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찾기 위한 꿈틀거림이 내 인생의 키를 잡게 했다

[우수]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독후감대회 수상작

등록 2018.10.17 10:57수정 2018.11.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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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오연호 지음)를 읽은 다양한 독자들이 '행복한 나',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우리 안의 덴마크, 우리 안의 꿈틀거림을 응원합니다.[편집자말]
나는 서울대학교 학생이다. 나는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에서 언급된, '경쟁에서 승리한 10%'에 속하는 사람일 것이다. 동시에 누구보다 열심히 사회적 기준에 순종한 사람이기도 하다. 학구열이 있거나 좋은 성적을 바탕으로 정말 이루고 싶은 무엇이 있어서 그토록 열심히 공부했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속 빈 강정과 다름없었다.


학벌을 중요시하는 가정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공부는 생활의 전부였고, 그렇게 들인 노력과 시간을 통해 꽤 자주 '전교 1등'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학창시절 내내 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독하고 우울했다.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읽고, 내 삶을 되돌아보니, 비로소 내가 그토록 불행하고 고독한 학생이었던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나 자신의 정체성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유대는 잔인하리만치 나의 학창시절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예술을 사랑하고,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은, 야망 없는 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취업 전망이 좋은 이과를 택했고, 언제나 큰사람이 될 것이란 기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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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책 표지 ⓒ 오마이북

 
꿈도 목표도 없이 기계적으로 스스로를 학대하듯 공부했던 내가 입시 상담 때면 물었던 "왜 서울대를 가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어떠한 저명한 입시 상담가도 공감할 만한 답을 해주지 않았다. 나는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사람들이 말하는 탄탄대로를 따라 걸을 수밖에 없었고, 그 길에서 벗어나도 된다는 발상조차 하지 못했다.

서울대생이 되었지만...나를 망가뜨리는 방황은 계속되고

말 그대로 '피 터지는' 입시 경쟁 속에서 친구들이 바라보는 전교 1등은 '걱정이 없어야만 하는 존재'였다. 전교 1등은 슬퍼할 권리도, 좌절할 권리도, 방황할 권리도 없었다. 모든 것이 배부른 고민으로 치부되었다.


경쟁을 하면서 가끔은 교실이 가시밭처럼 느껴졌고, 사람들 속에 있어도 사방이 벽에 둘러싸인 기분이었다. 이미 내가 되어야 하는 나는 정해져 있었고, 나는 그러한 상황을 타파할 방법을 알지 못했기에 세상을 살려면 응당 치러야 하는 통과의례쯤으로 생각하며 기꺼이 바람직한 모습이 되고자 애썼다.

그렇게 내가 내 안에 갇혀 있었던 그 시간들은 날 가장 많이 망가뜨린 시간이 되었다. 또한 정말 무섭게도, 끝없이 스스로를 재단하며 망가져간 그 시간조차 나는 성적이 잘 나온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가장 촉망받는, 훌륭한 학생 중 한 명이었다. 그렇게 나는 서울대생이 되었다.

서울대 합격 통보 다음 날 아침, 나는 마치 그동안의 억눌린 감정이 터진 듯 펑펑 울었다. 내 힘으로 멈출 수 없는 기차에 타버린 기분이었고, 서울대라는 학벌은 나의 다른 수많은 특징들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수많은 축하 세례가 이어졌고 나는 밖에서는 빛나는 서울대생, 학교 안에서는 우울한 새내기가 되었다.

한 번도 인생을 스스로의 의지로 살아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 방황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주어진 길고 긴 하루를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알지 못해 당혹스러웠다. 국내 최고 대학의 명강의들은 지루했고, 이런저런 모임에 가서도 큰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주변 새내기들을 따라하며 꾸역꾸역 첫 학기를 마쳤다. 나에게 남겨진 것은 학사경고를 겨우 면한 성적표와 불규칙한 생활로 망가진 몸이었다.

더 절망적인 것은 앞으로의 인생에 아무런 기대감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오랜 시간 혼자 방에 틀어박혀 스스로에 대해 생각했다. 취향도, 여유도 없이 살아온 나의 마음은 기형적으로 성장해 있었다. 마치 수없이 짓이겨진 깡통처럼 우그러들고 위축돼 있는 느낌이었다. 스스로를 학대하면서 안정을 찾고, 남들보다 무엇인가를 잘해내야 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마음이 굳어져버린 것 같았다. 나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거란 생각에 끝없이 무기력해졌다.

삶과 죽음 사이에 애매하게 끼어버린 것처럼 나는 끝없이 침전했다. 그리고 무기력이 극에 달한 어느 날, 나는 문득 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어떤 사람이지? 햄버거 취향도 몰랐던 나 

나는 내 삶에 새로운 파동을 만들기 위해 많은 일들을 벌였다. 외적으로는 한 달에 한 번씩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 가서 온갖 종류의 옷이나 신발을 사서 입어봤다. 내적으로는 내 성향과 취향을 알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학교 햄버거 가게에 매일 가서 메뉴를 하나씩 다 시켜보면서 어떤 메뉴가 내 입맛에 맞는지 찾아봤다. 꼭 필수과목이 아니어도 그냥 관심이 가는 교양강좌로 시간표를 가득 채우기도 했다. MBTI나 애니어그램 등의 심리검사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분석해보기도 했다.

가장 노력했던 것은 추한 감정일지라도 매 순간 내 감정에 충실하고, 아주 작은 욕구일지라도 존중하고 시도해보려고 애썼다. 이러한 경험을 하면서 나는 내가 치즈버거를 좋아하는지 게살버거를 좋아하는지, 하얀색 셔츠가 잘 어울리는지 혹은 검은색 셔츠가 잘 어울리는지, 내가 어떤 유형의 성격을 가졌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이에 더하여 되도록 많은 실수와 실패를 했다. 언제나 모범적이어야만 했던 내 모습에 많은 얼룩을 만들었다. 알바를 하면서, 여행에서, 또는 인간관계에서 무모한 도전을 하고 난감한 상황들을 맞이했다. 그러면서 나는 실패와 무안에 대한 면역을 기를 수 있었다. 당연히 정적이기만 했던 내 삶이 수없이 요동치면서 많이 아프고 괴롭기도 했지만 나는 처음으로 내가 인간적으로 살아 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만의 '솔직한' 태도로 사는 법을 터득해나갈 수 있었다.

내 전공은 식품영양학이다. 식품영양학의 일반적인 진로는 약대·치대·의대 편입, 로스쿨 진학, 식품 관련 기업 취업 혹은 대학원 진학 등이다. 이러한 길도 충분히 가치 있고, 만약 내가 식품영양학, 적어도 자연과학에 어느 정도 흥미가 있다면 이 중에 하나를 택해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에 대한 탐구를 하는 과정에서 내가 예술에 대한 열정이 상당하고, 자연과학에는 지독히도 흥미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졸업을 준비하던 4학년, 나는 내가 타고 있던 기차에서 뛰어내렸다. 나는 식품영양학과 학생들이 대부분 응시하는 그해 말 영양사 시험을 취소하고 미술대학 서양화과 부전공을 신청했다. 당연히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같은 과 선배 중에 이러한 선례가 없었고, 식품영양학과 비슷한 전공도 아니었기에 결단을 내리기까지 한 달간은 거의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세상이 정해준 선로가 아닌 내 인생의 '키'를 잡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결국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스스로 굵직한 선택을 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1년을 더 대학에 머무는 동안 나는 내 안의 학구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과 조언을 구할 교수님을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학교를 다니면서 거의 포기 수준이었던 학점도 기대 이상으로 향상되었다. 미래의 밥벌이는 상당히 불투명하게 되었고 매일 알바를 하는 상황이지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만약 1년 전, 눈 딱 감고 샛길로 움직일 용기를 내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과 같은 또 다른 세상을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전에 없었던 나만의 길을 만들어내면서 통쾌함을 느꼈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색다른 사례를 제공할 수 있었다. 현재 나는 성공과 실패, 금전적 여유와 관계없이 비로소 내 인생의 키를 잡게 됐다고 믿을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짧은 인생을 돌아보면서, 내가 이 책의 내용을 알지 못했던 시절부터 이미 본능적으로 행복을 찾기 위해 꿈틀거림을 시도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꿈틀리 인생학교'와 같이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한 꿈틀거림의 사례들이 더 많이 제시되어 있다. 하지만 중고생들뿐만 아니라 현재 취업 전선을 맞닥뜨린 나와 같은 20대들의 꿈틀거림도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주요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20대들이 스스로 원하는 분야를 찾아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일을 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그들의 '용기'가 가장 중요하다. 안정적으로 보장되지 않은 길을 어떻게 타인이 선뜻 가보라고 권할 수 있겠는가?

결국 선택은 스스로, 그 안에서 만들어진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20대들이 돌고 돌아서 자신의 행복을 찾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질 수 있는 용기를 냄으로써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주축이 되길 바라본다.
 
#우리도사랑할수있을까 #우리도행복할수있을까 #행복사회 #독후감 #오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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