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디지털 지도와 조선의 강리도, 놀라운 공통점

[지도와 인간사] 강리도, 아프리카의 희망을 담다

등록 2018.10.10 10:54수정 2018.10.1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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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꼭 616년 전, 조선이 개국한지 10년 차 되던 해인 1402년에 우리 선조들이 그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이하 강리도)라는 세계지도. 거기에는 많은 수수께끼가 담겨 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거대 호수 혹은 내해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이번 호의 탐험 주제입니다.
 
먼저 강리도에서 서방 부분의 개념을 파악해 봅니다. 아래에서 보다시피 지중해와 흑해에는 바다 색깔이 누락되어 있습니다. 상상으로 채워 넣고 살펴 봅니다.
 

강리도 서방부분의 개념도 ⓒ 위키 피디아

 
이제 다음 지도들을 관람해 봅니다. 15세기-16세기에 한양에서 만들어진 강리도의 몇몇 판본(모두 일본에 있음)에서 아프리카의 모습만 떼어 온 것입니다. 첫번째는 15세기에 제작된 것으로서 현재 일본 교토의 류코쿠대학 소장본에서 따온 것이고, 두 번째는 16세기 것으로 현재 나가시키현의 혼코지(本光寺) 소장본에서, 세 번째는 일본 나라시의 텐리(天理)대학 소장본에서 옮겨 온 것입니다.
  

강리도 류코쿠대본 아프리카 ⓒ <대지의 초상>

 
 

강리도 혼코지본 아프리카 ⓒ <대지의 초상>

 

강리도 텐리대본 아프리카 ⓒ <대지의 초상>

 
이처럼 모든 판본의 아프리카 대륙에 동일한 형태의 거대 호수(혹은 내해)가 확실히 그려져 있습니다. 확신에 차 있는 모습입니다. 면적을 보면 전체 대륙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으로 시선을 내려 보면, 산과 강이 그려져 있고 그 위로 강줄기 하나가 구불거리며 북상하여 호수와 합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시선을 거대 호수의 북단으로 옮겨 가 봅니다. 호수에서 흘러나온 강줄기가 북상하여 지중해로 사라집니다.

호수 가운데 약간 위쪽의 둥근 원 안에 '黃沙'라는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 사하라 사막을 가리킨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이러한 아프리카의 형상을 그리고 있는 지도는 강리도 외에는 중국의 대명혼일도가 유일합니다.
  

대명혼일도 아프리카 ⓒ <대지의 초상>

 
강리도의 수수께끼

필자가 이전에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근래 서양의 저명한 역사지리학서들이 강리도를 조명하는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세계사 책 ⓒ 김선흥

 
그렇다면 서양의 강리도 연구가들은 아프리카의 독특한 거대 호수(혹은 내해)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직 확립된 정설은 없습니다. 추측과 상상의 영역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수수께끼에 대하여 근래에 몇몇 학자들이 흥미로운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영국 학자의 글을 소개합니다.
 
"나는 지금 BBC의 아프리카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중이다. (...)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듯이 아주 옛날에는 사하라 사막이 대평원(사바나)이었다. 매우 놀랍게도 옛날 한 때 이 대평원의 심장부에 세상에서 가장 큰 호수가 존재했다. 그게 기후변화로 증발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강리도를 떠올렸다. 제리 브로톤(Jerry Brotton)의 명저 <12개의 지도로 본 세계역사>(A History of the World in Twelve Maps, 2012)라는 책에서 나는 강리도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강리도는 1402년 당시의 세계를 묘사한 동아시아 최초의 세계지도이다. 중국인과 한국인들은 실로 지도 천재들(prodigious cartographers)이었다. 강리도는 그러한 전통이 낳은 놀라운 작품이다. 강리도가 지도의 역사에서 의미심장한 까닭은 중동, 유럽(비록 왜곡되어 있고 지중해에는 바다색이 누락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아프리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중앙에 뻥 뚫린 거대 공간이 있다. 입을 크게 벌리고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공간에 대하여 브로톤(Brotton)은 이렇게 적고 있다.

'강리도는 우리에게 지금 익숙한 아프리카 남단을 포함한 아프리카 대륙을 보여준다. 아주 특이한 점은 아프리카 대륙에 거대한 호수같은 것이 나타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하라 사막을 가리키는 지도 모른다.'(118-119). 이 점에 있어서는 제리 브로톤이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이런 크기의 호수는 강리도가 창조되기 이전에 5천년의 세월에 걸쳐 사라졌던 호수일 수밖에 없다. 그 호수가 변하여 오늘날 사하라 사막이 된 것이다. 그러한 정보가 어떻게 강리도에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중국 고지도 문헌에서 고대 아프리카의 거대 호수에 대한 언급이 있었을 수 있다.

그러한 내용이 여과없이 강리도 제작자에게 전달되었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좀 상상력을 도약시킨다면 강리도의 거대 호수에서 고대 아프리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 Dr James Baker, 서섹스대(University of Sussex) 역사학 교수

흥미롭지 않나요? 정작 우리는 그 존재도 모르고 있거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우리 고지도의 아프리카 형상을 현대의 영국 역사가가 고고학적 증거로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옳고 그르고는 다른 문제로 하더라도). 

강리도에 그려진 아프리카의 거대한 호수 
 

<지도의 역사> 우드워드 편집장 ⓒ 김선흥


편집장으로서 <지도의 역사>(HISTORY OF CARTOGRAPHY)라는 대작(위 사진)을 펴내었던 고 데이비드 우드워드(David Woodward) 박사가 아시아편(약 1000쪽) 표지에 강리도를 실은 바 있음은 예전에 설명한 바 있습니다. 지도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우드워드 박사는 강리도의 아프리카 거대 호수 혹은 내해를 어떻게 보았을까요?  그는 <조우>(ENCOUNTER)라는 책에 기고한 논고에서 이런 요지로 설명합니다. 
 
"강리도 아프리카 내부에는 거대한 내해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아마도 챠드(Chad)호수와 고대 지리학에서 나일강의 원천으로 여겨졌던 두 호수에 대한 정보를 융합(conflation)해 놓은 결과로 보인다." - <ENCOUNTER> P. 27

여기에서 우드워드가 제시한 챠드호는 수수께끼를 푸는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옛날의 챠드호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챠드호와는 그 규모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는 사실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서양과 통해 있던 엄청나게 큰, 말 그대로 내해였습니다.

강리도에 거대호수가 바다 무늬와 색깔로 그려져 있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일 겁니다. Mega-Chad라고 불리는 옛날의 챠드호가 가장 컸을 때에는 깊이가 180 미터, 면적 4만 평방 미터에 달하여 오늘날의 카스피해보다 더 컷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챠드호가 유럽인에 의하여 최초로 측량된 것은 1823년이었는데 그 때에도 세계에서 제일 큰 호수 중의 하나였습니다(참조: 위키 피디어, 브리타니카).

강리도의 거대 호수 혹은 내해가 옛날의 메가 챠드호 및 여타 거대 호수들을 융합한 것이라고 보면 수수께끼가 풀릴 수 있습니다. 아래는 메가 챠드호와 옛 콩고호 등을 그린 상상도입니다. 강리도의 거대호수가 연상되는 지도입니다.
  

아프리카 거대 호수 상상도 ⓒ Bafsudralam.blogspot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강리도에 그려진 아프리카 거대호수 혹은 내해는 우스꽝스러운 오류라기보다는 과거 어느 한 때의 지리적 형세와 정보를 담고 있는 소중한 기록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단지 그 시점과 관점이 현재와 다를 뿐이지요.

한편 현재의 아프리카는 강리도에서처럼 거대 호수로 가득 찬 대륙과는 딴판입니다. 아프리카에는 세상에서 제일 크고 제일 뜨거운 사하라 사막이 펼쳐져 있고 사막화와 가뭄, 식수 부족 등의 문제가 상존해 있으니까요. 강리도의 아프리카가 첫 눈에 엉뚱하게 보이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지표에서 지하로 옮겨봅니다. 지하의 수자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래 왼쪽 지도는 영국의 지질 조사기관이 디지털 기술로 만든 지도(2011)로 지하수의 분포를 보여줍니다. 청색의 농도는 지하수의 지표로부터의 깊이를 나타냅니다. 짙을수록 지표면에서 가깝습니다. 오른쪽 지도는 연간 배수량을 나타내 주는 지도입니다.  청색이 짙을수록 배수량이 많습니다. 두 지도를 강리도와 대조해 보면 전체적으로 유사한 형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지하수 지도 지하수 지도 ⓒ 영국 지질 조사기관 및 WaterWiki. N

 
 

강리도 재현본 교토대 소장 ⓒ <대지의 초상>

 
앞으로 여기 담긴 지하의 수자원을 식수 및 농업 용수로 충분히 활용한다면 아프리카는 새로운 미래를 맞을 것이고 그 때 강리도의 거대 호수를 살펴 보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여기에서 강리도는 과거와 미래를 만나게 해주는 교량이 됩니다. 이 거대 호수에는 옛 아프리카 뿐 아니라 현재 및 미래의 아프리카가 담겨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선조들이 600여년 전에 세계지도에 옮겨 놓은 아프리카의 거대 호수는 언뜻 보면 얼토당토 않은 오류 같지만 알고 보면 이처럼 중층적인 의미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강리도의 가치와 매력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거대 호수에 대한 원천 정보는 어디에서 왔던 것일까요? 원천이 되었던 실물 지도가 존재했던 것일까요? 그 내용은 무엇일까요? 다음 호에서 탐색해 보겠습니다.
#강리도 #아프리카 #메가 챠드 #아프리카 지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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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만남이길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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