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노윤호다' 외치는 젊은이들의 심리

[프로딴짓러 일기] 수명 인출해 쓰는 삶... '열정 만수르'가 부러운 까닭

등록 2018.10.13 11:21수정 2018.10.13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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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위한 의미있는 '무엇'이 필요한가요? 계간지 <딴짓>의 발행인인 프로딴짓러가 소소하고 쓸데없는 딴짓의 세계를 보여드립니다. "쫄지 말고 딴짓해!" 밥벌이에 지친 당신을 응원합니다.[편집자말]
종종 '막사는 년'이 되고 싶다. 막사는 년. 내일이 없을 것처럼 사는 년.

노년이란 결코 오지 않을 것처럼, 혹은 온다고 해도 누추하고 서러운 채로 맞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년.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시민으로서의 의무나 소수에 대한 배려, 의식 있는 구성원으로서의 성찰 같은 건 다시는 보지 않을 초등학교 때 일기처럼 창고 어딘가 처박아버리고 사는 년. 해야 할 일을 내일의 나에게 맡기고 오늘의 나는 방탕하게 사는 년. '열심'과 '성실'과 '최선'이란 단어를 비웃을 수 있는 년. 그야말로 '대충대충 사는 년'이 되고 싶다.  


"인간에게 가장 해로운 해충은 대충"이라는 명언을 남긴 유노윤호가 듣는다면 학을 뗄 욕망이다. 유노윤호는 열정의 대명사이자 성실의 아이콘이다. 지난해 10월 JTBC <아는 형님>에 출연해서 한 말이 시초가 되어 '나는 유노윤호다'라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나는 유노윤호다'는 게으름을 피우고 싶거나 무언가가 하기 싫을 때 쓰는 세뇌법이다. 열정의 대명사인 유노윤호를 생각하며 "나는 유노윤호다!"라 외치면 왜인지 힘이 불끈 솟는단다.    
 

JTBC <아는 형님> 스크린샷 ⓒ jtbc


유노윤호식 세뇌법은 '#나는_유노윤호다'라는 해시태그로 트위너와 페북에서 유행한다. 직장인과 학생들이 스스로가 나태해질 때 유노윤호처럼 열정을 불태우자는 취지로 정신 승리를 각오하며 쓴다. 주로 월요일을 앞둔 일요일 밤, 시험공부와 야근에 지친 날, 무기력에 시달리는 날 에너지를 끌어오기 위해서 쓴단다.

왜 학생과 직장인들 사이에서 '#나는_유노윤호다' 해시태그가 유행할까? '열정'이란 단어 자체에 이미 신물이 난 청년 세대 아니었던가? 내 경험에 비추어 그 이유를 따져봤다.

왜 젊은이들은 다시 '열정'을 말하는 걸까
 

#나는_유노윤호다 해시태그를 단 트위터 ⓒ 트위터


이유 하나, '열정 만수르' 유노윤호가 부러워서다. 열정도 돈처럼 벌어야 하는 자원이다. 청년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많은 사람은 열정, 패기, 도전을 떠올린다. 그러나 열정도 돈처럼 시간처럼 유한한 자원이다. 청년이라고 해서 모두 열정 만수르, 열정 부자로 사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에 무모한 도전과 뜨거운 치기는 체력과 시간, 기회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젊다고 해서 세상을 향해 돌진하고 싶은 열기가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건 아니다. 몸이 건강해야 조금만 자거나 오래 일해도 거뜬할 수 있고, 시간 여유가 있어야 엉뚱한 생각이나 행동을 해보면서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세대의 청년들에겐 남아 있는 에너지가 없다. 시간은 없고 할 일은 너무 많다. 돈으로 시간을 살 여유도 없거니와 지금의 희생을 대신해줄 장밋빛 미래도 없다. 굳이 '포기세대'나 '노오력에 대한 한탄'을 소재로 끌어오지 않더라도 청년의 고단함에 대한 이야기는 주변에서 피부로 느껴진다.

그나마 끌어쓸 수 있는 것이 '체력'이다. 야근을 거듭하며 동료들과 나는 종종 '수명을 인출해서 쓴다'고 표현하고는 했다. 하여 그냥 만수르가 아니라 '열정 만수르'인 유노윤호가 부럽다.

나도 매일 생기가 넘치고 하루가 감사하고 순간이 특별했으면 좋겠다. 한 달에 한 번도 채 쉬지 못하고, 하루에 10시간 이상 일하면서도 이 삶이 즐거워 어쩔 줄 모른다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담아 오늘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마음으로 거실에 비스듬히 누워 유노윤호의 열정적인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지켜본다. 인스턴트 도시락을 먹으면서 근사한 먹방을 보는 심정으로. 

이유 둘, 자기계발서 식의 성공 신화를 비웃지만 사실 나도 열심히 살고 싶어서다. 사람들에게 '딴짓'을 부추기며 90년대식 성공 신화를 비웃는 나지만, 실은 나도 그런 성공신화가 부럽다. 고등학교 때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에 감명받아 책이 닳도록 읽었을 정도다(물론 스티븐 코비는 그 후에 파산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지만 개인의 부단한 열정과 성실함으로 성공과 부를 거머쥐었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즐거운가!

다만 이제는 더 이상 개인의 노력으로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90년대식 자기계발서의 전형적인 패턴을 학습했다간 자기착취자가 되었다가 번아웃을 겪은 후 자존감이 지구의 핵으로 돌진하기 십상이다. 

하여 '대충 살자', '이번 생은 망했어' 콘텐츠가 유행하기도 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대충 살자 시리즈는 재미있는 사진과 함께 '대충 살자, OOO처럼'이란 해시태그를 다는 유머 콘텐츠다. '대충 살자, 베토벤 높은음자리표처럼'이라는 글과 함께 베토벤이 대충 그린 높은음자리표 사진을 함께 게시하는 식이다. 재미로 하는 놀이지만 청년들의 자조가 섞였다.    
 

대충살자시리즈 ⓒ 커미션파군

   

대충살자 시리즈 ⓒ 덱스터 홀랜드

 
우리는 여전히 '잘'살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실현을 하고 싶은 욕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꼭 보상이 오지 않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일을 성실하고 열심히 했을 때 그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다.

지난 세대처럼 열심히 벌어 10년 만에 서울에 집을 사는 일은 가능하지 않겠지만, 팀에서 인정받거나 업계에서 평판을 쌓을 수도 있다. 일의 본질에 대해 다루는 책 <No More Work>에 따르면 꼭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처해도 인간은 일을 하기를 원한다.  

성실하고 꾸준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서 작은 성과라도 거두는 일은 시대를 막론하고 즐겁다. 자신을 통제하고 훈련해 목표를 달성하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부정할까. 유노윤호의 열정어린 모습이 훈훈해 보이는 것도, 해시태그를 달아서라도 그의 열정을 닮고 싶어 하는 것도 이런 마음의 연장선이 아닐까.

다만 성장이 더딘 사회에서 우리의 노하우는 그 목표를 결정하는 시선을 사회에서 내 안으로 끌어오는 것, 행동의 결과보다 과정 자체에서 즐거움을 좇는 것 정도일 테다. 커다란 목표 하나를 이루어서 극한의 즐거움을 맛보는 것보다 소소한 즐거움을 자주 느끼는 것이 행복의 심리라고 하지 않던가.

'열정 만수르'가 되고 싶은 마음을 담아 나도 오늘의 글에 해시태그를 달아본다. 주말인 오늘, 아직 씻지도 않은 채로 침대에 누워서.

#나는_유노윤호다 #나는_열정이_넘친다 
#나는유노윤호다 #유노윤호 #프로딴짓러 #대충살자 #자기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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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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