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공약에도... 또 다시 독립유공자 인정 못 받은 아버지

[박만순의 기억전쟁] 정혜열가 이야기① 해방 전에 죽어야 독립유공자가 된다?

등록 2018.10.10 18:24수정 2018.10.16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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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서국가보훈처의 답변서(2017년) ⓒ 박만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도 정부 포상하겠다"는 기사가 언론을 도배했다.

정혜열은 여러 신문에서 비슷한 기사를 보았지만 시큰둥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국가보훈처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사월혁명회 상근자 한찬욱씨가 설득했다.

"선생님,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 다시 하세요."
"싫어요. 두 번이나 안 되었는데, 뭐 달라질 게 있다고 또 해요."
"아녜요. 이번에는 정부 입장이 예전과 정말 다른 것 같아요."


정혜열은 한씨의 강권에 밀려 결국 아버지 정상윤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을 재신청했다. 2018년 7월 25일 국가보훈처에 제출한 서류에 대한 답변이 일주일 만에 도착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우편물을 개봉했다. "귀하께서 이번에 제출한 독립유공자 관련 자료 등에 관한 면밀한 검토와 재조사를 거쳐 정상윤 선생을 2019년 3.1절 계기 독립유공자 심사에 부의"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한숨부터 나왔다. '혹시나'했지만 '역시나'였다.

지난 6월 8일 국가보훈위원회가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중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하지 않은 인물들 위주로 정부포상을 검토하겠다"고 한 결정을 믿은 자신이 바보 같았다. 이미 2011년과 2017년 두 차례 걸쳐 아버지의 독립운동가 서훈 추진에 실패한 아픔이 되살아났다.

물론 지난 두 번의 신청서에 대한 답변은 완전히 절망적이었다. '광복 이후의 행적 이상(異常)으로 독립유공자 포상대상에 제외'된다는 공식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사회주의였다 하더라도 독립운동가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공약을 내건 바 있다. 이후 국가보훈위원회는 2018년에야 그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하지만 정혜열은 이번에도 미소지을 수 없었다.

여전히 '찬밥 신세'인 아버지
 

출소한 독립운동가들1930년 출소 후 동지들과 함께(뒷줄 왼쪽 세 번째가 정상윤) ⓒ 박만순

 
 "명치대 3년생 정상윤, 징역 5년!!!"

한반도 서북 방면의 끝자락에 있는 신의주지방법원에 이천만 조선동포의 이목이 집중되는 재판이 열렸다.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는 1929년 11월 13일 법원에서는 "치안유지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정상윤을 징역 5년에 처한다"는 선고가 내려졌다. 나머지 동료들도 5~7년의 중형이 내려졌다(동아일보, 1929년 11월 22일)

이른바 '신간회 철산지회' 사건이다. 1927년 출범한 신간회는 민족유일당 협동전선 방침을 갖고 좌·우가 합작한 항일운동단체이다. 신간회는 창립하자마자 지회설립이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졌다. 몇 년 이내에 120~150개 지회에 2만~4만 명의 회원이 참여했다. 즉, 신간회는 일제 강점하 최대 규모의 반일사회운동단체였다.

평안북도 철산군 출신 정상윤(1905년생)은 일본 명치대(明治大) 3년 재학 중 고향에 와 신간회 설립에 고군분투했다. 1928년 8월 12일 평북 철산군 여한면 동덕동 석봉약수 부근에서 신간회 철산지회 발기인총회를 개최하였으며, 정상윤은 사회를 보았다.

정상윤이 철산지회에서 지부장을 맡았다는 중외일보의 기록이 있지만 여타 신문이나 판결문에는 다른 기록이 나타난다. 어쨌든 정상윤이 철산지회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로 인해 그는 1심에서 징역 5년을 받았고, 2심에서는 집행유예를 받았다. 최종심에서는 보석결정을 받아 1930년 5월 5일 1년 8개월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그는 석방 후에도 '문맹퇴치'와 '민족사상 고취'의 기치를 내걸고 야학활동을 했다. 이런 그의 항일운동이 인정되어 진실화해위원회는 2007년 정상윤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진실화해위원회, 「정상윤의 신간회 평북 철산지회 결성활동 사건」, 『2007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그러면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항일독립운동가로 인정받은 정상윤이 2018년 현재까지 또 다른 국가기관인 국가보훈처로부터 찬밥신세를 받고 있고 있는 실제 이유가 무엇인가? 국가보훈처의 공식입장대로라면 '광복 이후 행적 이상(異狀)'이라는 것이다. 즉, 해방 이후 활동이 불분명하고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좌익은 공산성, 우익은 극장에서 집회"
 

처형 대기중인 대전형무소 재소자들트럭에 실려 산내로 이송된 재소자들(박도 사진집) ⓒ 박만순

 
해방 후 정상윤은 주민들로부터 공주군 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현재의 공주시장 격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평북에서 항일운동을 하다가 1941년 공주로 이주를 했다. 그의 일제 하 전력을 알고 있는 공주군민들이 그를 인민위원장으로 추대한 것이다.

하지만 미군정은 인민위원회를 인정하지 않았고 좌익을 탄압했다. 그렇지만 1946~47년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공주에서도 정치·사회운동의 중심축은 좌익에 있었다.

정상윤의 딸로 어린 나이에 좌익이 주최한 집회에 열심히 참여한 정혜열(85·서울시 은평구 갈현1동)은 "좌익은 공산성에서, 우익은 읍내 극장에서 집회를 열었어요. 당시는 좌익을 지지하는 이가 국민의 70~80%였어요"라고 한다.

정혜열은 공산성에서 집회를 마친 시위대열이 공주 읍내를 행진할 때 외쳤던 구호를 지금까지도 기억한다. "이승만과 김구를 타도하라"는 것이다.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과 미·소공동위원회 결정에 대한 좌·우 갈등 시 보수적 태도를 견지했던 이승만과 김구를 비판한 것이다.

공주의 정치활동을 주도했던 정상윤은 1949년 검거되어 충남 강경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정혜열은 이때부터 아버지 정상윤의 옥바라지를 했다. 그러다 미결수 신분으로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고, 1950년 7월 초 대전 산내에서 대한민국 군·경에 의해 집단 학살되었다.(진실화해위원회, 「대전·충청지역 형무소 재소자 사건」, 『2010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즉, 정상윤은 해방 이후 활동이 묘연한 것이 아니다. 공주인민위원회 활동을 주도했고, 정부 수립 전후까지 공주 사회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다가 1949년 체포되었고, 1950년 군·경에 의해 불법적으로 학살되었다. 이것이 진실이고 그의 분명한 행적이다. 그런데 왜 국가보훈처는 작년까지 "행적이 이상(異狀)"하다고 뻗대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가보훈처는 일제강점하 사회주의 신념을 갖고 독립운동을 한 이들 중에서 해방 후 좌익 활동한 이들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셈이다. 물론 다르게 표현하면, 해방 후 좌익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독립유공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방 후 좌익'이면 독립운동가 아니다?
 

확인사살하는 군인확인사살하는 군인(박도 사진집) ⓒ 박만순

 
정부는 2005년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54명을 독립유공자로 결정한 바 있다. 여운형, 권오설, 조동호, 구연흠, 김재봉이 포함되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말 사망했거나, 해방 후 좌익 활동을 하지 않은 이들이다.

이런 결정은 웃지 못할 결과를 낳았다. 소설가 안재성은 "경성트로이카 활동을 같이 한 이재유는 독립유공자로 결정되고, 이관술은 되지 못했어요"라고 한다. 사회주의자 이재유는 1944년 10월 26일 청주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즉, 해방 전에 사망해서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것이다.

반면 이관술은 해방 후 좌익 활동의 중심에 섰다. 조선공산당 재정부장을 맡은 그는 1946년 7월 '조선정판사 위조지폐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1950년 7월 초 대전 산내에서 후퇴하는 대한민국 군·경에 의해 학살되었다. 해방 후까지 살아남아 좌익 활동을 한 것이 이관술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지 못한 이유이다.

국가보훈처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 정혜열은 절망하지 않는다.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아버지의 항일운동을 인정받았고, 부친의 죽음에 대해서도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배·보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진행했다. 미군사건과 적대세력에 의한 사건(북한군과 지방좌익에 의한 학살사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승소해, 배·보상을 받았다.

하지만 정혜열은 민사소송에 참여하지 않았다. 기자가 그 이유를 물었다. 정씨는 "당시 아버지의 신념이 옳았다고 생각해요. 불법적인 죽음을 당하기는 했지만 재판을 통해 보상을 청구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알량한 돈을 받는다면 아버지의 정신이 훼손되는 것 같아서요"라고 했다.

국가의 과거사 진실규명작업이 절차상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와 억지 춘향 격으로 알량한 보상을 하면 끝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정혜열의 판단은 이런 식의 과거사 진실규명 작업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 볼 수 있다.

독립운동가가 일제시대 말기에 변절을 해, 정신대나 징병·징용을 강권하는 역할을 했다면 독립유공자에서 제외되어야 함은 마땅하다. 또한 해방 후 반인권행위나 독립운동가로서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독립유공자로서 자격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하지만 좌익 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독립유공자에서 제외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어긋나는 것이다.

현재 남북관계는 21세기의 시대정신에 맞게 평화의 길로 가고 있다. 국가보훈처 역시 시대의 흐름에 맞춰, 과거의 낡은 사고를 버려야 할 때이다.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해방 후 활동에 색안경을 쓰고 판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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