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은 그만하라지만... 마을 기업, 멈출 수 없다"

[인터뷰] 교동 장독대마을 이수인 대표

등록 2018.10.11 16:56수정 2018.10.1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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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 장독대마을 이수인 대표 이수인 대표는 "분업과 협업이 조화를 이룰때 가장 성공적인 마을기업, 공동체가 된다"고 말한다. ⓒ 김영의

 
포천시 관인면에는 교동 장독대 마을이 있다. 술과 도박에 젖어있던 광산촌이던 교동마을이 농촌체험마을로 알려지며 사람들이 찾아올 무렵 한탄강 댐 건설이 시작됐다. 수몰로 이주 후 자기 집터를 제외하곤 땅 한 평 없는 사람들이 남아 다시 만든 곳이 교동 장독대마을이다.

"2006년 한탄강 댐 고시가 되면서 마을공동체가 해체됐어요. 4~5년 공백기를 갖다가 새로 마을을 만들자 뜻을 모은 25가구가 교동 장독대마을을 만들었어요. 주민들이 모여 매주 회의를 하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했죠."

이수인 대표는 이주 후 새롭게 마을을 조성하며 적은 땅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업을 물색했다. '도시민이 와야 소득을 창출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생산과 가공, 서비스가 합쳐진 지금의 장독대마을은 마을주민들의 노력과 지혜의 산물이다.

교동마을에서부터 지금의 교동 장독대마을까지 마을 주민과 함께 새로운 도전과 희망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이수인 대표를 9월 29일 만났다.
 
- 농촌체험마을 하면 농사와 연관된 활동을 생각하게 된다. 교동 장독대마을은 다른 곳과 달리 생산과 가공, 서비스가 결합 된 체험이라는 것이 독특하다.
"농촌은 땅이 있어야 농사를 짓는다고 생각하는데 농업은 생산만 하는 1차가 아니라 생산과 가공과 서비스가 어우러진 복합적인 4차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농토가 없더라도 서비스 산업을 통해 같이 어우러지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동체를 통해 상호 간에 공유경제, 공유농업, 사회적 경제를 이루어갈 수 있는 것은 도시보다는 농촌이 좋은 조건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수인 대표는 "농업계 학교를 졸업한 후 농사만 짓고 살기는 힘들고 차마 떠날 수는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농업은 무엇을 팔아야 할까?' 생각하게 됐다"라고 했다.

교동마을이던 1980년, 봉선화 꽃을 심었다. 꽃물을 들일 수 있도록 꽃과 꽃잎, 명반을 포장해 서울에 가서 판매했다. 반응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이제 농업은 이렇게 가는 거다' 생각했다.

이 경험은 교동 장독대마을로 이어졌다. 도시민이 먼저 찾는 마을을 고민하며 뽕나무를 심었다. 뽕잎 나물, 뽕잎 분말, 뽕잎 쌀 식빵, 뽕잎 쿠키, 뽕잎 진액, 누에 사육, 생 오디 판매, 오디 잼, 오디 케이크, 오디 식혜 등 다양한 상품들로 이어졌다. 농사를 짓지 않는 마을 주민들도 가공사업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체험 마을로 자리 잡은 비결이다.
 
- 수몰 후 다시 마을을 만들고, 농촌체험마을로 인정받아 성과를 내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이주 후 마을을 새로 만들며 도롱뇽이 많아 도롱뇽 교자를 썼던 '교동'을, 농촌체험마을에 맞게 어머니 정신이 깃들어 있고 기다림의 미학이 있는 장독대마을로 개명했다. 마을주민들은 각자 원하는 교육을 통해 바리스타, 제과제빵, 꽃차 만들기 등 1인 1개 이상 자격증도 취득했다. 포천시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식체험관, 누에장 사업, 체험관 등도 지었다.

지금은 대표적인 사업 중 하나인 장 담그기 체험은 마을 이름에 맞게 행안부의 지원을 받아 항아리 600개를 구매하며 시작됐다. 항아리를 채우려니 비용이 너무 들어 '농사짓는 거로 하나둘 채워보자'며 장 담그기 체험을 만들게 됐다. 뽕잎 뿌리 고추장, 고로쇠 고추장 등 레시피도 우리가 직접 만들었다.
 
교동 장독대마을은 삼시 세끼 프로그램, 쌀 클레이 체험, 농산물 푸드테라피, 고추장 만들기, 농산물 수확체험, 고추장 만들기 등을 연중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방문객 1만 500여 명, 공식 매출 1억 8350만 원이며 영업 순이익만 4000여만 원이다. 이중 카페 개원에 필요한 비용과 적립금 10%를 제외한 수익금을 마을 내 70이 넘으신 어르신들에게 '행복나눔 실버사랑 연금'으로 지급했다. 마을공동체 활동이 대외적으로 인정받은 원동력이기도 하다."
 
- 수익을 내고 다시 마을에 환원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마을에서 법인을 만들 때 약 10년간은 손익분기점을 넘어도 어느 괘도에 올라갈 때까지는 출자배당을 하지 않기로 했다. 수익이 많지도 않지만, 출자배당보다는 재투자와 사회환원이 필요하다고 뜻을 모았기 때문이다.

마을 카페를 올 6월 개원했는데 수익금이 있어 가능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부녀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영농기업이 본점이고 카페가 첫 번째 지점이다. 장기적으로는 분야마다 지점을 설립해 마을 사람마다 하나씩 전담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분업과 협업이 조화롭게 이뤄질 때 성공하는 마을기업, 공동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보면 나는 미친 사람이다. 마을 일 때문에 농사일도 다 포기했고 일은 다 하면서 욕이란 욕도 다 얻어먹는다. 집사람이랑 아이들은 그만하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난 '마을이 성장하면 우리가 망해 굶어 죽게 될 때 굶지는 않을 거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대표는 "댐이나 정부의 국책사업이 일어나는 곳에는 굉장한 갈등이 생긴다. 갈등 속에서 다시 마을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보니 만들고 나서도 원망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라며 "마을 지속성을 위해 이장과 내가 마을 대표로 CEO로 운영하다 보니 힘들지만 마을이 성장하면, 마을을 통해 마을 주민들이 먹고 살길이 생길 것이란 믿음 때문에 멈출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교동 장독대마을 #농촌체험마을 #체험프로그램 #장담그기 체험 #마을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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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다문화뉴스 등에 기사를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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