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탈원전 성과 왜곡하는 우리나라 국회의원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30] 독일의 경험 (하)

등록 2018.10.08 10:34수정 2018.11.0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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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오염, 그리고 후쿠시마 참사가 보여준 원전재난의 가능성은 '더 이상 위험한 에너지에 기댈 수 없다'는 깨달음을 확산시키고 있다. 지난해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으로 본격화한 탈핵 논쟁은 우리 사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에너지체제를 전환할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할 시험대가 되고 있다. <단비뉴스>는 기후변화와 원전사고의 재앙을 막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에너지구조'를 만들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모색하는 심층기획을 연재한다. - 기자 말

[기사수정 : 8일 오후 6시]

여름으로 막 접어든 지난 5월 21일 오후, 독일 전역의 태양광 패널들이 쨍쨍 내리쬐는 햇볕 아래 일제히 반짝이며 기록적인 양의 전기를 만들었다. 전력망 관리기관인 연방통신청(BNetzA)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쯤 독일에서는 태양광, 풍력, 바이오매스 등 재생에너지로만 50.3기가와트시(GWh)의 전기가 생산됐다. 이는 같은 시간대 전력수요량 49.7GWh를 초과하는 양이다. 전체 전기 수요량의 100퍼센트(%) 이상을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충당한 것이다.

재생에너지로 일시적 전력 수요 100% 충당도

이날 독일에서는 풍력발전으로 시간당 15GWh 정도의 전기가 꾸준히 생산되다 햇볕이 강한 오후 시간대에 태양광발전량이 28.2GWh까지 치솟았다. 전체 전기수요량보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은 시간대는 이날 정오부터 오후 2시경까지 2시간여 동안 지속됐다.
 

지난 5월 21일 독일의 재생에너지 전력생산 현황. 낮에 태양광 발전량(노랑)이 급증하면서 낮 12시부터 2시간여 동안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전력수요(빨간색 실선)를 초과했다. 맨 아래부터 위쪽으로 바이오매스(초록), 수력(하늘색), 해상풍력(파랑), 육상풍력(짙은 청색), 태양광(노랑), 양수발전(검정) 전력량이다. ⓒ 독일 연방통신청(BNetzA)

 
독일에서 특정 시간대 전기 수요량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 것은 올해 1월 1일이 처음이었다. 당시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태양광 없이 풍력, 수력, 바이오매스만으로 전국의 전력수요를 거뜬히 감당했다. 노동절이던 지난 5월 1일에도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태양광 발전량이 급증하면서 전체 수요를 넘어서는 재생에너지 전기가 생산됐다.

독일에서는 재생에너지 외에도 석탄, 원자력 등으로 기저부하(일정한 기간 지속적으로 가동) 전기를 생산하기 때문에 남아도는 전기는 유럽통합전력망(ENTSO-E)을 통해 인접 9개국에 수출된다. 5월 21일의 시간당 최대 전력 순수출량은 오후 1시 13.7GWh였다(상업 거래량 기준).

남아도는 전기를 수출하다


독일은 이미 지난 2003년부터 전기 수입량보다 수출량이 많은 '순수출국(net exporter)'이다. 특히 2011년 후쿠시마 참사를 계기로 '탈원전'을 확정한 후에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본격적으로 늘면서 8개의 원전을 멈추고도 순수출 규모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에너지전환 연구기관인 아고라 에네르기벤데와 유럽통합전력망 통계를 종합하면 독일의 전력 순수출 규모는 2011년 6테라와트시(TWh)에서 2017년 55.4TWh로 6년 만에 거의 10배 가까이 늘었다.
 

2011년 이후 독일의 전력 순수출량 추이. 탈원전을 확정한 후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급증하면서 순수출량이 6년간 10배 규모로 증가했다. ⓒ 나혜인

 
특히 독일은 '원전대국'이라 불리는 프랑스에도 전기를 수출한다. 독일이 프랑스에 수출하기로 계약한 전력량은 2015년 13.7TWh에서 2016년 14.4TWh, 지난해 17.5TWh로 해마다 늘고 있다. 독일 역시 전력 상황에 따라 프랑스로부터 전기를 수입하지만, 이는 수출량의 20~30% 수준에 그쳐, 프랑스에 대해서도 '순수출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상업거래량 기준).

'탈원전'에 반대 논조를 보이는 일부 언론은 재생에너지전환 때문에 독일의 전기가 모자라 프랑스 등에서 수입하는 것처럼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7월 31일 자 파리특파원 리포트를 통해 "유럽연합(EU) 통합전력망을 통해 인근 9개국과 송전선을 연결해 놓고 있는 독일은 항시 전기를 수출하고 수입하는데, 2016년의 경우 전체 수입량의 32%가 원전 대국(大國) 프랑스에서 왔다"며 "국경 바로 너머의 프랑스 원전에서 전기를 끌어오기 때문에 탈원전이라고 하기에 궁색하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라고 썼다.

<세계일보>도 지난 7월 19일 자 논설위원 칼럼에서 "아직은 원전을 대체할 만한 확실한 에너지원이 없다"며 "탈원전을 선언한 독일, 스위스는 송배전 전력망이 잘 갖춰져 '원전 부국'인 프랑스에서 전력을 싸게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언론은 유럽 인접국들이 전력수급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거래를 하는 구조에서 독일이 전체 전력 수출입에서도, 프랑스와의 거래에서도 수입보다 수출이 많은 순수출국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개선되는 무역수지, 강해지는 에너지 안보

자기 땅에 무한대로 내리쬐는 햇볕과 사시사철 부는 바람을 활용하는 에너지전환은 독일의 무역수지 개선과 에너지 안보에도 기여하고 있다. 독일은 석유의 98%, 무연탄과 가스의 90%, 원자력발전 원료인 우라늄의 100%를 수입하기 때문에 에너지 수입이 늘 무역적자의 주원인이었다. 하지만 태양광, 풍력, 바이오매스 등 원료 수입이 필요 없는 재생에너지에 박차를 가하면서 2014년의 경우 전년 대비 80억 유로(약 10조5000억 원) 상당의 에너지 수입을 줄였다.

독일 녹색당의 싱크탱크(연구기관)인 하인리히 뵐 재단의 스테파니 그롤 환경정책·지속가능성 부장은 지난달 20일 <단비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화석연료·우라늄보다 비싸 보이던 재생에너지 가격이 내려가면서 기존 에너지원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며 "에너지 수입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함으로써 독일의 에너지 안보는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인리히 뵐 재단의 스테파니 그롤 환경정책·지속가능성 부장. 정치학 박사인 그는 탈석탄과 기후변화 대응에 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 하인리히 뵐 재단

 
저항하던 재계도 재생에너지 사업 박차

독일의 에너지전환 과정에서도 산업계의 반발은 있었다. 아고라 에네르기벤데의 프리츠 포어홀츠(65) 박사는 지난달 11일 <단비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철강·알루미늄·시멘트 등 에너지 집약 산업계에서 에너지전환 정책에 대해 반발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이들의 국제경쟁력을 보호하기 위해 재생에너지부담금(EEG surcharge)을 면제해주는 등 여러 혜택을 제공하면서 에너지전환 동참을 설득했다. EEG 부담금은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의 수익을 보장하기 위한 보조금 재원을 전기사용자로부터 걷는 것이다.

그롤 부장은 "산업계는 에너지 효율화에 대한 개선책을 요구받지만 동시에 세금 감면 등 여러 혜택을 얻고 있다"며 "재생에너지 확대로 전력 도매가격이 낮아지면서 생산비용이 절감되는 이득도 보고 있다"고 말했다.

권필석(44)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부소장은 "독일 기업들도 초기에는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지만,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나아지고 정책적 지원이 계속되자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며 "이제는 독일의 글로벌 전자기업 지멘스를 비롯해 많은 기업이 재생에너지 시장의 가능성에 주목해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전자회사 지멘스(Siemens)는 세계에서 재생에너지 사업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기업 중 하나다. 2016년에는 스페인 최대 풍력터빈 제조업체 가메사(Gamesa)를 인수합병, 해상풍력발전 업계에서 세계 1위 자리를 공고히 했다. ⓒ 지멘스가메사

 
독일 탈원전 성과 왜곡하는 국내 '찬핵' 전문가들

탈원전과 탈화석연료를 동시에 추구하며 재생에너지 강국으로 도약한 독일은 전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탈핵정책을 반대하는 국내 일부 정치인과 전문가들은 이와 동떨어진 주장을 하고 있다. 20대 국회 전반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으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저지하는 데 앞장서온 최연혜(62)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8월 <대한민국 블랙아웃>이라는 책을 내고 '독일의 탈핵과 에너지전환은 재앙'이라고 단언했다.

최 의원은 이 책에서 독일 재생에너지 산업이 막대한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해 왔으며, 이 비용은 고스란히 전기요금에 반영돼 서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재생에너지 생산자에게 수익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과도한 '특혜'이자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또 큰 비용을 투입해서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을 장려해도 햇빛과 바람이 없는 시간대에는 무용지물이며, 원전과 석탄발전소 등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백업(back­up) 전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이와 함께 "원전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태양광보다 적다"며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원전이 더 친환경적 대안이라는 주장을 폈다. 특히 미국의 친원전 환경운동가 마이클 셸렌버거(47) 등의 주장을 인용해 태양광 패널이 원자력 발전소보다 독성 폐기물을 훨씬 많이 발생시킨다고 지적했다.

또한 최 의원은 책에서 "지구온난화의 원인을 인류가 배출한 이산화탄소 때문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기후변화 회의론자'의 주장을 상세히 소개, 유엔(UN)산하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에서 전 세계 수천 명의 전문가가 인정한 인과관계도 논란 중인 사안인 것처럼 서술했다.

(최연혜 의원이 쓴 책 <대한민국 블랙아웃>에 나온 문장을 인용하면서 사실과 다소 차이가 있는 부분이 있어 바로잡습니다. 당초 기사에는 "최 의원은 심지어 '지구온난화의 원인을 인류가 배출한 이산화탄소 때문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주장, 유엔(UN) 산하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에서 전 세계 수천 명의 전문가가 인정한 인과관계도 부인했다"라고 서술했습니다. 이 문장을 "또한 최 의원은 책에서 '지구온난화의 원인을 인류가 배출한 이산화탄소 때문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기후변화 회의론자의 주장을 상세히 소개, 유엔(UN)산하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에서 전 세계 수천 명의 전문가가 인정한 인과관계도 논란 중인 사안인 것처럼 서술했다"로 고칩니다).

하지만 국내외 공식자료나 해당 분야 연구자들의 의견을 종합할 때 이런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거나 왜곡되어 있다.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의 경우 재생에너지보조금 때문에 덴마크와 함께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2016년 독일 재생에너지기구(AEE) 조사 결과 국민의 93%가 정부의 에너지전환정책을 지지할 만큼 불만을 사지 않고 있다. 독일 재생에너지 시설 중 42%가 지역에너지협동조합·농민·일반가정 등 시민 소유여서 프로슈머, 즉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시민들이 전력판매 이익을 함께 얻고 있다는 게 그 이유의 하나다.

또 포어홀츠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에너지 효율화로 전력수요가 줄고 있기 때문에 실제 독일 가계가 지출하는 전기요금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높지 않다. 2016년 독일 가정의 전력소비량은 에너지 효율화의 결과 2010년 대비 9.2% 감소했다. 독일연방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독일 가계가 전력, 가스 등 휘발유를 제외한 에너지에 쓴 돈은 총지출 대비 4.2%로 2012년의 4.9%보다 줄었다.
 

독일은 공공건물이 재생에너지 활용에 앞장서고 있다. 사진은 플랫폼에 대규모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한 베를린 중앙역. ⓒ 제정임

 
최 의원이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 때문에 독일의 석탄발전 비중이 높고 여전히 유럽 내 온실가스 배출 1위'라고 주장한 데 대해 권필석 부소장은 "아직은 재생에너지가 기존 에너지원을 대체해 가는 과도기이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기술이 충분히 개발되기까지 백업전원과 재생에너지가 공존하는 기간은 꽤 있을 것"이라며 "독일, 덴마크 등에서 석탄·원전 등 기존 발전소는 이미 백업 역할로 한정돼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 부소장에 따르면 독일은 탄광 노동자 고용 문제 등으로 석탄발전 비중을 쉽게 줄이지 못했지만 1990년 58.5%에서 2018년 상반기 35.1%로 이미 절반 수준이 됐고, 같은 기간 온실가스 배출량도 30%가량 감소했다.

권 부소장은 폐기물 관련 주장에 대해 "태양광 폐기물과 핵폐기물의 독성을 폐기물의 부피, 즉 크기로 비교한 의도적 왜곡"이라며 "태양광 패널 전체를 독성으로 간주한 뒤 이를 10만 년 이상 방사능 독성을 내뿜는 사용후핵연료보다 300배 강하다고 규정한 셸렌버거의 연구는 전 세계적 놀림감"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실리콘 태양광 패널은 해로운 중금속인 카드뮴을 쓰지 않는다"며 "주택 지붕에도 쓰는 태양광 패널이 위험하다면 가전제품을 쓰는 것조차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권 부소장은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시장은 원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는데, 사양산업인 원전에 다시 투자하자는 주장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난 6월에도 독일 현지에서 에너지업계 관계자들을 만났다는 그는 "(에너지 전환에) 가장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세력은 결국 전력회사 등 에너지 이해관계자였는데, 재생에너지의 잠재력을 믿지 않았던 이들도 지금은 에너지 전환에 반대하느라 재생에너지 투자에 소홀했던 게 '가장 큰 실책'이었다고 얘기한다"고 전했다.

남은 과제는 수송과 난방 분야의 개혁

한편 독일인들은 에너지전환의 남은 과제가 수송 및 난방 분야의 혁신이라고 말한다.

전력 분야의 에너지전환에 비해 자동차 등 수송 부문과 건물 난방 분야의 온실가스 감축 속도가 더디다는 것이다. 독일이 1990년 대비 약 30%나 온실가스배출량을 줄였지만 여전히 프랑스의 두 배를 기록하고 있는 것도 수송·난방 부문이 발목을 잡고 있어서라고 한다.

포어홀츠 박사는 "앞으로 '에네르기벤데'의 가장 큰 도전과제는 수송 부문에서의 에너지 전환"이라며 "전력 부문에서 얻은 성과를 전기자동차와 융합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독일 #재생에너지 #탈원전 #태양광 #지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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