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그 후손들의 가혹한 세월

[서평] 세월에 묻힌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 '이름 없는 역사'

등록 2018.10.23 07:54수정 2018.10.23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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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역사>(이상 펴냄)는 독립운동 비중과 공헌에 비해 그 삶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독립 운동가 9인을 재조명한다.

네 번째 주인공 차리석(1881~1945)은 김구 선생(책에 따라 아래 '백범')을 보필, 해방될 때까지 임시정부 비서장을 지냈다. 비서장으로 임시정부의 살림을 담당했던 그는 '임시정부가 흔들릴 때마다 중심에 서서 흔들리는 배의 중심을 잡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90쪽)'고 한다.
 

<이름 없는 역사> 책표지. ⓒ 이상

 
독립운동가 9인의 행적에 따른 주제로 각각 나눠 들려주고 있어서 떼어 읽기 좋은 데다가, 뭣보다 207쪽으로 그리 무겁지 않아 들고 다니며 읽기 좋은 책이다. 책을 받자마자 '출·퇴근길에 읽으면 좋을 책'으로 분류, 지난 며칠 출퇴근 지하철에서 읽었다.

도산 안창호의 영원한 동지이자 해방 직후까지 백범을 보필했던 차리석 편을 읽던 10월 16일 출근길, 차리석의 삶에 이어지는 그의 아들 차영조(1944년~)씨 이야기를 읽다가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그의 이야기가 너무 애달프게 와 닿았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아이스케키 통을 매고 나가서 아이스케키를 팔기도 했지. 여관에서 조바(심부름꾼)로 일하고, 식당에서 일하고 하다 보니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았어. 그래도 어머니는 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하셨어. 원망을 할 법한 데도 말이지. …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렸을 적 그때도 마찬가지고 지금도 마찬가지지. 평생 독립운동을 한 아버지를 존경하고 살지만 나도 기본적인 교육만 받았다면 지금의 한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야. 대단한 바람도 아니지. 남들 다니는 학교 정도만 다녔으면 누구도 원망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것조차 이루어지지 않아서 한으로 남아 있는 거지"(99~102쪽)
 
임시정부가 중경에 정착했을 무렵 차리석은 임시정부의 크고 작은 안살림을 도맡아 하며 외롭게 생활하고 있었다. 이런 차리석을 딱하게 여긴 백범은 지난날 서안포로수용소의 임시정부 요인들을 묵묵히 뒷바라지 했던 홍매영에게 "독립운동가를 곁에서 돕는 것도 독립운동이다"며 중매한다.

1944년 1월, 차영조씨는 이렇게 태어났다고 한다. 차영조씨의 탄생은 차리석 개인만의 기쁨이 아닌 백범의 기쁨이자 임시정부의 기쁨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임시정부의 아들'로도 불렸다는 그 아들. 그럼에도 해방 후 그처럼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살아야만 했다는 차영조씨. 그 한스러운 사연이 안타깝고,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들어 눈물이 났던 것이다. 

독립운동가들 대부분이 어떤 보상을 바라고 독립운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조국이 해방되면 다들 잘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조국만 독립되면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조국으로 들어오는 것부터 허락되지 않는 등 결코 순조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백범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도 마찬가지. 개인자격으로만 귀국이 허용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귀국하게 된다. 그런데 설상가상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독립된 조국이 몇몇 사람들의 망상과 욕심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그것도 친일인사들과 친미세력들에 의해 말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런 그들에게 목숨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 그리하여 백범처럼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해방은 우리 것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친일 반민족 부역자들이 해방을 만났지. 광복되고 다 잡아넣었어야 하는데 다 사면되고 오히려 진급을 하기도 했지. 일제에 아부하며 백성들 탄압하러 다니던 이들이 말이야. 참 한심한 세상이었지. 반민특위의 실패가 나라를 온전치 못하게 만든 거야"

1949년 6월 26일, 백범이 안두희의 흉탄에 스러졌다. 임시정부에서 함께 했던 동지들은 암살의 공포를 피해 어디론가 다시 피해야 했다. 아버지가 임시정부에서 김구의 비서장을 했던 어린 차영조에게도 가혹한 현실이 다가왔다. 차영조의 어머니는 아들의 성을 바꾸기로 했다. 공포의 시대였다. 차영조는 원래 성인 차(車)씨에서 한 획이 빠진 신(申)씨로 바뀌어 학교를 다녔다. 평생 독립운동을 한 아버지의 이름을 당당히 부를 수 없는 시대였다. 차영조는 19살 때까지 신영조로 살았다. 아버지를 잃은 것도 모자라 아버지를 부정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시대였다. (99~100쪽)

어린 아이도 예외일 수 없었다. 그런데 차영조씨의 가혹한 운명은 성을 바꾸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차리석이 해방 직후 고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한 상태에서 죽자 아들과 어렵게 귀국했다. 나무 궤짝에 물건 몇 개를 놓고 파는 노점이나, 광주리 행상으로 어린 차영조를 키우던 그의 부인마저 그리 오래지 않아 쓰러지는 바람에 어린 그가 가장이 되어야만 했다.

차영조씨의 나이 13세. 어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밑바닥 노동 전전'이었다. 누구나 받는 기본 교육마저 쉽지 않은 현실이었다. 그래서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라는 차영조씨의 목소리에 어찌 울컥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는(차영조 씨) 평생 효창공원 격상에 대해 말해왔다.

"나는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다 한 것 같아. 이제는 실천가능한 사람들에게 부탁을 하고 싶어. 효창공원은 그냥 공원이 아니야. 이곳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이 계승되어 있는 곳이고 그분들의 역사가 오롯이 숨 쉬는 곳이야. 물론 공원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정치하는 사람들이 오해를 살만한 이야기를 많이 해서 반대가 있기도 했어. 사람들은 이곳이 국가에서 관리하는 국립묘지화가 되면 무덤이 많아지고 혐오시설이 되는 줄 알고 있어. 실제로는 그냥 의미(관리에 대한 권한)만 격상하는 건데. 정치인들이 표를 받기 위해 이상한 방향으로 말을 해놔서 오해가 생겨났어."

서울 용산구 도심 주택가 한가운데 있는 효창운동장은 그 용도의 효율성에 대한 의문도 있지만 운동장을 둘러싸고 있는 지역과의 심한 이질감을 안고 벌써 몇 십 년을 지내왔다.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의 혈맥에 박힌 쇠말뚝을 보는 느낌이었다.(100~101쪽)
 
책은 신임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를 폭살하고자 폭탄을 투척, '우리나라가 일본과의 병합을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세계 여론을 기만하던 일제의 간계를 세계만방에 알린 강우규 의사(1855~1920)를 시작으로 김혁, 김규홍, 차리석, 박차정, 윤경빈, 양건석 삼대, 채규호, 하상세 등의 '오로지 조국 독립을 향한 삶'을 들려준다.

강우규 의사나 박차정 열사처럼 최근 '뒤늦은 이제나마' 재조명되면서 그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책이 들려주는 독립운동가 대부분은 대중적으로 그리 유명하지 않은 분들이다. 유명한 독립운동 혹은 독립운동가들을 이야기할 때 그 주변 인물로 반드시 거론되곤 할 정도로 알고 보면 우리 독립 운동사에 비중 높은 인물들인데도 말이다.

광복 73년. 이는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들에게 우리가 그동안 너무나 무책임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이제라도 재조명되어 더 이상 낯선 역사 인물로 머물러 있지 않기를 바라본다. 책속 주인공들을 만나기 전 이미 깊이 공감했던, 읽는 내내 몇 번이고 떠올랐던 서문 한 부분, 그 부분을 소개하는 것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바라는 간절함을 전하고 싶다.
 
"조국 독립과 민족해방이라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이겨진 이름 없는 독립 운동가들이 아직도 호명(呼名)되지 못한 채 역사 속에 잠들어 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그들의 이름을 찾아내고 불러주어야 한다. 기록하지 않은 역사는 기억에서 사라질 뿐이기 때문이다. (…) 잃어버린 시간, 역사 속에 숨어 있는 그들을 찾아내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채우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더 많이 알려지고 그들의 후손을 존경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서문에서)
 
덧붙여, 세 번째 인용 중 효창운동장은 1959년에 착공, 1960년에 완공했다. 이승만 정권이 독립 운동가들의 정신과 공적을 흐리고자 독립운동가 몇 분이 잠들어 있는 효창공원 앞에 의도적으로 건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래전부터 일부 사람들과 언론에 의해 철거 이유와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으나 2018년 10월 현재 여전하다. 보다 활발한 공론이 확산되었으면 좋겠다. 효창운동장이 철거되고 효창공원도 격상,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국가차원의 공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름 없는 역사 - 잃어버린 시간에서 찾아낸 독립운동가 9인

윤종훈 지음,
이상,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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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에디터만 아는 TMI'를 연재합니다.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 2019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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