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오라잍97화

중년 여성들은 왜 배움에 열광할까

[중년이란 무엇인가] 위기를 성장으로 이끄는 '개성화'의 과정

등록 2018.10.27 11:53수정 2018.10.30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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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만 보고 살았는데 어느덧 중년입니다. 기대했던 40대, 50대의 모습과 전혀 다른 지금 내 모습이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불안하니까 중년'이라는 말조차 위로가 되지 않는 시대, 중년들의 불안을 살펴봅니다.[편집자말]
내가 이럴 줄 정말 몰랐다. 대학시절 족집게 학원에 다니면서 취업 커트라인을 간신히 넘기는 토익점수를 만들어 놓은 후부터는 영어와는 담을 쌓아왔던 나였다. 나에게 영어공부는 진학과 취업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단 한 번도 재미있다고 느낀 적이 없었고, 시험점수만 잘 나오면 그 뿐이었다.

그런데 요즘 영어가 재밌다. 내 나이 불혹. 물론 실력이 잘 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영어로 대화가 잘 될 땐 희열을 느낀다. 심지어 학원 가는 시간이 기다려지기까지 하는 요즘이다. 참, 신기한 노릇이다.


뿐만 아니다. 이곳 캐나다 밴쿠버의 커뮤니티 센터의 강좌에도 눈길이 자주 간다. 엊그젠 조금 멀리 떨어진 지역의 커뮤니티 센터에 들를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도자기를 빚는 여성들을 한동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우리 동네 커뮤니티 센터에도 저런 강좌가 있었으면 진작 배웠겠다 싶었다. 어릴 적엔 찰흙 만지는 것조차 싫어하는 나였는데 말이다. 도서관에서 캘리그래피 봉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니 캘리그래피를 배워 예쁜 글씨를 써보고 싶기도 한다. 자꾸만 예전엔 해보지 않았던 것들에 관심이 간다.

한국의 또래 이웃과 친구들도 무엇인가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SNS를 통해 알려 오곤 한다. 한 친구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과학 선생님을 하던 이웃은 문화센터에서 그림을 배워 전시회도 열었다. 평소 쑥스러움을 많이 타던 친구는 동화구연을 배우고 있다. 왜, 중년에 접어든 우리들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자꾸만 배우고 싶어지는 걸까.

개인이 되찾은 심리적 주권
 

오늘날의 중년은 이전에 없던 심리적 권리와 자유를 누리게 되었지만, '자기실현'이라는 과제에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 세대인 것이다. ⓒ Pixabay


사실 지금의 '중년'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60세까지 살기도 힘들었으니 40,50대는 인생의 중반기라기보다는 후반기였다. 게다가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심리적 주권은 개인에게 있지 않았다.

강력한 계급과 가부장제 속에서 개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회가 부여한 역할대로 사는 수밖에 없었다. 양반이면 양반으로, 양인이면 양인으로, 여성이면 여성으로 정해진 대로 평생 살았다.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내가 생각하거나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즉, 개인의 심리적 주권이 내가 아닌 사회에 있었던 것이다.

전통적인 사회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벗어나 개인적인 정체감을 형성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테다. 간혹 틀을 깬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소수에 불과했고,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답답하긴 할지언정 불안은 덜했을 것이다. 심리적으로 나를 위해 무언가를 결정하고 책임질 일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최근 50년 사이에 눈부시게 의학이 발달하면서 80, 90대까지 사는 일이 흔해졌다. 비로소 40~60대가 중년이 된 것이다. 또한, 인권이 부각되면서 계급이 무너졌고, 각 개인의 자기실현을 막는 가부장제도 조금씩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태어나면서 주어진 삶의 조건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긴 하지만, 각종 매체와 책에서 조건에 굴하지 말고 자신만의 삶을 찾으라고 외치고 있다. 특히, 중년기야말로 자기실현을 해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한다.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없던 발달 단계인 중년. 게다가 지금의 중년은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마흔이 되었다>의 저자 제임스 홀리스가 이야기했듯 '심리적 권력이 급격하게 개인에게 옮겨온' 시대에 살고 있다.

즉, 오늘날의 중년은 이전에 없던 심리적 권리와 자유를 누리게 되었지만, '자기실현'이라는 과제에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 세대인 것이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그 길을 가야하는 이 시대의 중년. 그래서 중년의 마음은 불안하다.

중년은 위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년기에 이른 여성들이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하는 것은 이런 불안감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저명한 정신분석가 융과 성인의 생애발달을 연구한 레빈슨은 모두 중년을 '위기'의 시기로 보았다. 삶의 중간단계인 40대에서 60대 중반까지의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발달시켜온 사회적 자아를 벗고 '진짜 자기를 찾기 위한 혼란기'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물론 조금 다른 시각도 있다. 사회적인 권력과 힘, 경제력을 확보한 경우 중년을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전성기로 여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가부장적 성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의 여성들이 중년에 이런 성취감을 느끼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여성은 여전히 가정 안에서 돌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이런 역할은 인정받기보다 폄하되어 왔다. 때문에 육아와 살림에 최선을 다해온 기혼 여성의 경우 육아에 몰입했던 시기가 끝나면서 심리적 공허감을 더 크게 느낀다.

인정받지 못해온 지난 시간들이 억울하기도 하고, 이제라도 나의 삶을 살아내고픈 욕구가 올라오면서 너무 뒤처진 건 아닐까 불안해진다. 자꾸만 무엇을 배우고 싶어지고, 새로운 분야에 눈길이 가는 것은 이런 공허감과 불안을 달래기 위한 심리적 기제라 할 수 있다.

내가 뜬금없이 도자기를 굽고 싶어진 건, 도자기를 굽는 여성들의 모습이 너무나 평화로워 보여서였다. 모호한 내면의 불안감을 도자기를 빚는 행위를 통해 내려놓고 싶었다. 영어에 대한 열정 역시 지금이 아니면 평생 영어를 못한 채 삶을 마감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었음을 인정한다.

캐나다 이민 계획도 전혀 없고 일시적으로 거주하고 있는지라, 아주 간단한 영어만 하면서 지내도 별 문제될 것이 없었다. 한국에서 하는 일도 영어가 크게 필요치 않으니 그저 여유시간을 즐기기만 해도 될 노릇이었다. 하지만 불안했다. 여기서 영어라도 배워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중년은 성장이다
 

중년의 배움이 즐겁다면, 이는 자유로운 내면아이가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 Pixabay


그렇다면, 불안을 없애기 위해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걸까? 뒤늦게 배우기 시작한 것들이 경제활동으로 이어지거나 가정에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닌데, 돈과 시간만 낭비하는 것은 아닐지 고민하는 여성들이 있을 테다. 오직 즐거움을 위한 배움은 이기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이런 배움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년의 위기를 직접 겪으면서 중년을 연구한 융은 중년이 되면 진짜 자기를 찾고 싶은 자기실현의 욕구가 강해지는데 이를 바탕으로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개성화'라고 표현했다. 융에 따르면, 사람들은 사회 문화적으로 허용된 모습으로 살기 위해 타고난 자기의 모습 중 상당 부분을 억압하며 지낸다. 하지만 중년에 이르면 그동안 억압되었던 자아들이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이 신호는 주로 불안, 우울, 공허감 등 심리적 위기의 형태로 나타난다. 융은 이 마음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면서 억압해왔던 부분들을 꺼내보고 이를 현실에서 통합해갈 때 개성화되어갈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이 억압해왔던 것들을 보살펴주는 방법 중 하나가 내 안의 '자유로운 내면아이'를 존중해 주는 것이다. 어릴 적 늘 새롭고 즐거운 놀이를 만들어냈던 자유로운 내면아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깊이 숨어든 것이다. 이 자유로운 내면아이를 다시 만날 때 생동감과 재미를 느낀다.

중년의 배움이 즐겁다면, 이는 자유로운 내면아이가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내가 영어를 배우면서 재미를 느끼고 있는 건, 나의 내면아이가 시험이 목적이 아닌 순수한 배움의 즐거움을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평소 사용해왔던 부분과 반대되는 면을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주로 이성만을 활용하며 살아온 과학 선생님이었던 이웃이 그림을 그리면서 감성을 발휘하는 것, 쑥스러움 많던 친구가 동화구연을 배우는 것은 억압해온 자신의 반대되는 면을 사용해 개성화를 이뤄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융 역시 중년에 어린 아이처럼 바닥에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내면 아이를 만났고 다양한 새로운 것들을 배워보았다고 한다. 중년의 배움은 위기를 성장으로 이끄는 '개성화'의 과정인 것이다.

이처럼 중년 여성의 배움은 '자기실현'에 대한 자연스런 심리적 욕구에서 비롯된다. 중년기의 자기실현은 융이 말한 것처럼 인간의 타고난 심리기제이자, 온전한 한 개인으로 성장하기 반드시 거쳐가야 할 과정 중 하나다. 하지만, 심리적 주권을 개인에게 넘긴 현대 사회는 자연스런 심리적 발달과정에서 오는 자기실현의 욕구에 자꾸만 압박을 가한다.

서점에 쌓인 자기계발서들은 중년기에 자기실현을 하지 않으면 인생에서 낙오된다고 이야기 한다. 때문에 현대의 중년들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 개성화를 위해 자연스레 나오는 불안감은 물론, '자기실현'을 제때 해내지 못해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더한 두 배의 위기를 느낀다.

중요한 건, 좋든 나쁘든 위기는 성장을 견인한다는 점이다. 지금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면 위기를 성장으로 바꿔가고 있는 중이다. 그 배움은 어떤 것이든 소중하고 가치 있다. 다만, 조급함은 내려 놓았으면 한다. 배우고 있는 것으로 성과를 내지 못할까 봐 조급하다면, 그건 자연스런 심리적 기제에서 나오는 불안이 아니라 사회적 압박에 의한 반응일 것이다.

이런 압력에 편승한다면 사회적 자아로만 살아왔던 젊은 시절의 실수를 반복하게 될 수밖에 없다. 수명은 점점 길어질 것이고 중년 역시 더욱 길어질 것이다. 그러니 천천히 여유롭게 다양한 배움을 즐기면서 '자기실현' 과정을 하나하나 깊게 겪어내보자.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중년여성 #중년의배움 #자기실현 #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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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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