렛이 되었다. 사진 위는 IBC의 현재 모습,아래는 매장 전경. ⓒ 박장식

 
강원도개발공사가 관리를 맡은 알펜시아 일대는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 센터와 바이애슬론 센터는 여름에 골프장으로 사용되고 겨울에는 스키장으로 돌아온다. 지난 8월에는 이곳에서 전국롤러스키대회가 열렸다. 대부분의 동계종목 경기장이 여름에 사용 방안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계절 모두 사용하는 현재의 상황은 모범적인 셈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메인프레스센터로 사용되었던 알펜시아 컨벤션센터 역시 활용되고 있다. 리조트 일대를 찾는 관광객과 지역주민을 위해 최신작을 상영하는 알펜시아 영화관은 기자회견장을 다시 활용했고, 컨벤션센터는 기업 워크숍 등에 활용되고 있다. 또 평창 미디어촌은 관광객을 위한 콘도로, 평창 선수촌은 분양되어 시민들의 주거지가 되었다.

국제방송센터(IBC)는 현재 올림픽 재고품을 판매하는 '아웃렛'이 되었다. 포장도 뜯지 않은 소형 TV나 여러 공구, 올림픽 당시의 기념품 등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11월까지 개장하는 IBC 재고품 판매장이 폐점하면 국립문헌정보관 입주공사가 착수된다. 거대한 규모의 IBC 재활용 방안으로 제격인데다 고용 창출을 기대할 수 있지만, 올림픽 시설물 사용료 문제가 남아있어 해결이 필요하다.

존폐 기로에 서 있는 슬라이딩센터
 

어떻게 쓸까... 고민 중인 슬라이딩 센터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의 모습. 현재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채 작업차량만 드나들고 있다. 활용 방안을 놓고 꽤나 큰 격돌을 보이는 장소이다. ⓒ 박장식


마운틴 클러스터 중 가장 큰 논란 속에 빠진 정선 알파인 경기장은 접근성이 떨어지는데다가 이후 활용방안이 미지수인 상태다. 이미 망가진 자연을 복구 명목으로 다시 훼손한다는 우려도 있고 가리왕산을 복구하기위해 더 큰 예산을 소모할 우려도 있다. 돈을 써서 복구하기도 어렵고, 환경단체의 비판 탓에 스키장으로 운영하기에도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국내 스키장의 더블블랙 다이아몬드(최상급자) 코스의 슬로프 중 대부분이 중급자, 초급자 코스와 병용구간이 있어 쾌적한 활주가 어렵다는 점에서 정선 경기장의 활용방안이 보인다. 주변 리조트에서 차량으로 40분 걸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주변 리조트 등이 최상급자 전용 코스로 인수해 활용하는 것 역시 이미 설치된 스키장을 슬기롭게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알펜시아 권역에서는 유일하게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한 슬라이딩센터는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슬라이딩 센터 역시 국내 유일한 썰매 시설이라는 점에서 유지가 필요하지만, 많은 운영비가 발목을 잡고 있어 지자체와 정부 사이의 '떠넘기기'가 이어지고 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휘슬러 슬라이딩 센터는 올림픽 이후 일반인을 위한 봅슬레이, 스켈레톤 체험시설을 운영하며 수익을 올리고 있다. 여름에도 바퀴 달린 봅슬레이 썰매로 트랙을 달릴 수 있는 시설을 운영해 사계절 활용 가능한 체험시설의 모습이 돋보인다. 이렇듯 높아진 설상 종목의 관심에 힘입어 체험 겸용 시설로의 재개장 역시 좋은 해답이 될 수 있다.

찾아온 이들도 함께하는 방향으로
 

알펜시아 리조트 내의 수호랑 하우스에서는 올림픽 기념물을 전시하고 있다. ⓒ 박장식

 
평창 동계올림픽의 유산은 남북 화해무드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고,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개최한 스포츠 축제 중 가장 안정적으로 개최되었다는 경험을 얻은 데 있다. 하지만 일부 시설물이 '하얀 코끼리'(많은 돈이 들었지만 수익성이 없고 쓸모없는 투자 시설)의 오명을 뒤집어쓸 위기에 처한 것은 안타까운 점이다.

하지만 이런 올림픽 시설들은 얼마든지 유산으로 다시 활용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 88 서울올림픽 당시 사용되었던 올림픽역도경기장을 복합문화공간인 우리금융아트홀로 바꾼 사례가 있고, 올림픽펜싱경기장은 SK 슈가글라이더즈가 입주한 핸드볼 경기장으로 성공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종목, 나아가 '운동시설'이라는 고정관념만 깨면 얼마든지 다양한 활용이 가능한 셈이다.

평창 올림픽 대회 유산에 대한 활용 방안이 좋은 방향으로, 단순히 엘리트 체육인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강릉, 평창 시민을 위한 시설을 넘어 올림픽의 기억을 찾아 방문한 관광객들도 함께할 수 있는 방향으로 향했으면 한다. 전 국민의 염원을 담은 올림픽의 진정한 성공과 추억의 방향타는 이들 시설물의 사후 활용에 달린 셈이니 말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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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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