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26 16:23최종 업데이트 18.10.26 16:23
  

1900년대 초 상해 항구 풍경 ⓒ 미상(저작권해제)

 

박재혁은 상하이를 중심으로 홍콩ㆍ싱가포르를 오가면서 사업을 하는 한편 우리 독립운동가들과 만나 수익금의 일부를 지원하였다. 그리고 틈나는대로 일본어와 중국어를 익혔다. 몇 해 뒤 일본어는 회화가 가능했고 중국어는 책을 읽을 수 있을만큼 되었다. 


중국 대륙은 요동치고 있었다. 

신해혁명(1911년)으로 청조(淸朝)를 무너뜨린 손문의 혁명세력은 새로운 중화민국을 수립했으나 정국은 여전히 소연한 상태에 있었다. 특히 일본과의 관계가 날로 악화되었다. 일본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열강의 세력이 일시적으로 중국에서 후퇴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1915년 1월 중화민국 총통 원세개(袁世凱)에게 강압적인 21개조를 요구하였다. 
  

북경 자금성의 군기처 건물에 전시된 원세개의 사진. ⓒ 김종성

 
주요 내용은 남만주철도 권익기한의 99년간 연장, 내몽고에서 일본의 우월권 확립, 중국 연안의 항만ㆍ섬의 타국에 대한 할양ㆍ대여금지, 중국 정부의 정치ㆍ재정ㆍ군사고문으로 일본인 초빙 등 하나 같이 굴욕적인 내용이었다. 이로 인해 중국 조야에서는 반일감정이 고조되어 갔다.

박재혁은 상하이에 머무는 동안 중국대륙은 물론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격변하는 국제정세 등을 내다보는 안목이 틔었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차츰 연못으로, 나아가서 넓은 바다를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상하이의 서점에는 중국 사회를 대표하는 저명인사들의 각종 서책이 진열되고, 널리 읽히고 있었다. 진보적인 문인ㆍ학자들의 책과 중국 개화사상가들의 글이 화제를 모았다. 박재혁이 얼마 뒤 의열단에 가담하게 된 것은 단순히 김원봉과의 친면뿐만 아니라 중국 현지에서 읽은 독립사상을 일깨운 책의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양계초(1873-1929) ⓒ 미상

 
박재혁은 양계초(梁啓超)의 책 <음빙실문집>을 샀다. 책 중에 <방관자를 꾸짖는다>는 글을 읽기 위해서였다. 중국 상인들은 물론 한국인들과의 대화에서 이 글의 내용이 자주 언급되고 있어서 구입한 것이다. 또 베이징대학 교수 진독수(陳獨秀)의 책도 사서 읽었다. 

양계초의 글은 중국이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뒤 외세의 중국진출이 현저해지면서, 배외운동의 격화로 의화단사건이 발발되어, 외국의 연합군이 베이징까지 침입하는 등의 위난을 겪을 때 쓰였다. 서두 부문을 소개한다.

방관자를 꾸짖는다

방관자보다 보기 싫고 저주스러우며 비열한 인간은 이 세상에 없다. 방관자라는 것은 동쪽 강가에 서서 맞은 편의 붉게 타오르는 불꽃을 보고 희희거리고, 이 쪽 배를 타고서 저쪽 배가 침몰하는 것을 관망하면서,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을 보고 기꺼워하는 자와 같다.    
이러한 자는 음험하다고도, 표독하다고도 말할 수 없다. 별다르게 부를 방법이 없다. 부를 수 있다면 혈기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아아! 혈기라는 것은 인류가 생존하는, 세상이 존림하는 근본이다. 혈기가 없으면, 인류도 세계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방관자는 인류의 악인이며 세계의 원수이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면 각자 그 책임이 있다. 대장부가 책임을 안다는 것은 인간 구실의 시작이며, 책임을 진다는 것은 곧 인간의 구실을 포기해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한 집안, 한 국가, 세계에 대해서 그 책임이 각각 있는 것이다. 한 집안, 한 국가, 세계에 대해서 각각 그 책임을 포기한다면, 반드시 집안은 몰락하고 국가는 망하며 세계는 파멸될 것이다. 방관한다는 것은 책임을 포기한다는 말이다. 

중국의 문장가들에게는 두 경구가 있다. 
"인간을 구제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것은 내가 아니고, 주공(周公)이나 공자가 할 일이다." 일반인들에게도 두 구(二句)의 숙어가 있는데. "자기 집 대문 앞 눈이나 쓸 일이며, 남의 집 지붕위의 서리는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 이 몇 마디는 진실로 방관주의의 경전이며 구호이다. 이러한 말들은 전 중국인의 뇌리에 깊이 박혀, 버릴 수도 씻을 수도 없다.

바꾸어 말하자면, 방관이란 우리 전 중국인의 성질을 대표한 것이고, 혈기가 없다는 것이 우리 전 중국인의 전유물이 된 것을 의미한 것이다. 아아! 나는 이것을 두렵게 여긴다. 방관이란 것은 손님의 입장에 선다는 말이다. 세상일에는 손님만 있고 주인이 없어서는 이룩될 수 없다. 한 집의 예를 들면, 크게는 그의 자식을 교육시키고 재산을 관장하는 것이며, 작게는 대문을 열고 닫으며 뜰을 가꾸고 소제하는 것 까지 모두 주인이 할 일이다. 주인은 누구인가, 곧 그 집안의 사람들이다. 집안사람들이 주인의 임무를 다 했을 때 집안이 이루어 진다. 

만일 집안사람들이 각기 손님의 입장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들은 아버지에게, 형은 아우에게, 아우는 형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그들의 책임을 미루는, 이와 같은 것을 주인이 없는 집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집안은 머지않아 몰락하고 말 것이다.   

국가도 다름 아니다. 국가의 주인은 누구인가, 곧 그 국가의 국민이다. 서방국가가 강대하게 된 이유에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고, 국민들이 모두 주인의 직분을 다 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렇지 않다. 주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누구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곧 "백성들이 주인이다"라고 말하면, 백성들은 "이것은 관리들의 일이며 나와 아무 상관없다"라고 말한다.   "관리들이 주인이다"라고 말하면, 관리들은 "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그저 위세를 부리고 이권을 갖기 위해서이며, 다른 일은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국가는 비록 크지만, 결국 주인은 없는 것이다. 주인이 없는 국가에서는 노복들이 농간을 하고, 도적들이 탈취를 행하기 마련이다.

<시경(詩經)>에서 말하기를 "당신 집안을 쓸지도 닦지도 못하고, 당신이 쇠북과 장고를 갖고 있어도 울리지도 치지도 못한다면, 당신이 죽고 나면 남들이 차지한다." 이것은 틀림없는 하늘의 이치이니, 남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주석 1)

주석
1> 이화섭 편역, <방관자를 꾸짖는다>, 10~10쪽, 춘추원.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의열지사 박재혁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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