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모이>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

[주장] '민족' 강조하는 <말모이> 속 언어관, 일본 제국주의 영향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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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insain)등록 2019.02.07 13:19
조선어학회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말모이>가 관객 270만 명을 넘어섰다. <말모이>를 보면서 우리가 생활에서 늘 사용하는 우리말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는 리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분명 조선어학회 대표인 류정환(윤계상 분)을 비롯한 엘리트뿐만 아니라 한글을 읽을 줄도 모르던 김판수(유해진 분) 같은 평범한 서민조차 일제의 탄압 속에서 우리말 사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제법 감동적이다.

하지만 나는 조선어학회와 '말모이'를 다룬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복잡한 심경이었다.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입니다"라는 영화 속 류정환의 대사이자 실제 이극로 조선어학회 대표가 했던 말 자체가 모순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국어' 뿌리는 일본 '코쿠고' 
 

영화 <말모이>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모순은 조선어학회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해 활용했던 논리, 즉 '우리말은 민족의 혼을 담고 있다'는 주장 자체가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는 데 있다.

근대 한국의 국어 개념은 일본의 '코쿠고', 즉 국어(國語) 개념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코쿠고' 개념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언어학자 우에다 카즈토시는 "일본어는 일본인의 정신적 혈액이라 할 수 있다"는 명제를 남겼다.

이 같은 사고는 일본의 제국주의와 맞물려 식민지 조선인에게 '정신적 혈액'을 주입함으로써 '충량한 황국 신민'을 만들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경성제국대학 교수를 지낸 언어학자 도키에다 모토키는 "조선인이 코쿠고를 습득하여 이것을 실천하는 것이 국민으로서의 하나의 커다란 의무"라고 주장했다.

결국 '코쿠고'란 관념은 "소수 민족과 식민지 민족의 민족어를 억압‧말살시키려는 언어정책을 정당화하는 논리"(조태린)로 다른 민족의 동화, 말살에 일조한 제국주의적 논리였다.

문제는 '코쿠코'의 뿌리에 있는 언어와 민족을 동일시하는 논리를 한국의 '국어' 관념에서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는 데 있다. 언어학자 조태린은 '코쿠고'와 '국어'를 비교하면서 "언어에 대한 이와 같은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 관점은 우리나라에서 사용되어 온 근대적 용어로서의 국어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된다"고 지적한다.

"우리말은 우리 민족의 정신적 산물의 총합체이다. 이 말의 울리는 곳에는 조선심이 울리며, 이 말의 펴나는 곳에는 조선혼이 펴난다"는 최현배의 말은 표현만 좀 다를 뿐 "일본어는 일본인의 정신적 혈액"이라는 인식과 별로 다르지 않다.

국권을 잃은 한국은 '민족-언어'의 관계를 강조한 반면 제국주의 국가인 일본은 '민족-국가-언어'를 모두 동일시했다는 차이를 제외하면 일본 '코쿠코'의 논리와 한국 '국어'의 논리는 근본적으로 같았다. 양쪽 모두 '민족의 혼이 담긴 우리말'을 상정한 후 한쪽은 그걸 빼앗으려 들었고, 한쪽은 그걸 지키려 했다.

제국주의적 국어 논리 빌린 국어운동

그런 점에서 주시경, 김두봉 등이 편찬을 주도한 우리말사전 <말모이>를 다듬어서 출간하려 했던 <사전>의 광고 문구는 의미심장하다. 김두봉이 지은 <조선말본>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사전> 광고가 실려 있다.

"조선의 지금 말[時語] 5만의 표준을 정하고 의의(意義)를 설명한 것이니 조선이 말을 가진 이후에 처음 있는 대저(大著)라. 우리의 정신적 혈액이 이로부터 일단의 생기를 얻을지니라."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광고 문구 속 "우리의 정신적 혈액"이란 표현과 우에다 카즈토시의 "일본어는 일본인의 정신적 혈액"이라는 표현이 너무나 비슷하다.

언어학자 최경봉은 이를 두고 '제국주의적 국어 논리를 식민지 민족어의 의미를 밝히는 데 활용한 것은 아이러니하다'고 지적한다.(<근대 국어학의 논리와 계보> 169쪽)

이 아이러니는 일본에 맞서 우리말을 지키려고 했던 조선어학회 인사들 자신이 바로 일본 문법학을 공부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최현배, 김윤경, 정열모 등은 일본 문법학자로부터 근대 문법학을 배웠고, 이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우리말 문법체계를 세웠다. 정인섭은 일본에 유학해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이희승은 일본에 유학하지는 않았지만, 경성제국대학에서 오구라 신페이, 고바야시 히데오에게 언어학 연구의 방법론을 배웠다.(<우리말의 탄생> 320~328쪽)

특히 '외솔'이라는 고유어 호도 성에 안 차 호를 '감메'로 바꾸고 '최현배'라는 이름을 '한 방우'로 바꿀 만큼 '순수한 우리말'을 추구했던 최현배와 일본 언어학의 관계는 흥미롭다.

최현배는 일본 유학 시절 교토제국대학에서 앞서 말한 우에다 카즈토시의 제자인 신무라 이즈루에게 언어학 강의를 들었다. 최현배의 책에는 역시 우에다 카즈토시의 제자인 호시나 코이치가 적지 않게 등장하고, 그의 저서인 <우리말본>은 일본의 국수주의 언어학자 야마다 요시오의 영향을 받았다.(<국어라는 사상> 384~385쪽)

수많은 근대 학문이 그렇듯 근대 국어학 역시 일본 언어학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셈이다.

타자 없이는 '우리'도 없다
 

영화 <말모이>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언어와 민족을 동일시하는 언어관은 대개 '민족의 혼이 담긴 순수한 우리말을 지켜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말모이>를 연출한 엄유나 감독은 <말모이>를 찍는 동안 현장에서 최대한 외래어를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우리말 단어가 잘 안 떠오를 만큼 자연스러운 외래어'까지 피하려고 했다는 것이다.(2019년 1월 19일 <뉴스엔> '택시운전사'→'말모이' 왜 이런 영화만 하나요[EN:인터뷰])

이러한 언어관은 일본 제국주의가 창씨개명과 일본어 사용을 강제하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 불가피했고, 한글과 우리말을 지키는 데 기여한 면도 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지향하는 언어관이 타자, 그것도 저항의 대상이었던 일본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는 사실은 모순이다. 이 모순은 아무리 타자를 배제하려 해도 '우리'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는 타자를 통해서만 우리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 제국주의라는 타자와의 폭력적인 대면이 우리말의 의미를 새삼스레 고민하게 했던 것처럼.

제국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타자와의 관계 자체를 거부할 필요는 없다. 일제강점기로부터 74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추구해야 할 우리말은 '순수한 우리말'이 아니라 타자와 평등한 위치에서 관계 맺는 우리말이라고 믿는다. 내가 <말모이> 속 언어관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국어'라는 용어에 대한 비판적 고찰」, <근대 국어학의 논리와 계보>, <우리말의 탄생>, <국어라는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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