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차이, 이빨 보면 알 수 있다

[서평] 피터 엉거 <이빨>

등록 2018.10.15 09:08수정 2018.10.15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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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원이 인류로 바뀌는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그림이 우리에게 친숙하다. 작은 키, 상대적으로 긴 팔, 구부정한 허리를 가진 유인원에서 큰 키, 상대적으로 짧은 팔, 쭉 펴진 허리를 가진 현생 인류로 진화하는 그림을 우리는 자주 접하고 있다.

근데 그런 그림에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지만, 눈에 띄지 않는 부분이다. 바로 치아의 진화다. '진화' 하면 떠오르는 우리 머릿속 그림 속의 유인원과 인류는 입을 꽉 다물고 있다. 그래서 치아의 진화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치아의 진화를 살펴보면, 인류가 진화 과정에서 어떤 차별성을 보였는지 드러난다. 음식을 먹는 문제에서 유인원과 어떻게 달랐는지, 짝짓기 경쟁에서 그들과 어떻게 달랐는지 등등이 나타난다.

그 같은 치아의 진화 과정을 다룬 책이 <이빨>이다. 저자인 피터 엉거(Peter Unger, 1963년~)는 미국 아칸소대학 인류학과 학과장이며 생태학 및 진화를 전공한 인류학자다. 섬뜩하게 느껴질 수 있는 동물 송곳니들을 블로그에 실어둔 학자다. 이빨에 미쳐 있는 학자라고 할 수 있다. 번역자는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는 노승영씨다.
 

<이빨>. ⓒ 교유서가

  
총 8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제1장에서 이빨의 중요성을 강조한 뒤, 제2장에서 이빨의 유형과 부위, 제3장에서 이빨의 기능을 설명한다. 제4장부터 제6장까지는 포유류 이빨의 역사를 다룬다. 그런 뒤 제7장에서 인간 이빨의 역사를 다룬다. 제8장은 맺음말 성격의 글이다.

제1장에서 "당신의 이빨을 보여주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리다"라는 19세기 박물학자 조르주 퀴비에(Georges Cuvier)의 명언을 인용한 피터 엉거는 "여러분의 이빨은 5억 년에 걸친 진화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런 치아의 진화가 인류뿐 아니라 다른 생물한테서도 나타났다는 당연한 사실부터 그는 짚고 넘어간다. 초기 척추동물의 경우에는 이빨이 '군비경쟁'에 활용됐고 이를 잘 활용하는 동물이 생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초기 척추동물이 포식자와 피식자의 '군비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한 것은 이빨 덕분이라는 것이 통념"이라고 그는 말한다.

수중 생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턱이 없기 때문에 즉 무악(無顎)이기 때문에, 플랑크톤 같은 먹이입자를 섬모(가는 털)나 강모(억센 털)로 걸러 먹을 수밖에 없는, 다시 말해 여과섭식(filter feeding)을 할 수밖에 없는 칠성장어·먹장어 같은 무악동물이 수중 패권을 상실한 것도 이빨이라는 '병장기'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1장 '이빨은 중요하다'에서 피터 엉거는 이렇게 말한다. 아래 문장에서 '턱과 이빨이'는 '턱과 이빨을 갖춘 어류'로 읽어야 문맥이 맞을 듯하다.
 
"여과섭식을 하는 무악어류는 수억 년 동안 바다를 지배했으나, 턱과 이빨이 진화한 뒤로는 맥을 못 췄다. 20세기의 이름난 고생물학자 에드윈 콜버트(Edwin Colbert)는 이렇게 썼다. '무악 척추동물은 어느 정도 효율적이었으나, 매우 특수한 서식처에 적응한 경우가 아니라면 한 쌍의 위턱과 아래턱이 먹이 획득 메커니즘으로 진화한 세상에서 생존하기에 미흡했다.' 물론 무악어류는 턱이 있는 어류 그리고 (나중에는) 이빨 있는 어류와 공존하면서도 1억년 가까이 순조롭게 살아남았다."
 
그런데 인류한테는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이빨이 잘 발달한 생물이 생존에 유리한 법인데, 인간의 경우에는 이 동물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이빨이 오히려 작아졌다는 점이다. 일례로, 인간의 송곳니는 유인원인 침팬지보다 덜 뾰족하고 짧다. 진화 단계에서는 인간이 앞서 있지만, 치아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 이유에 관해 제7장 '인간 이빨의 역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유인원은 송곳니가 길고 뾰족하며 ······ 수컷은 암컷보다 송곳니가 크다. ······ 찰스 다윈은 송곳니 크기의 성별 차이가 짝짓기 경쟁을 위한 수컷의 위협 과시와 싸움에서 진화했다고 추측했다. 인간은 남녀의 차이가 작으며 송곳니가 날이 서 있지 않고 짧다. 이것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사회 구조가 달라졌으며 짝짓기 경쟁에서 서로를 물지 않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추정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진화 과정에서 이성을 차지하기 위해 '수컷'끼리 치아로 물어뜯을 일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인간의 송곳니가 퇴화했을 거라는 것이, 찰스 다윈의 말을 근거로 한 피터 엉거의 판단이다.


인간은 경쟁자 '수컷'을 배제하기 위해 손에 도구를 쥐고 싸울 수도 있고, 물질적 소유물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자기의 우위를 과시할 수도 있다. 한편, 인간은 이성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을 사회 규범으로 규제하기도 한다. 이런 진화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유인원은 '연적'을 쫓아내기 위해 여전히 송곳니 같은 것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는 송곳니뿐 아니라 어금니도 작아졌다. 엉거는 "어금니 크기는 음식물의 에너지 산출량과 관계가 있었다"면서 "질 낮은 음식물을 먹으면 몸이 더 많은 음식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저작면이 커진다"고 말한다. 그가 말한 '질 낮은 음식'은 용량에 비해 영양분이 낮은 식품이다. 이런 저효율의 음식을 먹다 보면 자연히 많이 먹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어금니의 씹는 부위가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엉거는 "최초의 사람속(屬)도 큰어금니가 꽤 컸지만, 그 후로 종에서 종으로 진화하면서 점점 작아졌다"고 말한다. 이것은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점점 더 질 좋은 음식물을 섭취하게 됐음을 반영한다. 고단백 식품 같은 것을 많이 먹다 보니 음식 섭취량이 적어져 어금니가 오히려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빨의 축소는 현생 인류의 발전단계 안에서도 나타났다. 수렵·채집 단계와 산업화 단계 사이에도 있었다. 책 182쪽 그림처럼 수렵·채집 사회의 구성원이 산업화 사회의 구성원에 비해 이빨이 더 크다. 전자가 후자에 비해 이빨을 쓸 일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전자가 영양을 더 많이 섭취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왼쪽은 수렵·채집인의 이빨이고 오른쪽은 산업화 사회인의 이빨. <이빨> 182쪽에 나오는 그림. ⓒ 교유서가

  
진화 과정에서 치아를 쓸 일이 줄어들다 보니, 치아 크기에 대응하는 턱의 크기도 자연스레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일련의 기술 개발이 없었다면, 인류의 턱이 지금보다 훨씬 컸을 거라는 게 엉거의 말이다. 불로 음식을 가열하거나 칼로 음식을 분해하는 방법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인간이 음식물 소화를 위해 이빨을 더 많이 썼을 것이고, 그랬다면 턱도 지금보다 훨씬 컸을 거라는 것이다.

충치 같은 질환도 진화의 산물이라고 한다. "초기 현생인류에게도 충치는 별로 없었다"고 엉거는 말한다. 신석기 시대의 농업혁명 덕분에 곡물 속의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게 되면서 인간의 이빨이 까매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영양 섭취량이 늘어나는데도, 이빨을 보조하는 공구의 개발이나 고단백 등의 섭취로 인해 이빨이 오히려 작아졌다는 피터 엉거의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영양 섭취량이 늘었으면서도 이빨이 작아진 것은, 인간이 '이빨의 연장(延長)' 혹은 '제2의 이빨'인 칼·믹서 같은 것을 발달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연장 혹은 제2의 것을 치아를 위해서뿐 아니라 온몸을 위해 다 갖고 있는 인간의 이미지가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다.

옷은 피부의 연장이다. 옷뿐 아니라 집도 엄밀히 말하면 피부의 연장이다. 무기나 공구는 팔과 다리의 연장이다. 두뇌를 위해서도 이런 것들이 있다. 예전에는 책과 메모지 정도가 두뇌의 연장으로 기능했지만, 오늘날에는 계산기·컴퓨터에 이어 인공지능까지도 두뇌의 연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치아를 포함해 모든 인체기관이 제2의 기관들과 무선으로 연결돼 있는 이미지가 <이빨>을 읽으면서 떠올랐다. 치아를 포함한 인체의 진화가, 인체 기관 내에서뿐 아니라 인체 외부의 공구를 향해서도 진행되는 이미지다. SNS만 무선으로 이어진 게 아니라 인간의 진화도 무선을 매개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빨

피터 S. 엉거 지음, 노승영 옮김,
교유서가, 2018


#이빨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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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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