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서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매장 추정지 대거 발견

'직산현 관아 200 희생사건' 현장으로 보이는 무덤떼 수십개 나와…“천안도 유해 발굴 조사 실시해야”

등록 2018.10.22 14:49수정 2018.10.2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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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현장1 사진에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실제 현장은 누가봐도 누군가 무엇을 파묻고 아무렇게나 흙을 덮어둔 형상을 하고 있다. ⓒ 노준희

 
천안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장소로 보이는 무덤떼(여러 개 무덤이 한 곳에 몰려 있는 것)와 폐금광 추정지 위치가 최초로 발견됐다.

지난 19일 기자는 이용길 천안역사문화연구회(준)위원장, 아산 배방 폐금광 민간인 희생자 유족 맹주철 씨, 주민 김대현(가명) 씨와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현 관아 뒷산을 함께 올라 무덤떼 현장을 확인했다. 현장은 천안시 직산읍 성산 일대로, 직산현 관아에서 약 1킬로미터쯤 떨어져 있으며 성환읍으로 넘어가는 산길 중간지점에서 가깝다.

발견 당시 현장은 산속에 형성된 분지 안에 있었으며 밖에서는 잡목에 가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었다. 무덤떼는 정돈된 무덤의 형태가 아니라 무언가를 쌓은 뒤 마구 흙을 덮어 오래도록 방치된 형상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었고 자연 발생적이지 않은 지형이어서 한눈에도 무언가를 여러 곳에 나눠 묻은 형태임을 알 수 있었다.

또 무덤떼 위 나무 대부분은 주변의 같은 나무들과 확연히 나무 굵기가 달라 분지 안에 인위적인 변화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마을 주민들에게는 '안굴창'이라는 지명으로 불리는 곳이다.

"무덤이 수십 개... 얼마나 많은 희생 벌어졌는지..."
 

학살현장2 학살현장2 ⓒ 노준희

 

학살현장3 학살현장3 ⓒ 노준희

 

감금장소1 희생자들을 일시 감금했던 장소로 현재는 직산현 관아 창고. 당시는 직산면 사무소 창고로 쓰였다. ⓒ 노준희

  

감금장소2 세 개 감금장소 중 하나인 양조장. 지금도 운영하는 양조장이며 당시 농협 창고는 현재 사라지고 없다. ⓒ 노준희


이용길 위원장은 "무덤이 수십 개다. 얼마나 많은 희생이 이곳에서 벌어졌는지 알 수 있다"며 "'직산현 관아 200명 희생 사건'의 기록만 있을 뿐 현장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이번 발견으로 이곳이 참혹한 역사의 현장임이 확실히 밝혀졌다. 드디어 천안에서도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민간인학살 장소 발견과 더불어 주민의 증언으로 민간인들을 감금한 장소도 확인됐다. 당시 직산면 사무소였던 직산현 관아 창고와 지금은 사라진 농협 창고, 현존하는 양조장 세 곳에 민간인들을 나눠 감금한 뒤 산으로 끌고 가 총살했다는 것이다.

직산읍에서 나고 자란 주민 김대현(가명)씨는 "약 20년 전 성산 토성 흔적을 살펴보다가 올망졸망 이상한 곳을 발견했는데 알고 보니 한국전쟁 때 끌려가서 죽은 바로 그 민간인들 무덤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돌아가신 어른들 말씀이 부역 혐의 등급에 따라 즉결처분했다고 했다"며 "어릴 적 나도 3명씩 나란히 묶인 사람들이 20~30명 줄줄이 뒷산으로 끌려가는 것을 봤다. 학살은 인민군 귀순자에게 시켰다고 들었다"고 증언했다. 또 "이 장소뿐 아니라 근처 폐금광에도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고 들었으나 지금은 금광 형체가 사라졌다"며 "무덤떼 발견으로 위치를 추정할 수 있게 됐으나 정확한 위치 확인을 위해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간인학살 장소를 수소문하고 증인을 만난 천안역사문화연구회(준) 이용길 위원장은 "진실화해위원회 2010년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직산면 사무소 서기였던 참고인의 증언을 토대로 '직산면 사무소(직산현 관아) 200명 희생 사건'이 기록됐었는데 천안에서 이번처럼 민간인 학살장소가 분명하게 드러난 예는 없다"고 했다.

그는 "시급히 발굴조사를 시행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어간 희생자를 위로하고 유족들이 떳떳하게 부모형제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들을 위한 위령제를 먼저 지내 그들의 넋을 위로할 것"이라며 "지자체가 발 벗고 나서서 전수조사를 실시하여 아픈 역사를 내버려 두지 말고 바로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안서 첫 민간인 학살장소 드러나 "지자체 전수조사해야"
 

학살현장 위성 사진 대규모 학살이 이뤄진 현장의 위성 사진. 직산현관아에서 약 1 킬로미터를 걸어올라가면 확인할 수 있다. ⓒ 노준희

 
진실화해위원회 2010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천안에는 보도연맹 사건으로 신청된 건은 없고 부역 혐의 신청 사건이 7건 있는데 조사결과 모두 지서에서 즉결처분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이 보고서에는 천안은 국민보도연맹 활동자들을 김종대 당시 경찰서장이 주동자 소수만 처리하고 나머지는 풀어줘 북한군 점령 시 그들의 보복과 학살이 다른 지역에 비교해 적은 편에 속한다고 기록돼 있다.

한편 아산시는 2015년 제정한 '아산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에 관한 조례'에 따라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의 5차 유해발굴 조사를 아산시 예산으로 집행했다. 이후 발굴한 유해를 지난 5월 14일 아산시공설봉안당에서 안치식을 거행했으며 세종시 '추모의 집'에 봉안했다.

또한 아산시는 내년에도 70명 정도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는 탕정면 용두1리 유해 발굴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며 내년도 본예산에 유해발굴 조사를 위한 예산 1억 2000만 원을 편성할 방침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천안아산신문에도 실립니다.
#천안 민간인 학살 #민간인 희생자 #한국전쟁기 #천안역사문화연구 #유해 발굴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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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과 천안 아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소식 교육 문화 생활 소식 등을 전합니다. 지금은 출판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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