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으로 이해찬 때리는 한국당의 모순 논리

[김종성의 이 뉴스 진짜야?] 국가보안법은 반공의 탈을 썼을 뿐이다

등록 2018.10.08 10:58수정 2018.10.1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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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은 지난 4일 오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10.4 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 합동만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아주 오래된 '가짜뉴스'가 있다. 너무 오래돼 진짜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가짜인 뉴스다. '국가보안법이 반공을 위한 법'이라는 뉴스가 바로 그것이다. 100% 가짜뉴스라는 말은 아니다. 상당 부분 그렇다는 의미다. 평양에서 쏘아올린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국가보안법 발언을 두고도 그런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노무현·김정일의 10.4선언을 기념할 목적으로 노무현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방북한 이해찬 대표는 5일 평양에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평화체제가 되려면 국가보안법 등을 어떻게 할지 논의해야 한다"라며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평소의 소신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보수언론들은 물론이고 보수정당들도 '전통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반공의 틀에 입각한 뉴스들을 쏟아내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윤영석 수석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북한은 적화통일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다"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국가보안법은 이러한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 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다. 이해찬 대표에게는 국가보안법이 눈엣가시일지 모르나, 남북분단 상황과 북한의 위협이 실제로 존재하는 한 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
  

이해찬 대표의 국가보안법 폐지 발언에 대한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의 논평. ⓒ 자유한국당

  
'국가보안법은 적화통일을 막는 장치'라는 보수진영의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논리에 입각한 논평이다. 이런 논평이 가짜 뉴스라는 점을 설명하기에 앞서, 논평의 논리적 모순부터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위 인용문의 바로 다음에는 "그동안 변화하는 시대상황과 남북관계에 맞추어 국가보안법의 해석 및 적용도 완화되어 왔으며, 남북관계 개선에 국가보안법이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는 문단이 있다.

논평에서는 북한을 두고 '적화통일을 추진하는 반국가단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현재의 국가보안법이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고도 했다. 반국가단체와의 관계 개선에 장애를 주지 않을 정도가 됐다면, 국가보안법이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폐지를 막을 이유가 없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폐지를 반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사문화된 법률을 '장례'도 치르지 않고 방치하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또 논평에는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인 진전이 있을 때 남북관계 개선 및 남북교류 활성화를 하기 위해서는 현행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라는 대목도 있다. 

자유한국당 논리대로라면, 반국가단체와의 교류를 허용하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은 위헌적인 법률이 된다. 그런데 이 법률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제1보수정당이 이처럼 모순된 논리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 자신도 국가보안법에 대해 상당히 '헷갈리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일 수 있다.

국가보안법 탄생의 역사

그런 논리적 모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류의 논평이 실은 가짜뉴스라는 점이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한 주장만 나오면, 자유한국당뿐 아니라 보수세력 대부분이 거의 똑같이 반공 논리로 대응한다. 북한 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주장은 북한을 이롭게 하는 주장이라는 논리다. 이를 접하는 국민들은 '저들은 원래 저러니까' 하면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가짜뉴스라는 사실을 놓칠 수밖에 없게 된다.

애초에 제정될 당시부터 국가보안법은 반공을 위한 법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그런 측면도 있었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본질은 반공과 무관한데도, 외형상 반공을 표방하고 있을 뿐이다. '반공의 탈'을 썼지만, 본질은 다른 데 있는 법률인 것이다.

임시정부를 계승한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직후부터 친일청산 세력이 참여한 입법 중 두 가지는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과 내란행위특별처벌법(내란특법)이다. 친일청산 세력은 정부 수립 이틀 뒤인 1948년 8월 17일, 반민법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했다. 9월 20일에는 이들 중 일부인 김인식 의원이 내란특법을 공동으로 발의했다. 뒤이어 22일에는 반민법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친일청산 작업의 본격화가 선포됐다.
 

반민특위의 재판. ⓒ 위키백과

  
반민법만 제정되고 내란특법은 아직 제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친일파한테는 위협적인 상황이었다. 반민법 제5조에서 "일본 치하에서 고등관 3등급 이상, 훈(勳) 5등 이상을 받은 관공리 또는 헌병·헌병보·고등경찰의 직에 있던 자는 본 법의 공소시효 경과 전에는 공무원에 임명될 수 없다"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정부 내에 포진한 친일파들이 실업자가 될 신세에 놓여 있었다.

이때 돌발변수가 나타났다. 여순 사건(여수·순천 사건)이 발생했다. 제주4.3항쟁에 대한 진압작전을 거부한 제14대 연대 장병들이 주한미군과 이승만 정권에 반기를 든 것이다. 이 날이 10월 19일이다.

기마경찰의 말에 치인 아이를 경찰이 방치한 것에 대한 항의로 시작된 4.3항쟁은 나중에는 미국과 이승만의 단독정부·분단정부 수립에 대한 민족주의 운동으로 발전했다. 그런 4.3항쟁에 대한 진압을 거부하면서 벌어진 사건이 바로 여순사건이다.

그런데 제14연대의 항쟁은 5일 만에 진압됐다. 이것이 정국에 중대 영향을 미쳤다. 반민법 제정으로 위기에 몰렸던 이승만과 친일세력이 이를 반격의 계기로 삼은 것이다. 이들은 반민법을 무력화시킬 목적으로 내란특법 제정 과정에 손을 댔다. 반민법을 곧바로 폐지하면 대중의 반일 정서를 자극할 수 있으므로, 내란특법을 통해 반민법을 무력화시키는 우회 전략에 착수한 것이다. 반민법 지지자들을 내란특법으로 엮어 처벌함으로써 반민법이 힘을 잃도록 하는 작전이었다.

친일청산 세력 공격용으로 쓰이다

이승만과 친일세력은 내란특법의 명칭을 국가보안법으로 바꿨다. 그런 뒤 내용에도 대폭 수정을 가했다. 한국사 학자인 변동명씨의 '제1공화국 초기의 국가보안법 제정과 개정'에 이런 대목이 있다.
 
"처음 법이 제안되던 당시에는 내란행위를 처벌하는 게 핵심 목표였는데, 여순사건 이후 실제 법조문을 기초하는 과정에서 내란행위 자체보다는 내란 유사의 목적을 가진 결사·집단의 구성이나 혹은 그에 대한 가입을 처벌하는 것으로 그 중점이 변질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 전남대 5·18연구소가 2007년 발행한 <민주주의와 인권>에 실린 논문 중
 
내란 방지를 목적으로 했던 법이 내란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법으로 둔갑하자, 법 적용상의 남용이나 인권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물론이었다. 또 다른 위험성을 우려하는 반응도 그에 못지 않게 나왔다. '저들이 친일 청산을 막기 위해 저러는 것 아니냐?'는 염려였다. 위 논문은 <국회속기록>을 근거로 당시의 국회 분위기를 이렇게 요약한다.
 
"여전히 정부 조직의 곳곳 요처마다 박혀 있던 친일 관리들이 이 법을 악용하여 애국지사를 탄압할 가능성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애국지사를 고문하던 친일 경찰이 공연한 사람을 탄압할까봐 염려된다든지, 혹은 민족적 양심을 가진 애국투사가 이 법망에 걸려 불순도배의 손에 쓰러지며, 경찰의 악질적인 친일 요소가 제거되지 않는 한 과거 수십 년 동안 지조를 지킨 진정한 애국자가 영어(감옥)에서 울 것이라는 지적 등이 그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반민법과 내란특법을 동시에 추진했던 김인식 의원은 내란특법이 국가보안법으로 변질되는 상황에 대해 낙관적 견해를 피력했다. 반민법이 이미 제정돼 있으니, 저들이 설마 국가보안법으로 친일 청산을 방해할 수 있으랴 하는 인식이었다.

위 논문에 인용된 <국회속기록>에 따르면 그는 국회에서 "국가보안법을 발동시키면 우리 애국자가 그 안에 섞이리라는 이러한 염려도 있겠습니다마는, 이미 반민법이 통과되었고 무엇이 부족합니까?"라며 친일청산 세력을 위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이 친일파를 옹호하고 친일청산 세력을 공격하는 용도로 활용되는 속에서 반민법과 이에 기초한 반민특위는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국가보안법이 친일파 보호용(用)이라는 우려가 기우가 아니었음을 입증하는 일들이 속속 벌어지기 시작했다.

보안법 제정 직후에 남로당(남조선노동당) 당원들이 이 법에 저촉돼 구속됐다는 점을 근거로, 이 법의 목적이 반공에 있었다고 주장해서는 곤란하다. 식민지배에 저항하던 독립투사들 중에서 사회주의 계열이 더 많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승만과 친일세력이 항일운동가나 친일청산 지지자를 남로당원이라는 올무로 묶어놓고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는 일이 많았다는 점을 꼭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제정 직후의 국가보안법이 친일파 보호에 주로 이용됐다는 사실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가 작성한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 보고서인 <국가보안법 적용상에서 나타난 인권 실태>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시기 발생한 사건 가운데서는 조작 의혹이 일거나 모함에 의해 대량 검거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가령 1949년 5~6월에 발생한 국회 프락치 사건은 사건 발생 시기부터 재판 과정에 이르기까지 조작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구속된 국회의원들은 제헌국회에서 반민특위의 설치와 운영을 주장하였고 국가보안법의 제정을 반대하는 등의 활동을 해왔기에, 이승만 정권의 정치적 보복에 의한 사건이었다는 의혹이 있으며 이는 국가보안법이 정치적 반대자를 제거하는 데 악용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국회 프락치 사건은 이승만과 친일파가 친일청산을 저지하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된 공안사건이다. 친일청산을 추진하는 현역 국회의원들을 남로당 프락치로 몰아 구속하고 기소한 사건이다. 이승만과 친일파는 이 사건을 일으키면서 국가보안법을 적용했다.

이를 계기로 친일청산 작업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국가보안법이 친일청산 저지에 결정적 공헌을 한 것이다. 공산당을 잡는 법률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친일청산 세력을 무너뜨리는 데 사용된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저택인 이화장에서 찍은 사진.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 소재. ⓒ 김종성

 
국가보안법은 '친일파 보호 법률'로 출발

이런 역사를 볼 때, 국가보안법이 반공의 탈을 쓴 '친일파 보호 법률'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출발한 이 법률이 나중에는 정권 비판세력을 탄압하는 법률로 발전했다. 친일청산 세력이 약해진 뒤에는 반독재·민주화 세력을 공격하는 법률로 기능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반공을 위한 법률이라는 뉴스는, 100%는 아닐지라도 상당부분은 가짜뉴스라고 말할 수 있다.

위의 자유한국당 논평에서는 "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법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 친일 보수정권한테 필요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기능해 왔을 뿐이다.

따라서 이런 법률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조금도 잘못이 아니다. 그런 주장을 서울에서 하든 평양에서 하건 워싱턴D.C.에서 하든, 그 역시 따질 일이 아니다. 옳은 말을 하는 데 장소의 제약을 크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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