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국제관함식, 대통령님 왜 우린 외면하시나요

[강정마을 평화이주민이 띄우는 편지] 오늘도 우리들의 길은 막히지만

등록 2018.10.10 10:45수정 2018.10.1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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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제주 국제관함식이 열릴 예정인 가운데 8일 오후 서귀포 앞바다에서 해군 함정과 헬리콥터 등이 해상사열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저희들은 제주도 강정마을 지킴이 또는 평화이주민이라 불리는 이들입니다. 이곳에 온 시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이주해서 지금까지 해군기지반대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국제관함식이 열리는 오늘 10월 10일은 바로 강정 해군기지 반대활동을 한 지 4164일째 되는 날입니다. 강정마을 주민과 지킴이들에게 이 숫자는 하루하루 잊을 수 없는 고통의 날이었습니다. 잘못된 '국가사업'으로 평화로운 강정마을이 파괴되었습니다.

평생을 살아온 형제가, 이웃이 서로 갈기갈기 찢겨 나가고 구럼비 해변은 산산조각이 났으며 이제는 다시 회복할 수 없는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세월동안 60여 명이 구속되고 700여 명이 잡혀가고 수없이 재판정을 들락거리며 벌금을 내고 노역을 살았습니다. 연민의 마음으로 평화를 지키려는 노 사제가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수염이 뽑히는 조롱도 당했습니다.

지난 11년 동안 국가폭력으로 주민과 평화 지킴이의 인권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촛불의 힘으로 만들어진 정부 역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강행의 절차적 문제와 국가폭력으로 가해진 피해에 공식적인 사과도 없었으며 진상규명 요구에 한 번도 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번 국제관함식 개최 여부를 두고 청와대가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취한 방식은 11년 전 강정마을에 대한 강압적이고 위선적인 정부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더 비겁하고 야만적입니다.

손만 대지 않았지 서로 싸우도록 분위기를 조장하고, 결국 싸우는 사람들이 직접 결정하도록 했으니까요. 당사자가 되지 않고서도 문제를 참으로 손쉽게 해결한 꼴이 됐지요. 이런 방식의 뒤로 물러선 보이지 않는 힘의 행사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은 문 대통령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을 우선시하는 평화와는 어떻게 일맥상통할 수 있나요?  

문재인 대통령님.

어제 70대 초반의 마을 삼촌이 '대통령이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냐'며 저희에게 물으셨습니다. 그 삼촌의 친구는 '대통령을 만나면 그동안의 억울함을 토하려고 한다' 전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오더라도 그 자리에는 2007년 4월 이전부터 거주하는 주민에 한해 참가자격이 제한된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마을 주민과 평화 이주민들을 가르고 있습니다. 이는 그동안 끈질기고도 치열했던 해군기지반대운동 저항의 역사와 그 시간을 함께 만들어간 사람들을 모조리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품고 자신의 삶과 꿈을 이 작은 마을을 지키는데 쏟아온 평화 이주민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제주 해군기지 강행은 한반도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였습니다. 강정의 평화는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 누구나 지켜야 할 약속이며 권리입니다. 그런데 정부의 이러한 구별짓기는 참으로 비열한 행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문 대통령께서는 강정마을에 대해 모르고 계시지 않습니다. 이 작은 마을이 지닌 고통의 역사와 평화와 정의를 향한 시민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그리고 이 모든 문제의 시작점 역시 제대로 알고 계십니다. 2011년 9월, '노무현 재단 제주 준비위' 발족식에 앞서 참여정부 당시의 과오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문제점을 바로 잡으셨지요. 

전북 부안 방폐장 건설 과정의 선례를 언급하며 주민들과의 충분한 대화가 빠진 절차상의 문제와 평화의 섬 제주도에 군사화를 한층 강화시킬 수 있는 해군기지입지 선정의 부적절함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셨습니다.

또 2017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로 동북아의 긴장이 고조될수록 전쟁의 기억과 상처는 뚜렷해지고 평화를 갈망하는 심장은 고통스럽게 박동치는 곳, 그곳이 2017년 9월, 오늘의 한반도 대한민국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매일같이 전쟁의 기억과 상처가 뚜렷해지고 평화를 갈망하는 심장이 고통스럽게 박동치는 곳이 바로 오늘의 강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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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7일 오후 서귀포시 강정동 제주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가 국제관함식 즉각 취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이미 해군기지 완공 후 미국의 핵잠수함을 비롯해 각국 군함이 제주에 모습을 드러내고 미 태평양 사령관은 제주해군기지에 줌월트급 스텔스 구축함을 배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제주가 평화의 섬이 아니라 군사기지로 변해가는 상황에서 열리는 국제관함식은 군사기지를 정당화하는 절차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제주 해군기지에 수십 대의 군함들이 나타나 전투력을 뽐내고, 수만의 군인들이 용맹함을 과시하려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80대의 전투기를 탑재한다는 원자로를 갖춘 핵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가 입항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한 귀퉁이에 앉아있습니다. 한명의 몸뚱이로 차지하는 한평의 평화의 땅을 지키고자 밤 낮 할 것 없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줌 밖에 되지 않지만 대통령에게 지난 11년간 비바람과 추위와 더위에도 버텨온 끈질긴 저항의 목소리와 평화의 갈망이 들리지 않으시는지요. 우리가 국제관함식을 반대하는 것은 제주해군기지가 동북아의 새로운 군사기지로 떠오른 것을 우려하는 것이며, 이는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정착에도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최근 남북관계에서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을 청산하고 핵무장 포기를 통해 스스로 평화의 길을 선택하도록 하셨지요? 얼마 전에는 백두산 천지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손을 잡고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며, 한라산에도 언젠가 함께 오르고 싶다 하셨고요.

그런데 어떻게 제주 강정에서는 국제관함식을 개최하면서 군사력을 이용해 평화유지의 방법을 선택하려고 하시나요? 방위산업 전시와 해상 침투시범, 해상사열식 등의 활동을 통해 제주해군기지의 전쟁기지 활용가능성을 알리는 이 모순적인 태도에 대해 문 대통령께서는 어떤 설명을 하실 수 있으신가요? 

대통령은 '평화는 삶의 소명이자 역사적 책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한 국가의 최고 수장인 대통령 문재인에 앞서 사람 문재인에 대한 기대를 아직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추운 겨울, 서귀포에서 촛불을 들고 다시 한라산을 넘어 제주시로 가서 촛불을 들었던 그 힘과 열정으로 이 땅의 민주주의가 탄생됐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대통령이 만들어졌다고 믿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문 대통령께서 꼭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강정마을의 해군기지반대운동은 단순히 지역적이고 지엽적인 평화운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마을에서 한 줌에 불과한 사람들이 일구어온 평화와 정의는 한국 사회 곳곳에 폭력에 맞서 싸우는 이들에게 기댈 수 있는 희망과 연대의 어깨가 되어 주었습니다. 또 전 세계에서 전쟁과 불의한 권력에 맞서 항거하는 다른 동료 사람들에게 멈추지 않고 함께 싸우는 동료들이 지구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용기와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희들이 가는 평화의 길은 또 다시 막힙니다. 해군들의 비열한 웃음에, 경찰들의 무관심에, 해군이 고용한 용역들의 과격한 행동에 밀쳐지고 내쳐집니다. 그러나 이들의 방해는 저희들을 멈추게 하지는 못합니다. 외려 저희로 하여금 우리가 바라는 미래를 더 미루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살아내고자 하는 열망을 더 부추기게 할 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께 감히 말씀 드립니다. 강정마을은 대한민국의 평화운동의 중심지입니다. 이곳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모여 평화를 위한 길을 모색합니다. 대통령님께서 그토록 갈구하는 평화를 가장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실현하려는 저희들의 움직임을 부디 막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이 순간에도 저희들의 저항의 몸짓은 평화와 정의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를 위한 역사의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는 것도 꼭 기억해주십시오. 

저희들에게는 이번에 기지 내에서든 마을 안에서든 문 대통령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길이 모두 차단되어 아마도 얼굴을 직접 뵙기는 어렵게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진실을 담아 이 편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잘 다녀가시기 바랍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평화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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