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살에 시한부... 죽을 걸 알면서 왜 아이를 낳았나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 삶과 죽음을 생각하다

등록 2018.10.15 09:48수정 2018.10.1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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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간이 100%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삶이, 아이를 낳고 '엄마' 70%+'나' 30%로 화끈하게 바뀌었다. 아이를 세상 밖으로 냈으니 당분간(한 20년 정도) 엄마 노릇에 힘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로서 책임을 다해 잘 키워야 한다는 건 알지만, 점점 내 삶을 잃어가는 기분 때문에 버거웠다. 이토록 힘든 육아, 과거로 돌아가 선택할 수 있다면 다시 할까?

안 낳을 거라고 답을 못하겠다. 엄마 역할은 언제나 어렵지만, 자식은 그 이상을 뛰어넘는 '사랑' 자체다. 길가의 들꽃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걸 보면, 인간이 행복해지는 방법은 단순하다. 육아하며 드는 감정도 비슷하다. 우리 집 까꿍이 1호, 2호를 보면 사랑스럽고 귀여워, 어느샌가 나는 웃고 있다. 아이가 이뻐서 웃게 되는 이 단순한 과정만으로 행복하다. 그러니 힘들걸 알면서도 다시 태어나면 아이를 갖고 싶다.


이번엔 좀 더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큰 병에 걸려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면, 그래도 아이를 낳을까? 쉽게 대답을 못하겠다. 죽음은 두렵고, 남은 가족들이 겪어야 할 나날은 더 무섭다. 남편 혼자 아빠의 짐을 감당할 수 있을지, 아이가 엄마의 빈 자리를 느끼며 자라지 않을지, 남은 가족의 불행부터 감히 짐작하게 된다. 죽음을 앞둔 엄마(아빠)는 아이를 보며 행복할 수 있을까? 죽음은 삶의 과정이 아닌 종착지이며, 결코 받아들이기 어려운 비극인 듯 싶다.

그런데 <숨결이 바람 될 때>의 작가이자 신경외과 레지던트였던 폴 칼라니티는 남들과 다른 선택을 했다. 35살 말기 폐암 환자였음에도 아이를 낳기로 한 것이다. 칼라니티 부부에게 아이는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낳아 기르고 싶은 사랑의 산물이었다. 남아서 아이를 키우게 될 아내 루시가 최종 결정을 했다. 아기라는 멋진 선물을 앞두고 고통을 피하는 것만이 삶은 아니라던(171쪽) 그들의 최종 선택이었다. 결국 폴 칼라니티와 아내 루시는 인공 수정으로 딸 케이디를 낳았다.  
 

책에 소개된 칼라니티 가족 사진. 저자 폴, 아내 루시, 딸 케이디. ⓒ SUSZI LURIE MCFADDEN

   
죽음이 삶의 과정이 될 때 할 수 있는 일들

그의 비범한 선택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아이를 낳기로 한 데서 끝나지 않았다. 남은 나날을 요양하며 몸을 추스를 거란 예상을 뒤엎고, 증세가 호전되자마자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복직했다. 하루 10시간 서서, 매스 1mm의 오차도 치명적인 뇌수술을 해야 하는 최고참 레지던트 자리로 돌아간 거다. 거기에 작가의 삶까지 더했다. 노트북을 켜고 <숨결이 바람 될 때> 원고 집필을 시작했다. 화학 요법으로 손끝이 갈라져 특수 장갑을 끼고 자정이 넘을 때까지 글을 썼다.

차라리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파라솔 밑에 누워 오렌지주스나 마시며 쉬었다면, 보는 이들의 마음도 편했을까. 죽음을 목전에 둔 폴 칼라니티는, 어째서 더 사랑하고 더 일하며 더 꿈을 좇는 남다른 선택을 한 걸까. 이런 비범한 선택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건 영원을 살 것처럼 아몬드 나무를 심는 어느 그리스인 할아버지와 내일 죽을 것처럼 산다는 조르바가 어쩌면 똑같을지도 모르는 것과 같았다(그리스인 조르바 중.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즉, 죽음에 대한 이해만큼이나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중요했다.


각자에게 중요한 가치들을 묵묵히 따라가는 선택을 통해, 죽음을 삶의 비극이자 종착이 아닌, 삶의 한 과정으로 만들 수 있었다. 폴 칼라니티에겐 아이와 아내, 레지던트로서 얻는 보람, 작가 활동으로 얻는 성숙이, 캘리포니아 해변의 오렌지주스보다 귀했던 것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 표지 ⓒ 흐름 출판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나는 모든 이가 언젠가는 마주치기 마련인, 삶과 죽음과 의미가 서로 교차하는 문제들은 대개 의학적 상황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94쪽)

죽음이란 무엇인가

폴 칼라니티는 죽음을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을 죽기 직전까지 실천했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암을 극복한다는, 바라던 반전은 없었다. 
 
(케이디 너는)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234쪽)

이 문장을 끝으로 책은 갑자기 끝났다. 딸이 미처 걸음마를 하기도 전에 숨을 거뒀기 때문이다. 미완의 원고는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가장 잘 드러냈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며, 누구나 미완성의 삶을 산다는 점을 말이다. 

케이디와 루시는 어떻게 되었을까? 루시 칼라니티는 새 연인인 존 리그스를 맞이했다. 새 연인도 아내(니나 리그스)를 유방암으로 잃었던 사람이다. 대학 글쓰기 강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였던 니나 리그스는,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를 집필한 후 숨을 거뒀다.

니나 리그스가 '루시와 연락을 이어가면 좋겠다'며 유언을 남긴 덕분에, 루시와 존은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며 자연히 연인이 되었다. 아내가 자신의 행복을 좇아 살아가는 일상, 폴이 그토록 바라던 해피엔딩이 아니었을까.
 

니나 리그스의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 북라이프

  
죽음을 선정적으로 그리려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을 때 인생을 즐기라고 훈계하려는 것도 아니야. 그저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이지. (252쪽)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 앞에 죽음이 있다. 몰랐던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숨결이 바람 될 때>를 통해 작가가 묘사한 죽음보다 생생한 삶을 통해 누구나 죽음을 향해 담담히 걷고 있음을 깨닫는다. '도덕적인 명상은 도덕적인 행동에 비하면 보잘것 없다(66쪽)'던 폴의 지론처럼, 죽음에 대한 명상을 마치자. 그리고 우리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영원을 살 듯, 내일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흐름출판, 2016


#숨결이바람될때 #폴칼라니티 #말기암 #시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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