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17 18:02최종 업데이트 18.10.17 18:02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오연호 지음)를 읽은 다양한 독자들이 '행복한 나',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우리 안의 덴마크, 우리 안의 꿈틀거림을 응원합니다.[편집자말]
스무 해를 살아오면서 나는 처음으로 책을 읽다가 눈물을 흘렸다. 여러 번 흘렸다. 바로 1년 전까지 우울증으로 매일 괴로워했던 내가 떠올랐다.

대학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울면서, 죽는 순간의 고통만 없다면 정말 죽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때는 그게 우울증인지도 몰랐다. 다 그러고 사는 줄 알았다. 누구 탓을 할 수도 없었다. 같은 학교에서 같은 수업을 받아도 어떤 친구들은 1, 2등급을 받으며 성공적인 대학 입시와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데, 내 성적은 아무리 공부해도 3, 4등급에서 벗어날 생각을 안 했다. '인서울' 대학을 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너무 캄캄하고 두렵고 막막했다.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읽으며 눈물을 흘린 이유는 내가 행복하지 못했던 이유가 '내 탓'이 아니라고 해줬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압박감에 매일 힘들어했던 나는 당연히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 내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는 걸까.'

매일 밤마다 속으로 온갖 자해를 해댔다. 타인에게는 절대로 못할 끔찍한 말들을 나에게는 스스럼없이 해댄 것이다. 어느 정도 우울증을 극복하고 대학에 왔지만,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계속 내가 부족하다고만 생각했다.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책 표지 ⓒ 오마이북

 
하지만 이 책은 '90%를 실패자로 만드는 시스템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스스로, 더불어, 즐겁게"하지 못하는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도끼로 머리를 얻어 맞은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고, 쌓였던 서러움이 흘러나와 울 수밖에 없었다.

'그랬구나. 내가 죽고 싶었던 게 그저 내 잘못은 아니었구나.'

넘어져서 생긴 상처가 아물어도 흉터가 남듯이 우울증은 극복했지만 후유증은 남았다. 아직도 그 시기를 생각하면 눈물을 삼키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 덕분에 크게 얻은 것도 있다. 바로 내가 나를 사랑할 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힘들어했던 내가 없었다면 인생에 대한 깊은 고민도 못했을 것이고, 나를 사랑할 줄도 몰랐을 것이고, 행복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지금처럼 뚜렷한 주관을 가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비록 나는 목표였던 '인서울'에 가지 못했고 지방대를 다니고 있지만, 이곳에서 만난 인연들이 좋고,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계획을 세우는 내가 좋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도하는 내가 좋다.

내가 이렇게 자기애를 갖고 난 후 과거의 나와 제일 많이 바뀐 점을 꼽으라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혼자 밥을 먹거나, 카페를 가거나,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다니는 등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만큼이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잘 몰랐던 진지한 생각이 많이 든다. 그중 하나가 '행복'에 대한 고민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와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내 가족, 친구들뿐 아니라 내 '이웃'의 행복을 바라게 되었다. 내 이웃과 내 이웃의 이웃들, 대한민국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나와 같은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우리나라 교육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했지만, 나는 이미 해방된 사람이고, 이제 나를 사랑할 줄도 아니까 앞으로 행복하게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고만 생각했다. 즉 나에겐 '더불어'가 없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돈 벌어서 꼭 외국으로 나가겠다고 생각한 사람 중 한 명이다.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절대로 한국에서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이대로는 악순환이 계속되리라는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단순 도피를 꿈꿨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다. 덴마크는 우리 안에도 있으니까!

내가 살던 마을도 오연호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처럼 시골 마을이다. 어렸을 때 집 앞의 논과 밭을 지나서 마을로 더 들어가면 소를 키우는 집이 있었고, 할아버지들이 경운기를 끌고 다녔고, 가끔씩 집 근처 언덕에서 고라니가 튀어나왔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 때 나는 동네 아이들과 흙을 만지고 올챙이를 잡으며 놀았다. 나름 평범하고 행복한 아이로 살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대학과 진로를 고민하며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을까.

우리 엄마는 내 성적을 가지고 나무라신 적이 없다. 심지어 고등학교를 입학한 후에는 중간에 1년 정도 쉬면서 진로에 대해 고민해보는 게 어떠냐고도 하셨다. 그때의 나에겐 당치 않은 말이었다. 1년 쉬는 것을 1년 뒤처지는 것으로 느꼈으니까.

현재의 나는 '내 페이스에 맞춰 걷다가, 달리다가, 쉬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뒤처진다고 해도 신경도 안 쓰겠지만, 그때는 그렇지 못했다. 정해진 코스와 사회의 눈치에 따라 살아가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인서울'을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 정해진 코스에서 낙오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내가 죽고 싶었던 이유였다.

말로는 별것 아닌 듯이 보일 수도 있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아직 미지의 세계인 '사회'에 제대로 진출하기 전부터 낙오될 수 있다는 공포는 매우 크게 다가온다. 중요한 것은 분명히 나의 선배들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고, 내 친구들도 했을 것이고, 내 후배들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꿈틀리 인생학교'가 열심히 운영되고 있고, 조금씩 그 규모를 늘려나가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 박수를 보내는 한편, 한 개인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교육체계를 바꾸기 위한 여러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간단한 일이 아닌 만큼 오랜 시간이 필요할 텐데, 그동안에도 자신을 혹사시키며 괴로워하고 있을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초등학생 때의 밝은 표정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 스스로, 더불어, 즐겁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은 내 나이 스무 살이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나갈 어른 중 한 명으로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덴마크에 꼭 가보고 싶다. 직접 느껴보고 싶다. 내가 책을 통해 얻은 것은 '저자의 덴마크'를 보면서 느낀 점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느끼고, 고민하고, 대화하면서 '우리 안의 덴마크'를 깨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싶다. 나를 위해서, 당신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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