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살 아이들이 마이크 잡고 사회... "어렵지 않아요"

[맑음! 충남 유아교육①] 부여유치원, 함께 만들어가는 ‘소부리 바름이 인성조회’

등록 2018.10.05 17:27수정 2018.10.22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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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교육청은 아이들이 중심인 '잘 놀고, 잘 배울 수 있는' 유아 성장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또 인권이 존중되는 안전한 유치원, 소통하고 공감하는 유치원을 강조한다. 공교육 현장에서 유아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오마이뉴스>가 충남 유아교육 현장을 둘러보았다. 현장탐방은 오는 11월까지 월 네 차례 연재 예정이다. [편집자말]
 

인성다짐 대표선수 승용이, 시환이, 수민이. ⓒ 정세연

 
"친구가 어려울 때 도와줘요."
"친구가 발표할 때 잘 들어줘요."
"장난감을 친구와 사이좋게 나눠 써요."


일곱 살 '알찬반' 친구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수민이, 승용이, 시환이의 목소리가 씩씩하다. 10월의 인성다짐 주제는 배려. 인성다짐을 외치며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을 나눠본다.

여섯 살 동생들의 탈춤과 민재의 상모돌리기가 이어진다. 상모를 돌리는 민재의 표정이 비장하기까지 하다. 앉아서도 돌려주세요, 일어서서 돌려주세요, 아이들의 요구에 호응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친구들을 소개하고 박수를 부탁하는 사회자는 일곱 살 정연이다.
 

민재의 상모돌리기를 숨죽여 응원하며 지켜보는 아이들. ⓒ 정세연

 
매월 첫 월요일 아침, 충남 부여의 부여유치원에서는 '소부리(부여의 옛 이름) 바름이 인성조회'가 열린다. 국민의례와 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으로 채워지는 지루한 조회가 아니다. 사회, 애국가 지휘, 인성다짐 등 모든 내용을 아이들이 직접 준비하고 진행한다.

"유아교육은 곧 인성교육입니다. 유아기에 형성된 인성이 평생을 간다고 할 수 있죠. 어떻게 하면 인성교육을 효율적으로 실시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아이들이 주도하는 조회를 떠올렸어요.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 나의 감정을 소통하는 방법, 더불어 생활하는 민주시민의 기초능력과 태도를 기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부여군 유일의 공립단설유치원인 부여유치원의 김미영 원장은 "인성교육은 절대 일방적인 가르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사랑이라는 바탕 위에 교육이 있어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그녀가 이런 믿음과 철학을 갖게 된 데는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이 큰 몫을 했다.

"군인이셨던 아버지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았어요. 자식들을 절대 혼내거나 엄하게 훈육하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말로 이해시키고 설득하셨어요. 굉장히 민주적이셨던 거죠. 아버지의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 저를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한 듯해요. 아이가 빗나가지 않고 바로 설 수 있게 하는 힘이 바로 사랑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늘 사랑으로, 민주적인 방식으로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답니다."
 

"사랑의 힘을 믿는다"는 김미영 원장과 부여유치원 아이들. 아이들이 주도하는 '소부리 바름이 인성조회'가 끝나고 원장선생님과 즐거운 시간. ⓒ 정세연

 
유아기 인성이 평생을 좌우

16년 만에 고향 부여로 돌아와 정년퇴직을 2년 남겨두고 있는 그녀는 '제대로 된 유아교육'을 위해 여전히 분투하고 있다. '모둠별 독서퀴즈'는 그러한 고민의 산물이기도 하다. 독서퀴즈를 통해 독서왕을 가리거나 등수를 매기고 상을 주는 경연은 이미 많은 유치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부여유치원의 '모둠별 독서퀴즈'는 조금 다르다. 모둠별로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해가는 방식으로 독서퀴즈를 진행하고 모든 아이들이 상을 받아간다.

"독서퀴즈가 인지력테스트가 돼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독서교육의 목적에도 맞지 않고요. 조금만 생각을 바꿔보면 인성교육과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어요. 개인 간 경쟁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고 노력하는 과정을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거죠. 선생님들에게도 항상 강조하는 게 바로 그거예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자, 친구들끼리 서로 끌고 밀고 도우면서 과제를 수행해나가는 모습을 격려하고 칭찬하자고요."

사랑을 바탕으로 한 인성교육, 대화와 소통을 강조하는 그녀의 방식을 처음부터 학부모들이 환영한 것은 아니다. 기존 시스템과 달리 자꾸 변화를 시도하다 보니 귀찮아하는 학부모도 있었고, 처음이니까 열심이지 곧 저러다 말겠지 생각하는 학부모도 있었다.

'학부모 대화의 날'을 통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고, 학부모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개선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교문 앞에서 등원하는 아이들을 맞이하고, 통학 차량에는 몇 명의 아이들이 타고 내렸는지 일일이 체크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니 원장의 교육철학을 이해하고 좋은 변화를 인정하고 믿어주는 학부모들이 많아졌다.

"제가 하는 이 일을 정말 사랑합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생활하며 저도 힘을 많이 얻고요. 퇴직하는 그날까지 사랑으로, 가슴으로 아이들을 마주할 겁니다. 효 교육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효도해라, 말로 할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 사랑을 보여주면 돼요. 그러면 아이들도 그만큼 돌려준답니다. 사랑의 힘을 믿어요."
 

고운노래 합창은 다섯 살 동생들이 가장 열심이다. 오늘의 고운노래는 '다섯글자 예쁜 말'과 '넌 할 수 있어 라고 말해주세요'!! ⓒ 정세연

 
"체계적 유아교육 위해 단설유치원 늘어났으면"

알찬반 정은희 교사는 오늘의 인성조회가 더욱 특별하다. 학기 초만 해도 발표를 힘들어 했던 수민이, 승용이, 시환이가 먼저 용기 내어 인성다짐 선서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다독여주고 발표기회를 많이 만들어준 것이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사회를 맡은 정연이도 그렇다.

"정연이가 많이 아파서 한동안 유치원에 나오지 못했어요. 지난 9월부터 다시 등원했는데 빨리 적응해서 즐겁고 자신 있게 생활했으면 하는 바람이 많았어요. 정연이는 이번 사회를 맡으면서 엄마랑 집에서 연습도 부지런히 했다고 하더라고요. 사회를 정말 멋지게 자신 있게 잘 해내서 너무나 대견합니다."

정 교사는 부여의 유아들이 체계적이고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단설유치원이 늘어나기를 희망했다. 병설유치원은 초등학교 내에 한 두 반이 꾸려져서 운영되다 보니 초등과정과 연계되는 활동이 많아 유아에게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원장, 원감, 교사 모두 유아교육 전공자이고, 유아에게 가장 적합한 내용으로 체계적인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공립단설유치원이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현재 누리과정이 놀이중심이라고는 하지만 인지적 교육이 중시되는 측면이 많거든요. 지식을 강조하는 수업은 유아에게 적합한 교육이 아니에요. 놀이를 통해 배우고 인성을 기를 수 있도록 제대로 놀이가 중심인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10월의 인성약속을 지켜보아요!! ⓒ 정세연

  
다양한 인성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부여유치원은 '소부리 바름이 인성조회'와 '모둠별 독서퀴즈' 외에도 체험활동을 통해 공공예절을 지키고 협동심과 책임감을 기를 수 있는 '우리고장 역사탐구 체험학습', 전통놀이를 통해 서로 존중하고 협동하는 마음을 기를 수 있는 '학부모 놀이지원단'을 실시하고 있다.

'자연과 친구 할래요'는 올챙이, 장수풍뎅이, 달팽이, 국화 등을 학급에서 키우면서 책임의식과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기르는 활동이다. 또 협력유치원인 대왕초병설유치원, 궁남초병설유치원과 함께 감성능력 신장을 목표로 숲 체험을 포함한 자연생태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유아교육 #부여유치원 #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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