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핵심협약 비준과 국격

'노동존중 사회'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가 역사적 기회 잘 끌어안길

등록 2018.10.12 10:48수정 2018.10.1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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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선거공판 참석을 거부하면서 전직 대통령의 법정 출석이 TV로 생중계되는 게 국격을 해칠 수 있다는 사유를 댔다. 재판을 받는 전직 대통령이 국격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부터 참으로 궁색하다는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불출석 사유서에서 국격을 운운하는 것의 적절성, 발언자의 이율 배반 정도를 떠나서 나라의 품격이 무엇인지 생각할 계기는 제공했다.

국가의 대외적 품격과 위상을 의미하는 국격(國格)은 복잡하고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 그렇다 보니 정부가 단일 조직과 의도가 담긴 개별 정책을 통해 국격을 높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브랜드위원회'를 두고 국격을 관리하려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은 그때부터 나라의 품격, 위상에는 관심이 많았던 것 같으나, 이는 국격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기인한 정책으로 볼 수 있다.

어느 정부건 국격을 전면에 내세우고 관리하지 않더라도 국제적인 평판과 여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국제사회에서 고립이 아닌 개방과 연대, 공존을 표방하는 나라라면 말이다. 국제 관계와 외교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중요한 한국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국격을 수치화할 수 없지만, 이에 준하는 국제사회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면서 국정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

국격을 우리나라가 대외적으로 비춰지는 모습이라고 했을 때 중요하게 고려할 점이 있다. 많은 국제기구 및 NGO에서 내놓는 평가 기준과 순위다. 우리에게 친근한 UN(국제연합), IMF(국제통화기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등은 각종 보고서와 통계 자료를 통해 특정 분야에서 각 나라의 위치를 알려준다. 많은 분야 중 경제 부문에서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대열에 포함되는 것으로 평가받지만, 노동, 여성, 복지, 환경 부문에서는 경제적 위상과 비교하면 현저히 뒤처져 있다.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국격 높여야

국제적 평가에서 아쉬운 부분 중 한 가지 예를 들면,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의 핵심협약(기본협약) 국회 비준이 있다. ILO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노동기준을 제정하여 협약과 권고 형태로 만드는데 이는 세계 각 국가 노동법을 위한 모델 역할을 한다. 이러한 과정은 각 국가의 정부가 ILO 협약을 비준하고, 그 협약의 취지를 살려 관련 법률을 제정, 개정하면서 이뤄진다. 현재까지 ILO 협약은 189개다.

15.3%.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1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189개 ILO 협약에 대한 비준율이다. 그렇다. 세계에서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위치다. 좀 더 살펴보자. ILO는 국제노동기준의 기본이 되는 네 가지 분야의 협약을 핵심협약(fundamental conventions)으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핵심협약 8개 중 4개(아동노동금지와 관련한 제138호․182호 협약, 기회균등과 관련한 제100호․111호 협약)를 비준하고 4개(결사의 자유와 관련한 제87호․98호 협약, 강제노동금지와 관련한 제29호․105호 협약)를 비준하지 않고 있다.

2018년 현재 187개 ILO 회원국 중 결사의 자유와 관련되는 제87호 협약은 155개국, 제98호 협약은 165개국, 강제노동금지와 관련되는 제29호 협약은 178개국, 105호 협약은 175개국이 각각 비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예외다.

OECD 36개국 중 핵심협약 모두를 비준하지 않은 국가는 우리나라와 함께 미국, 일본, 뉴질랜드, 호주, 멕시코가 있다. 결사의 자유와 관련된 2개 협약을 모두 비준하지 않은 OECD 국가는 미국과 우리나라 뿐이다. 그리고 2017년 이코노미스트지(The Economist)가 발표한 국가별 민주주의 지표에 따르면, 상위 20개국 중 핵심협약을 모두 비준하지 않은 국가는 우리나라, 뉴질랜드, 호주 3개국에 불과하고, 결사의 자유와 관련되는 두 개의 협약을 모두 비준하지 않은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게 우리나라가 가진 세계 속의 현주소다.

법정 출석을 거부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에 ILO는 이명박 정부 출범 뒤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에 따라 진행된 노조탄압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권고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그가 높이기 원했던 국격이 훼손되는 순간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기간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노동기본권 보장을 약속했고, 이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도 포함됐다. 이제 대한민국이 국제적으로 국격을 높일 수 있는 때가 왔다. 때마침 2019년은 ILO 창립 100주년이자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이다. '노동존중 사회'를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가 역사적 기회를 잘 끌어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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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사회 이슈,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 많은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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