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천된 40대 가장, 퇴사 대신 찾은 해답

[퇴사 프로젝트 ⑫ 마지막] 퇴근만 기다리던 직장인은 어떻게 작가가 됐나

등록 2018.10.14 20:18수정 2018.10.1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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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수많은 직장인들이 꿈꾸는 퇴사! 새해 첫날 좌천 통보를 받고 나락으로 떨어지던, 무기력한 40대 회사원이던 제가 딴짓을 하면서 퇴사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과연 퇴사할 수 있을까요?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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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년 전에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 책 출간 후 한 달에 한 번꼴로 벌어지고 있으니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 unsplash

 
[이전기사 : 내 나이 44살,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눈물을 흘렸다 ]

지난해 연말, <딴지일보> 필진 모임에 참석했다. 20명의 참석자 중 출간을 앞둔 사람은 나를 포함해 2명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축하를 해주었다. 그때 어느 분들의 대화가 내 귀에 들어왔다.


"야. XX 알지? 지난번에 책 냈다고 하던데. 인세가 얼마 들어 온 줄 아냐?"
"보나마나 쥐꼬리만큼 들어왔겠지 뭐."
"놀라지 마라. 5만 원 들어왔단다. 5만 원."


그분들의 염려와 기대(?)와는 다르게 <찌라시 한국사>는 2018년 2월 출간된 지 3개월 만에 6쇄를 찍었다. 일주일이긴했지만 YES24 e북 역사 분야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고, 2018년 3월 교보문고 역사 분야 베스트셀러로 선정이 되는 등 나름의 선전을 펼치고 있다.

EBS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패널 섭외 요청이 들어왔고, 지방의 도서관이나 교육 기관 강연도 예정돼 있다. 불과 2년 전에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 책 출간 후 한 달에 한 번꼴로 벌어지고 있으니,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또한 책의 출간을 기다리면서 '찌라시 한국사'라는 제목으로 팟캐스트 방송도 시작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역사 이야기로 주제를 정하고, 대본을 직접 쓰고, 친구들과 같이 녹음을 한다. 내가 기획하고 즐기는 일은 나의 창작품이기 때문에 그 성취감은 월급에서 얻는 기쁨과 비교 불가다. 

어떤 이는 회사에 다니면서 책도 내고 팟캐스트까지 하는 나를 타고난 열정가로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불과 2년 전까지 퇴근 시간만 바라보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지' 하고 다짐만 하던, 엉덩이가 무거운 아저씨였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놀이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힘든 줄 모르고 하는 것이다.


물론 출발은 힘들었다. 팟캐스트도 해봐야지 하고 마음 먹은 지 7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시작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운동을 하기 위해 현관까지 가는 일이, 10킬로미터를 달리는 것보다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느끼고 있다. 

모두가 처음부터 너무 잘하려다가 시작도 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일이든지 대단히 어렵고 내 역량 밖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시작이 어렵지 막상 하고나면 우리가 해내지 못할 일은 세상에 많지 않다. 

설날에 금의환향은 못 했지만

책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날, 출판사 마케팅 팀장이 밤 11시가 넘은 시각에 카톡을 보냈다. 포털사이트 책 페이지의 역사 분야에서 <총, 균, 쇠>를 쓴 재러드 다이아몬드와 유홍준 교수, 유시민 작가와 함께 내가 순위를 다투고 있다는 급보였다.

"작가님! 저도 보다가 너무 기뻐서. 이런 순간은 가문의 영광이라서 늦은 시각이지만 연락 드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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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지병도 없이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지난해부터 항상 내 손을 잡고 기력이 다한 것 같다고,?해 준 건 없지만 죽을 때 아프지 않고 떠나서 자식의 짐을 덜어주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 unsplash

 
가문의 영광이라고 말해주니 고향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떠올랐다. 원래 출판사에서는 설 전에 출간해 고향에 책을 들고 금의환향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지만, 디자인 관련 업무에 문제가 생기면서 일정이 미뤄졌다. 설 연휴 직후에야 책이 출간됐다.

우리 고향에는 대형 서점이 없다. 작은 서점 2곳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책이 배본되기 전부터 동네 서점에 연락해 책을 수소문하셨다는 아버지는 출간 다음 날 또 전화를 하셨다고 한다.

"여보세요! 그... 찌... 뭐지? 아! <찌라시 한국사> 있어요?"
"네? 아버님, 잠시만요. 제가 방금 검색을 해 보니 신간이라 저희 서점에는 아직 입고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 그래요? 그거 우리 아들 책입니다."
"아... 네..."


어머니는 주책이라고 옆에서 타박하셨지만, 입가에는 만연의 미소를 짓고 있으셨다고 한다. 

"여보. 좀 피곤해도 이번 주말에 시골 다녀와요 아버님, 어머님이 당신이 책 가지고 내려오는 모습 눈 빠지게 기다릴 텐데."
"알았어. 다음 주에 내려갈까 했는데, 서점에 전화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안 가볼 수가 없네."


얼마 후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 앞에 책을 놓고 큰절을 올렸다. 두 분은 못난 장남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셨다. 그때 올린 절이 아버지께 올린 마지막 절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버지께 책을 드려 다행이다

책을 드린 지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는 지병도 없이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지난해부터 항상 내 손을 잡고 기력이 다한 것 같다고, 해준 건 없지만 죽을 때 아프지 않고 떠나서 자식의 짐을 덜어주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나는 화를 내곤 했지만, 끝까지 가족을 위하고자 하는 가장의 마음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출판사를 통해 라디오 출연과 도서관 강연 요청이 들어왔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가 내게 준 선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버지는 생전에 항상 내게 물질적 지원이 부족해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정작 돈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이 거의 없다. 나를 호수 위에서 우아하게 유영시키기 위해 두 분이 물 아래서 발버둥 친 결과인 걸 이제야 깨닫고 있다. 또한 아버지가 주신 선물 덕분에 제2의 인생도 잘 준비하며 그 어느 때보다 행복감을 느끼고 있으니, 아버지 마음이 이제는 편해지셨으면 한다. 

어머니께는 가끔 술에 취하면 사랑한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아버지께는 그러지 못했다.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아내의 말을 들은 덕에 아버지 생전에 내 책을 안겨 드릴 수 있었다. 좋아하시던 모습을 뵐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연재를 마치며

이 12번째 글로, 16년 차 회사원인 한 아저씨의 퇴사 프로젝트를 마칩니다. 그동안 제 글을 보고 나니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세상의 벽이 생각보다 높지 않구나, 40대 아저씨도 작가가 되는 판에 내가 뭔들 못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지금 하고 일을 당장 그만두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처럼 딴짓 한번 해보세요. 저는 온 세상이 다 아는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지만, 행복감만은 1등이라고 확신합니다. 

얼마 전 스포츠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본의 한 고등학교 교직원이 미국의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을 한 것입니다. 프로 선수인 케냐 선수를 제치고 말입니다. 

이분처럼 세계일류가 되자는 말은 아닙니다만, 세상이 임의로 쳐 놓은 벽만 보고 시도도 안 해보는 누는 범하지 말자는 말입니다. 딴짓을 하다가 지겹거나 잘 안되면 또 다른 딴짓을 해보면 되니까요.

 

대구 도서관 강연 사진 ⓒ 김재완

 
#퇴사프로젝트 #찌라시 한국사 #직장인 #퇴사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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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직 안 죽었다. 출간 찌라시 한국사. 찌라시 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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