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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딨노, 니?" 실화라 섬뜩... 이런 형사가 있어 참 다행이다

[김유경의 영화만평] 배우 김윤석을 응시하게 한 영화 <암수살인>(2018)

18.10.06 16:44최종업데이트18.10.0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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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수살인> 포스터 ⓒ (주)쇼박스

 
이미 출시된 형사 캐릭터가 제법 많다. 대개 인간적 말랑함에다 상부나 매스컴의 외압에도 버티는 결기를 보여준다.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는 바보스러움도 나름 곁들인다. 그 몇몇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암수살인>이 창출한 김형민 형사(김윤석 분)는 기존 것들과 급이 다르다. '급'이란 차등적 용어까지 쓰는 건 김형사가 내 심금을 울려서다. 그의 "어딨노, 니?"는 피해자의 고혼 달래기에 올인한 영혼으로 내게 메아리친다.  
 

영화 <암수살인> ⓒ (주)쇼박스

  김형사를 그렇게 만든 건 강태오(주지훈 분)다. 강태오의 뻔뻔함에 데인 조형사(진선규 분)에게 김형사는 '감정부전'을 말한다. 상대의 입장에 공감하지 못하는 그 특성은 사이코패스의 주요인이다. 더군다나 강태오처럼 머리 좋은 사이코패스들은 완전범죄를 꿈꾼다. 완전범죄는 '암수'다. 눈알을 부라리는 계산된 발작과 자뻑마저 내비치며 범행하는 연쇄살인범 역의 주지훈이 그 암수를 재현한다.

암수(暗數)의 사전적 정의는 '실제로 발생하였으나 범죄통계에는 나타나지 않은 범죄'다. 일본의 범죄심리학자 니시무라 박사는 사이코패스를 일컬어 '정장차림의 뱀'이라 표현한다. 사이코패스를 일상 속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으로 본 것이다. 십대에 아버지를 죽인 것으로 시작된 강태오의 범행은 그러한 사이코패스의 기습적 특성을 관객에게 극단적으로 선보인다.

<암수살인>의 장면들처럼 길모퉁이에서 시비하다가도, 택시 승차 중에도, 야간업소에서 놀다가도 누구든 강태오 같은 감정부전에 직면할 수 있다. 양심 자체가 불통인 상대의 치사 행위 앞에서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보통사람은 많지 않다. 더군다나 약자에게 강한 갑질이 피해자를 겨냥했음이 <암수살인>에도, 사귀던 여자친구를 죽여 암매장하는 요즘 뉴스에도 등장한다. 별일 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게 기적인 세태다.  
 

영화 <암수살인> ⓒ (주)쇼박스

  그러다보니 김형사 캐릭터에게서 힘을 얻는다. 김윤석이 연출한 김형사가 내게 위안이 될 줄은 관람 전엔 생각도 못 했다. 어디를 향하는지 종잡을 수 없는 그의 시선은 배를 내민 것도 힘차게 땅을 딛는 것도 아닌 그의 걸음새와 닮아 있다. 뻘을 딛은 정중동의 몸짓을 은연중에 유도하는 탐사센서 같다.

김형사가 마약수사대에서 파출소로 좌천되면서도 바보 행진을 계속하는 이유는 하나다. 먹잇감이 되기 쉬운 사람들의 일상에서 강태오를 빼놓기 위해서다. 그래서 강태오의 진술을 "일단 무조건 믿고, 끝까지 의심"하기로 작심한다. 그렇게 하느라 강태오에게 감형을 안겨주기도, 무죄 선고를 선물하기도, 목돈을 영치금으로 건네기도 하는 무리수를 감행한다. 자기 퇴직 후에 출소한 강태오가 활동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일선 형사들과 달리 그런 바보짓을 저지르는 김형사에게 강태오의 변호사는 뺑소니차에 치여 죽은 아내 때문이라며 상처를 건드린다. 변호하는 역을 맡았다 해서, 누구에게나 있을 그럴만한 계기를 범법자를 돕는 일에 견강부회 식으로 갖다 붙이는 법조인의 모습이 역하다. 누구도 간섭 못한다는 자리의 특성을 악용해 편향적 판결을 버젓이 내리는 우리네 몇몇 판사의 이름이 떠오른다.

그런 저런 악조건에도 포기하지 않은 <암수살인>의 실제 모델 김정수 형사에게 경의의 박수를 보낸다. 엔딩 크레디트에는 그의 바보 행진이 현재진행형으로 나타난다. 법을 지키는 선에서 김형사를 돕는 김수민 검사(문정희 분) 같은 양심 지킴이들이 있기에 그나마 지속되지 않나 싶다. 잔인한 장면들이 많지 않아도 진저리 치며 긴장하게끔 문제의식을 사실적으로 전개한 두 각본가(곽경택, 김태균)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영화 <암수살인> 장면 ⓒ (주)쇼박스

 
사족 같은 고백 하나 더한다. 강태오가 열 받는 순간이 상대가 부지불식간에 내뱉는 말을 들을 때다. 그 장면들을 보며 말 한마디의 천 냥 값을 헤아리는 내가 문득 가엾다. 겸손하되 당당하게 살기가 참 어렵다.
암수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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