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게시판에 동료들의 퇴직 인사가 잦아졌다

[중년이란 무엇인가] 직진뿐이었던 첫 번째 일... 두 번째 일은 '좋아하는 일' 하련다

등록 2018.10.25 07:38수정 2018.10.25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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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만 보고 살았는데 어느덧 중년입니다. 기대했던 40대, 50대의 모습과 전혀 다른 지금 내 모습이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불안하니까 중년'이라는 말조차 위로가 되지 않는 시대, 중년들의 불안을 살펴봅니다.[편집자말]

나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 jleufke, 출처 Unsplash

 
작년에 회사는 사업부 하나를 중소기업에 매각했다. 해당 사업부에 속한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소속이 바뀌었다. 일을 잘하든 못하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사업부에 속한 직원이면 퇴직 대상이었다. 회사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라도 월급을 이어나갈 수 있다면 다행인 상황이었다.

문제는 이것을 지켜보는 기존 직원들의 심리가 많이 불안해졌다는 것이다. 마치 누군가 혼나는 상황에서 나는 아무 잘못이 없어도 매를 맞을까 불안한 아이처럼,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은 착잡했다.

사내 게시판과 회사 메일로 동료들의 퇴직 인사가 잦아졌다. 퇴직 인사에는 밤을 새워 프로젝트를 하던 추억이 있었고 성장과 배움의 시간에 대한 감사가 있었다. 퇴직 인사를 받을 때마다 회상에 잠겼다. 회사라는 조직에 몸담고 있는 이상,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 할 것을 알고 있다. 회사가 내 인생과 노후를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머리로만 알았다. 몸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열심히 일했다. 이유는 일이 재미있었다. 돈을 모으는 재미와 내 스스로 성장해가는 모습에 성취감도 있었다. 회사와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선배의 조언도 있었지만, 일만 사랑하고 회사를 사랑하지 않는 능력이 내겐 없었다. 회사엔 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배울 점이 많은 상사도 있었고, 어려운 일을 함께 해낸 동료도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회사란 일과 관계, 성장을 분리할 수 없는 곳이었다. 나는 그렇게 내 청춘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중년을 맞이했다.

나의 2030시대, '내가 제일 잘 나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나를 뽑아준 회사가 너무 고마워서 열심히 일했다. 시키지 않은 일도 찾아서 했다. 일을 하는 것은 곧 배우는 것이었고, 돈도 주면서 일을 가르쳐주는 회사가 고마웠다. 명예퇴직, 권고사직은 남의 이야기였다. 나는 젊고 건강했으며,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들었다.

일이 어느 정도 무르익을 때쯤엔 내가 회사에서 제일 잘나가는 줄 알았다. 아쉬운 것은 회사였지 내가 아니었다. 이직도 쉬웠지만 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배울 사람들이 넘쳐났고, 그들과 일한다는 것이 뿌듯했다. 덕분에 매우 바빴다. 이직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한 회사에서 18년이나 몸담으며 일을 했던 이유다.

30대 중반에 결혼이란 것을 했다. 결혼하면서 양가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다. 모아놓은 돈과 은행 대출로 신혼집을 구했고, 대출은 2년 만에 갚았다. 둘 다 젊고 건강했으며, 회사에서 퇴출될 염려는 없었다.

남들이 이야기하는 신의 직장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노동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고, 현금흐름도 계속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예상보다 일찍 퇴직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내 노동력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먼 미래였다.

어느새 '젖은 낙엽'이 된 40대 중년

40대는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30대 후반에 아이 둘을 낳고 워킹맘으로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 날 얼굴을 들어 거울을 보니 낯선 40대 중반의 여인이 내 앞에 있었다. 입가에 팔자주름과 눈가 주름, 듬성듬성 눈에 띄기 시작한 흰머리, 예전 같지 않은 체력은 본격적인 노화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내가 제일 잘 나간다'는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깨달음은 노화보다 더 빨리 왔다. 30대 후반에 2번의 육아휴직으로 4번의 승진 누락을 겪었고, 회사 일에 올인 하기보다 아이들을 키우며 일할 곳을 찾느라 2번의 조직 전배를 했다. 잘 나가는 건 필요 없었다. 경력을 유지하는 것이 먼저였고,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직급이 높다거나, 나이가 많다고 거절도 당했다. 겨우 원하는 조직으로 이동했으나 받는 쪽이나 가는 쪽이나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조직에서는 직급이 높아서 부담스러워했고, 나는 이전보다 적응력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져 두려웠다. 그나마 같은 회사 내에서의 이동이라 다행이었다. 아마 이직이었으면 적응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을 것이다.

업무처리 속도도 현저히 느려졌다. 새로 온 사람이니 적응하는 기간이야 있다손 치더라도 늦어지는 업무 처리 속도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한참 업무가 무르익은 대리들과 비교하면, 그들은 재봉틀로 바느질하고, 나는 한 땀 한 땀 손으로 바느질하는 느낌이었다. 회식을 가거나 워크숍을 가더라도 나이 든 중년의 직원들은 큰 움직임이 없다. 가만히 앉아서 술을 마시거나 조용히 이야기를 나눈다. 크게 웃거나 흥분할 일이 별로 없다.

젊은이들은 게임도 하고, 장난도 치고, 왁자지껄 떠들고 웃는다.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든다. 그 풍경을 보면서 '아, 나는 이제 조연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가 제일 잘 나간다는 착각이 깨지자 어느 순간 조직의 눈치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큰 소리를 내거나 주장하지 않았다. 불만도 줄었다. 혁신을 외치는 목소리가 줄었다. 우스갯소리로 했던 '젖은 낙엽처럼'이라는 문구가 가슴속에 새겨졌다.

내가 주인공인 작품에서 나는 해피엔딩이고 싶다
 

일과 꿈을 일치시키는 작업, 중년에서야 가능한 것일수도 있다 ⓒ ⓒ rawpixel, 출처 Unsplash

 
하지만,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숙명처럼 받아들여지는 일상이지만, 늘 힘들고 팍팍한 것만은 아니다. 분명 그 안에서 우리는 웃고, 떠들고, 행복을 이야기한다. '젖은 낙엽'이라고 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낙엽은 아름다운 이름으로 기억되어 다음 세대를 위한 거름으로 쓰이길 희망한다. 주인공은 주인공으로서, 조연은 조연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때 작품은 아름답게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회사라는 작품을 완성해가고, 더 넓게는 일상이라는 작품을 완성해가는 존재다.

조연 역할을 하며 얻어지는 건 여유다.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키우며 정신없이 살다 어느 날, 거울 속의 나이 든 내 모습을 봤다는 것은, 나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다. 물리적으로는 여전히 여유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심적으로는 뭔가 다른 곳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다.

여유는 세상을 전체적으로 보는 안목을 가지게 한다. 다양하게 축적된 경험은 실수를 줄인다. 모험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줄이는 선택을 할 뿐이다. 열정이 줄어든 것이 아니다. 회사 일, 집안일, 육아에 에너지 분배를 지혜롭게 할 뿐이다.

중년, 나는 회사가 필요조건이지만, 회사는 내가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시기다. 남편이란 존재도 '남의 편'이라는 자각이 들고, 아이는 친구를 많이 찾기 시작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직장인으로, 아내로, 엄마로 열심히 살았지만, 점점 그들로부터 분리되는 자각을 하게 된다.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남는 건 결국 '나' 자신이다. 직장인, 아내, 엄마라는 역할은 다른 작품에서는 조연이지만, 내 인생이라는 작품에서 나는 여전히 주인공이다. 내가 주인공인 작품에서 나는 해피엔딩이고 싶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매일 다시 찾아오는 일상 앞에서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

최선을 다해 나를 사랑하는 일을 하면 된다.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책을 읽고, 좋아하는 공연을 보고, 적당한 운동을 하고, 즐거운 일을 하나 둘 찾아서 늘려가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 기회가 되어 제2의 일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첫 번째 일이 먹고살기 위한 것이었다면, 두 번째 일은 내가 좋아하는 것에 중심을 두려 한다. 꿈과 직업을 일치시키는 작업은 중년이 되어서야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좋아하는 일이지만, 두 번째 일에서 나는 새내기다. 배우고 성장할 것이 많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중년의 불안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두 번째 청춘을 겪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보니 나는 내 삶을 여전히 뜨겁게 사랑하고 있었다. 내 인생의 해피엔딩을 위해!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틀, 두가지 삶을 담아내다>(http://blog.naver.com/longmami)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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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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