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가 대구에서 가장 오래 산 집, 어쩌다...

부서진 채 방치된 이육사의 '흔적'... "집터라도 보전돼야"

등록 2018.10.17 09:21수정 2018.10.1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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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가 오랫동안 살았던 집이 부서진 채 방치되어 있는 모습 ⓒ 정만진


'광야'의 시인 이육사의 출생지가 경북 안동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안동에는 그를 기려 세워진 '이육사 문학관'이 있다. 문학관 뒷산에는 묘소도 있고, 약간 왼쪽으로 가까이에 생가 터도 있다. 생가 터 옆 공터에는 '청포도' 등 시인이 남긴 명시들을 돌에 새겨놓은 시비 동산도 조성되어 있다.

1904년 안동에서 출생한 이육사는 17세가 되던 1920년 가족과 함께 대구로 이사 왔다. 육사는 1937년 서울로 옮겨갈 때까지 대구에 주소를 두었다. '대구에 살았다'고 하지 않고 '대구에 주소를 두었다'고 말하는 것은 1920년에서 1937년 사이에 대구를 떠나 있었던 시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육사가 1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살았던 대구

육사가 17년 사이에 여러 차례 대구의 집을 떠나 살았다. 1921년 봄부터 1923년 가을까지 처가가 있는 경북 영천에 거주했고, 1924년 4월부터 1925년 1월까지는 일본 동경에서 대학을 다녔다. 그후 1925년 8월부터 약 2년 동안 중국대학 사회학과에 다녔다(일설에는 1926년 7월부터 7개월 동안 중국대학 상과에 다녔다).

1927년 10월 이후 약 1년 7개월 동안 대구형무소에 투옥되었다. 1932년 4월부터 1933년 7월까지 중국에서 생활했는데 그 중 6개월 동안은 중국국민정부 군사위원회 간부훈련반 1기생으로 교육훈련을 받았다. 1934년 투옥, 1936년 포항 요양 등의 시기도 있었다. 17년 중 대략 7년 안팎을 대구의 집 아닌 다른 곳에 머물렀던 셈이다.
 

이육사가 오랫동안 살았던 집이 부서진 채 방치되어 있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답사자들 ⓒ 정만진

  
육사가 대구에 머물 때 가장 오랫동안 거주한 집은 중구 남산동 662번지에 있었다. '있다'가 아니라 '있었다'로 표현하는 것은 최근 그 집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2015년 10월 16일 육사의 따님 이옥비 여사가 방문하기도 했던 집이지만 지금은 부서진 채 방치되어 있다. 육사가 살았던 집 일대는 머지않아 아파트 단지로 개발될 예정이다.

부서진 채 방치되어 있는 집은 이육사가 거주했던 그 집 자체는 아니다. 육사가 살았던 집을 1950년대에 매입한 새 주인이 아주 개축하고, 또 증축한 탓이다. 하지만 흉물이 되어버린 육사의 집터를 바라보는 대구시민들의 마음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집 복원 못하면 집터는 반드시 보전되어야"


지난 10월 13일 사단법인 역사진흥원이 주관한 역사여행에 참가하여 이곳을 방문했던 박지극 시인은 "이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설 때 단지 안에 육사를 기리는 공원이 조성된다고 들었다. 육사가 살던 집터 자체가 보전되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집을 복원하지 못하면 집터는 반드시 남겨두어야 한다. 이곳 집터는 십수 년을 대구에 살았던 이육사가 대구에 남긴 마지막 유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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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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