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화로 예약... 인터넷 없이 어떻게 여행했을까

비디오테이프 보고 떠난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만의 매력

등록 2018.10.12 14:58수정 2018.10.1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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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오브 뮤직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비디오테이프를 대여하는 것으로 오스트리아 여행 준비는 시작되었다. 딱히 어떤 이유가 있었다기 보다는, 그래도 오스트리아를 가는데, 그 중에서도 찰스부르크라는 도시를 가려고 하는데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지 않고 간다는 것은 마치 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갖고 가지 않는 것처럼 불경(?)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때는 그랬다. 인터넷만 접속하면 수많은 여행 정보가 쏟아지던 때도, 와이파이와 스마트폰으로 필요할 때마다 정보를 찾아볼 수 있었던 때도, 내가 맞게 가는지 아닌지를 실시간 지도로 확인할 수 있었던 때도 아니었다.

여행 정보라고는 일본 책을 그대로 번역한 수준의 것이 전부였고, 게스트하우스와 동네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얻어야 했으며, 종이 지도를 펼쳐 놓고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를 살펴보아야 했던 그런 때였다. 당연히 여행 중에 원하는 영화를 원하는 때에 보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여행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 때의 여행이 더 낭만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철수부르크에 도착했을 때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짐을 늘리기 싫어서 한참을 고민했지만 결국엔 샛노란 접이식 우산을 기차 역에서 샀다. 그리고는 거스른 잔돈으로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었다. 맞는지 틀리는지도 알 수 없는, 명함의 1/4 크기도 안 되는 아주 작게 표시된 전화번호 하나만 믿고 찰스부르크에 온 것이다.

신호가 가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가 있냐고 물었다.
있다고 했다. 오늘, 당장 참가할 수 있냐고 물었고, 오후 2시에 시작하는 게 있으니 가능하다고 했다. 예약하겠다고, 픽업해줄 때 돈을 주겠다고 하고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는 통화를 마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그 여행사 직원도 서로 뭘 믿고 전화 한 통으로 그런 얘기들을 할 수 있었는지 신기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기차역에서 기다리다 시간에 맞춰 우산을 펼쳐 들고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기차역 주변의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다지 멀지 않은 약속 장소는 생각보다 찾기 쉬웠다. 지도가 없었는데도. 

잠시 후 도착한 여행사 직원과 간단한 인사 후 올라 탄 45인승 대형버스 안은 나를 당황시켰다. 동양인은 오직 나 한 사람뿐이었고 모두 백인들이었던 것이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어렵사리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얼마나 갔을까. 드디어 버스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 장소에 여행객들을 내려주었다.

가끔씩 사람의 감정이란 걸 과연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가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형체가 없어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람의 감정이 과연 '글'이라는 것으로 시각화가 가능한가라는 그런 생각.

그때가 그랬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주인공 폰트랩 대령의 저택을 바라보면서, 폭우 속에서 비를 피한 채 리즐과 롤프가 함께 춤을 추며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렀던 곳에 발을 내딛으면서 느꼈던 감정은 그 어떤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 그 자체였다. 7명의 아이들과 마리아 선생님, 그리고 폰트랩 대령의 모습이, 그들이 불렀던 노래가, 서로에게 전했던 대화들이 되살아 나는 듯했다.

어쩌면 그 때가 처음으로 실제 영화 촬영장소를 가봤기에 그랬으리라고 어림짐작을 해보지만, 단순히 그렇다고 하기엔 그때의 감동은 살아있는 모짜르트를 만난다 하더라도 가질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것이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영화 [킹콩], [씨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의 배경 ⓒ 김원규

   

KL 트윈타워. 영화 [앤트랩먼트] 촬영지 ⓒ 김원규

  
그리고 그때의 경험은 긴 시간이 흘러 뉴욕과 홍콩 그리고 마카오와 쿠알라룸푸르 같은 곳은 여행할 때마다 비슷한 감동을 나에게 선물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는 <러브 어페어>와 <킹콩>의 감동을, 홍콩에서는 <천장지구>와 <중경삼림?의 추억을, 마카오와 쿠알라룸푸르에서는 <도둑들>과 <앤트랩먼트>의 긴장감을 선물 받았다.

이제는 세상이 좋아져 여행 중이라도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고집스럽게 여행 전에 여행지에 관한 영화를 보려고 노력한다.

영화를 보며, 그 영화에 대한 자료를 찾으며 그 곳에 대해 느꼈던 흥분과 기대감을 잊을 수가 없어서. 여행이 줄 수 있는 또 다른 감동을 잊을 수가 없어서.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저서로는 <영화를 보고 나서 우리가 하는 말: 영화에서 찾은 인문학 키워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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