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 한장 아끼며 사는데... 사립유치원에 두 번 놀랐다

[주장] 생계형 워킹맘·워킹대디 울리는 사립유치원 비리... '에듀파인' 속히 도입해야

등록 2018.10.17 17:29수정 2018.10.1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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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원장들에 둘러싸인 박용진 의원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용진 의원이 주최한 유치원 비리근절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반대하는 유치원 관계자들이 단상을 점거하고 구호를 외치자 박 의원이 대화하자며 이들을 설득하고 있다. ⓒ 남소연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강북을)이 폭로한 사립유치원 감사 결과에 온 국민이 놀랐다. 2살, 4살 어린 자녀를 둘 키우고 있는 휴직 교사인 나 또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가까운 이웃이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를 만큼 비리 사례가 대거 적발돼 한 번 놀랐고, 업무·복무 및 회계를 '나이스'와 '에듀파인'으로 처리하는 공교육 현장에서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두 번 놀랐다.

휴직 교사도 놀란 사립유치원 비리 백태

생활기록부 양식을 전년도 것으로 사용해 원아들의 생년월일이 아닌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한 건 인간적 실수요 애교에 불과했다. 생활기록부 미작성, 영유아 검진 서류 누락, 통학버스 운전자 안전교육 미실시 등 운영이 허술했다. 적발된 유치원에 다니는 원아들의 개인정보와 안전은 위태로웠다. 

그뿐만 아니었다. 근무 교사들의 사회 보험 미가입, 법정 근로시간인 주당 40시간을 초과한 주당 52시간 근무 시간 계약 체결, 초과 근무에 대한 추가 수당 혹은 대체 휴무를 주지 않은 곳도 낱낱이 확인됐다. 풍문으로만 듣던 유치원 교사들의 열악한 근무 여건을 이번 감사를 통해 알게 됐다.

여기에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번갈아 겸임하며 이중 월급을 받은 원장, 교구 반품비를 개인 계좌에 보관했던 원장, 학부모부담 납부금을 교비회계 계좌가 아닌 비자금 계좌에 관리한 것은 물론, 회계 대장조차 작성하지 않아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징수된 총금액조차 정확히 알 수 없는 깜깜이 유치원까지 있었다. 출산휴가에 들어간 교사의 급여를 본인이 가로챈 이사장의 불법행위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유치원 감사 보고서를 공개한 MBC 홈페이지 갈무리 화면. ⓒ MBC

  
엄연히 원아들과 재직 교사들에게 쓰여야 할 돈이 엉뚱한 주머니로 들어간 사실이 놀랍다. 이번에 비리 사례가 드러난 원장들의 인격에 대한 실망은 물론이거니와, 어떻게 '마음만 먹으면' 공금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찌하여 국가 지원금 2조 원과 학부모 분담금의 운용을 유치원 이사장 및 원장들의 '선한 마음'과 '합리적 이성'에만 의지했어야 했던 걸까. 아무리 법을 잘 만들어도, 법망을 피해가는 약삭빠른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경우에는 '잘 만든' 시스템조차 없었다.


시스템의 부재

설마 했는데 회계 시스템이 부실했다. 아니, 부재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대안으로 추진하는 '에듀파인'은 이미 사립 초·중·고등학교 및 국·공립 유치원, 초·중·고등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회계 시스템이다. '에듀파인'은 '물 샐 틈'이 없이 비교적 투명하다. 한 해 기록하고 나면 수정이 어렵고, 간단한 오탈자 수정에도 회의를 거쳐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한 그 회의록도 기안 후 결재를 받아야 한다. 혹여 어찌어찌 돈을 썼다 하더라도, 제3자가 추후에 감사할 때 여지없이 드러나게 된다.

필자도 몇 년 전 감사에 딱(!) 걸려 '주의' 처분을 받은 적 있다. 교육대학원을 다닐 때였는데, 복무 상태를 잘못 체크했던 게 문제였다. '출장(연수)'을 냈어야 했으나, '교육공무원법 제41조연수'로 기안했다. '출장(연수)' 복무 제도가 생긴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던 때라, 솔직히 말해 몰랐다. 둘 중 어떤 복무 상태로 대학원 수업을 수강했더라도, 나랏돈 한 푼 받지 않는 복무이기도 해서 경각심이 부족했다. 그러나 법은 무지(無知)를 관용하지 않는다. 엄연한 감사 처분 '주의'를 받았다.

필자의 복무 상태가 이토록 쉽게(?) 감사에 확인된 건 시스템 덕분이었다. 한 번 잘 정착된 시스템은 원칙에 따른 일처리를 돕는다. '주의'는 가장 가벼운 처분이었음에도 경각심을 갖게 됐다. 일처리를 할 때 관련법을 먼저 챙기는 습관도 생겼다. 이 회계 시스템이 사립유치원에도 적용된다면, 좀 더 투명한 자금 운용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정부·여당은 사립유치원에 '에듀파인'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지만, 당사자인 사립유치원들은 조건을 먼저 앞세웠다. 16일 긴급기자회견을 연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에듀파인'에 대해 "사립유치원 재무회계 규칙이 없는데, 이에 맞는 규칙이 만들어지면 저희(한유총)가 에듀파인 시스템 들어가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라며 "교육부와 적극 협의해 사립유치원에 맞는 규칙을 만들어야 하고, 그게 받아들여지면 (에듀파인에) 들어가겠다"라고 말했다.

모든 유치원 선생님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돕는 제도가 필요하다. ⓒ pixabay

  
생계형 워킹맘, 워킹대디들은 오늘도 일한다. 퇴근 후엔 바짓가랑이 잡으며 놀아달라는 아이들 달래며, 조리대 앞에서 땀 뻘뻘 흘리며 집밥을 만든다. 한 푼 아끼고자 현금 봉투에 1만 원씩 끼워 사용하면서 식비를 절약하는, '봉투 살림'도 기본이다.

아이 낳고 2년 만에 내 운동화를 겨우 새로 사게 된 게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적발된 유치원 원장 혹은 이사장이 꿀꺽한 그 돈은 대개 그런 돈이다. 학부모들이 쉽게 벌어 드리는 돈이 아니란 뜻이다. 그들이 미용실, 성인용품, 명품 가방 소비 등에 긁은 6억8000만 원에 속이 쓰리다.

국민들은 '모든' 어린이집, 유치원 선생님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오늘도 천둥벌거숭이 꼬마들에게 사랑 듬뿍 나눠주며, '곰 세 마리'를 함께 부르고 계실 선생님들께 존경을 표한다.

이번 사태의 분노는 그분들의 사명감과 노력에 먹칠하고, 새 옷 만져본 지 한참 된 부모들의 소중한 세금과 교육비를 남용한 '미꾸라지'를 향하는 것이다. 깨끗하고 철저한 개혁으로 원칙과 정의를 꿈꾸는 국민들의 바람이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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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1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에서 열린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비상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이덕선 비대위원장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8.10.16 ⓒ 연합뉴스

#비리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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