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마지막 지푸라기... 너그럽게 봐주세요"

[인터뷰] 천사무료급식소 김진옥 주임

등록 2018.10.17 14:21수정 2018.10.17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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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무료급식소 김진옥 주임 자원봉사자들에게 봉사활동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 이현미


고령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에 노인복지시설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시설이다. 그럼에도 노인복지시설이 혐오시설로 낙인찍히고, 노인복지시설에서의 근무를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가운데, 누군가는 묵묵히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독거노인들을 돌보며 삶의 마지막 동반자가 되어주고 있다.

그중 노인복지시설 천사무료급식소(사단법인 전국자원봉사연맹 산하)에서 근무 중인 김진옥 주임과의 인터뷰를 통해 독거노인의 어려운 현실과 비영리단체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애환, 그리고 노인복지시설이 더 이상 혐오시설이 아닌 우리 곁에 반드시 필요한 복지시설로 남아있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봤다.

- 어디서 근무하며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를 부탁드린다.
"사단법인 전국자원봉사연맹 산하 천사무료급식소 종로지소에서 근무하고 있고 입사한 지 올해로 4년이 되었다. 현재 급식준비부터 자원봉사자 관리, 어르신 케어, 도시락 배달 준비 등 종로급식소에서 실시하는 활동의 전반적인 업무를 맡아서 하고 있다."

- 비영리단체는 처음인지? 입사는 어떻게 하게 되었나?
"비영리단체는 처음이다. 부끄럽지만 전혀 생각지도 않았고, 아이들 학교 간 후에 할 수 있는 간단한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도중 우연히 천사무료급식소 채용공고를 보고 온라인으로 입사 지원을 했다."

- 처음에 노인시설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몰랐다. 단순히 근무 시간이 원하던 시간대와 맞았고, 업무 내용만 보고 지원했기 때문에 그 대상자가 노인이라는 것은 모르고 지원했다."

- 입사가 결정되고 노인시설에 입사한 첫날, 첫인상이 어땠나?
"지금은 익숙한 풍경이지만, 당시 길 한쪽에 엄청 길게 줄을 서 있는 어르신들을 보고 많이 놀랐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식사를 기다리시는구나. 생각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리는 어르신들의 표정이 밝아 보여서 그 이유가 궁금했다. 첫인상은 단순히 호기심이었던 것 같다."

- 몇 명이 근무하고, 몇인분의 식사를 준비하는지?
"3명이 근무를 하고 있고, 급식은 350~400인분 정도를 준비하고, 도시락 배달도 3명이 모두 준비한다."


- 3명?? 3명이 가능한가??
"그래서 봉사자들의 도움이 하늘에서 내려주는 동아줄처럼 느껴진다. 봉사자분들께서 오셔서 도와주시는데, 부득이하게 봉사자가 없으면 우리끼리 한다. 봉사자가 적거나 없으면 급식시간도 길어지고, 어르신들 대기시간도 길어진다. 이럴때는 정말 몸이 열 개였으면 한다."

- 봉사자가 동아줄 같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혹시 기억에 남는 자원봉사자나 후원자가 있는지?
"귀한 사람들과의 좋은 인연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만, 그중에서도 해마다 한 달 동안 거리 버스킹 공연을 하고, 공연 수익금을 모두 급식소에 기부하러 온 학생들이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다. 기부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고 갔는데, 정말 기억에 많이 남는 봉사자들이다. 또, 1년 동안 아기돼지와 엄마돼지 저금통에 열심히 저금해서 연말에 편지와 함께 저희 급식소에 보내주신 후원자님도 기억에 남는다."

- 근무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나?
"무엇보다 급식소에 오시는 어르신들, 자원봉사 학생들, 후원자님과 회원님들이 따뜻한 격려의 말을 해주실 때가 가장 뿌듯하다.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에 힘든 것도 잊고, 다시 일할 힘을 주는 것 같다."

"마음 아픈 순간 너무 많아... 독거노인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노인들 종로3가역 앞 천사무료급식소에서 무료급식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 노인들 ⓒ 이현미

 
- 반대로 마음 아팠던 순간은 언제였나?
"아... 너무 많다. 최근에 일을 이야기하겠다. 어떤 할머니 한 분이 3~4일을 주기로 어떤 날은 다리에, 어떤 날은 팔에, 어떤 날은 얼굴에 상처가 보이더라. 할머니를 붙잡고 여쭈어봐도 '넘어졌다', '다쳤다' 하셔서 대수롭지 않게 '조심하시고 천천히 걸으세요'라고만 말씀드렸다.

그런데 어느 날은 입술이 터져 말을 어눌하게 하시기에, 급식이 끝나고 한쪽으로 모시고 가서 조심스럽게 '편안하게 저한테 말씀하세요.'라고 했더니 갑자기 우시면서 '손녀에게 맞았다'고 하시더라. 아들이 손녀가 3살 때 이혼하고 아들 혼자 손녀를 키울 여건이 안돼서 할머니가 손녀를 키우시는데, 중학생이 된 손녀가 부모 사랑을 못 받아서인지 안 좋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고, 아들은 매일 술을 먹고 손녀에게는 관심이 없다고 하셨다. 그런 손녀가 요즘에는 할머니에게 손찌검을 한다며 신고해도 가족은 처벌이 잘 안되고 손녀를 차마 신고할 수가 없다면서 많이 우시더라.

'유일하게 마음 편하게 밥 한 끼 뜰 수 있는 곳이 천사무료급식소라'면서 '힘들어도 여기 오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이따금씩 오는 손녀 또래의 봉사자들을 보면 '내 손녀도 언젠가 저 아이들처럼 돌아오지 않겠냐'면서 눈물을 닦으시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 실제로 그런 어르신들을 도와드릴 방법은 없는가?
"급식소라서 달리 도와드릴 방법은 없고, 다만 어르신 관할 주민센터에 사연을 전해드린다. 간혹 발걸음이 차마 안 떨어진다는 분이 계시면, 함께 가서 옆에 있어 드리기도 한다."

- 급식 외에 도시락 배달도 한다던데? 도시락 배달은 어떻게 운영이 되나?
"일주일에 한번 혼자 사는 어르신 댁에 직접 도시락 배달을 해드린다. 일주일 정도 드실 수 있는 반찬을 전해드리면서 어르신 안부도 여쭙고, 집안 살림도 거들어 드린다. 도시락 배달을 받는 어르신들 대부분이 급식소 인근에 있는 종로 쪽방촌에 거주하는 분들이다."

- 도시락 배달과 관련한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는지?
"최근 일이다. 얼마 전 도시락 배달을 가는 쪽방촌에 화재가 나서 8채의 가구가 불에 탔다. 불이 난 곳 중 우리 도시락 배달을 받는 어르신 댁도 있었는데, 우리 어르신은 다행히 몸을 피해 화를 면했지만, 늘 그곳에 가면 반갑게 손을 잡아주시던, 첫 방문 칸의 어르신은 불길을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해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직도 그 어르신의 웃는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 독거노인을 많이 접하는데, 실제로 독거노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물론 경제적 지원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대화 상대인 것 같다. 도시락 배달을 가는 어르신 한분이 '밥도 돈도 필요 없으니 매일 이렇게 대화할 상대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 한마디로 답변이 될 것 같다. 외로움을 채워줄 대화상대가 가장 필요한 것 같다."

- 요즘 노인시설을 혐오시설이라고들 한다는데 급식소 운영에는 이와 관련해서 힘든 점이 없는지?
"종로급식소가 거의 4년이 넘게 이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주변에서 항의가 많이 들어왔었다. 무엇보다도 노인들이 급식소 앞에 길게 줄을 서 있으니, 인도 제일 끝에 서 계시는데도 길을 막는다며 민원이 많이 들어왔다. 지금도 간혹 민원이 들어오는데, 그럴때면 늘 씁쓸하다. 저의 욕심일 수도 있지만, 조금만 너그러운 눈으로 봐주시지 하는 생각에 안타깝다."

- 그렇다면 천사무료급식소와 같은 노인복지시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고령화는 갈수록 심각해지는데, 노인들은 갈 곳이 없다. 밥값이라도 벌고자 일을 하려 해도 일자리가 없다. 그렇다고 자녀들에게 마냥 기대기에는 서로 갈등만 심해진다. 심지어 그런 자녀들마저 없는 분들이 많다. 현재 우리나라의 노인들 대부분이 가난한 노후를 살아가고 있다. 이런 노인들의 마지막 지푸라기 같은 곳이 노인복지시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가난한 노인들을 위해 따뜻한 밥 한 끼 나눌 수 있는 천사무료급식소와 같은 노인복지시설을 동네에 하나쯤은 있는 놀이터처럼 하나의 복지시설로 좋게 봐주셨으면 한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신다면?
"천사무료급식소의 활동에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리고, 우리 주위에 소외된 어르신들에게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란다. 우리의 작은 관심 하나가 고독사를 예방하고, 희망이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셨으면 한다."
#천사무료급식소 #천사급식소 #천사무료급식소 직원 #천사무료급식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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