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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석방 살인범 6명, 정체 감추고 한 마을에 정착했지만

[리뷰] 영화 <양의 나무> 토지(사회)와 씨앗(본성)을 통해 말하는 믿음과 의심

18.10.17 15:18최종업데이트18.10.1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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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양의 나무> 포스터 ⓒ 영화사 오원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양의 나무>는 한 이야기에서 그 아이디어가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양을 심은 곳에 양이 열리는 나무가 있다. 그 살은 부드럽고 피는 달콤하다. 그리고 이 양을 잡아먹는 건 늑대다. 이 이야기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의 설정 역시 이와 같다. 우오부카라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6명의 남녀가 오게 된다. 그들을 안내한 시청 직원 츠키스에는 상관에 의해 그들이 범법자임을 알게 된다.
 
모범수로 가석방된 6명은 모두 무연고자다. 우오부카 시는 보호자를 자처해 이 범법자들을 사회에 정착시키고자 한다. 다만 이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시청 직원 몇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 츠키스에는 후배를 통해 이들 6명이 살인을 이유로 교도소에서 복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 <양의 나무> 스틸컷 ⓒ 영화사 오원

 
우오부카는 질이 좋은 토양이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한적한 시골마을은 유흥시설이 없고 사람들은 순박하다. 이 마을은 지난 몇 년간 살인사건이 일어난 적 없다. 이런 질 좋은 토양에 '살인'이라는 죄악을 품은 6개의 씨앗이 심어진다. 영화는 이 6개의 씨앗이 어떤 '나무'가 되는지를 관찰한다. 이를 위해 작품은 서로 다른 여섯 명의 캐릭터를 설정한다.
 
눈에 들어오는 캐릭터는 미야코시이다. 그는 츠키스에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기타를 배운다. 아이들과 같이 뛰어놀 만큼 순박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츠키스에가 짝사랑하는 아야와 연인 사이로 발전하며 성실하게 물품 운반 일을 한다. 이런 미야코시와 표면적으로 비슷해 보이는 인물이 오노와 후쿠모토 그리고 오타이다. 전직 야쿠자인 오노는 자신을 찾아온 조직원들을 쫓아내고 세탁소에서 열심히 일을 한다.
 
교도소에서 이발 기술을 배워 이발소에 취직한 후쿠모토는 사장이 자신의 정체를 눈치 챈 것 같다며 벌벌 떠는 연약한 면모를 보인다. 노인요양시설에서 일하는 오타는 츠키스에의 아버지와 사랑에 빠져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 한다. 반면 스기야마와 쿠리모토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
 
스기야마는 바다에서 일하며 따분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다. 그는 자신과 같은 범법자들이 있다는 걸 눈치 채고 새로운 일을 꾸미고자 한다. 쿠리모토는 남에게 말을 걸지 않는 우울한 면모를 보인다. 생선이나 거북이 등 죽은 생명에 무덤을 만들어주는 그녀의 행위는 어딘가 오싹한 느낌을 준다.
 
이런 오싹함을 가중시키는 소재가 노로로 신이다. 우오부카 마을을 지키는 신인 노로로는 개구리를 닮은 외형 때문에 무섭다는 느낌과 거리가 멀지만 오래 쳐다보면 죽는다는 전설이 있다. 마을의 전설에 의하면 노로로 신은 과거에 사람을 공격하는 괴물이었고 이를 마을 사람들이 처단한 후 마을의 수호신처럼 섬긴다는 역사가 있다. 이런 역사를 알고 바라보는 노로로 신은 공포의 대상처럼 여겨진다.
  

영화 <양의 나무> 스틸컷 ⓒ 영화사 오원

 
마을로 오게 된 6명의 남녀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이 살인자라는 걸 모르고 바라볼 때와 알고 바라볼 때 그들의 행동에 대한 해석은 달라진다. 대표적인 장면이 노로로 신을 기리는 마을 축제 장면이다. 순하고 연악해만 보였던 후쿠모토는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고 그런 후쿠모토를 미야코시는 힘으로 제압한다. 그들의 행동은 정체를 모르는 이들의 눈에는 술에 취한 주정뱅이와 힘으로 제압하는 청년 정도로 생각된다. 하지만 '살인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관객에게는 거친 행동 하나하나에 두려움과 공포가 유발된다.
 
영화는 살인자라는 단편적인 정보와 서로를 향하는 의심이라는 점에서 최근 국내에서 개봉해 극찬을 받은 이상일 감독의 <분노>를 떠올리게 만든다. 다만 이 영화는 <분노>만큼의 폭발력을 담고 있지 않다. 의심과 믿음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보여주지만 기교면에서 빈약하다 할 수 있다. <분노>가 짧은 편집으로 산만함을 가져왔지만 이를 잘 정돈해 후반부에 터뜨렸다면 <양의 나무>는 츠키스에와 미야코시 사이의 관계 만에 중점을 둔 느릿한 템포를 택하다 보니 5명의 다른 인물들이 줄 수 있는 스릴러적인 요소나 감정적인 폭발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인간을 만드는 건 환경을 의미하는 토양이냐 아니면 본성(타고난 유전)을 의미하는 씨앗이냐를 바라보는 시선은 흥미롭다. 여기에 <분노>가 보여주었던 인간을 향한 믿음과 의심을 노로로라는 신격인 존재를 통해 담아낸 점도 플러스 요소라 할 수 있다. 다만 6명이나 되는 인물설정에 공을 들였지만 이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스릴러적인 요소를 살려내지 못한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18일 개봉.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루나글로벌스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양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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