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먹는 하마'가 줄어들자 생긴 일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32] 덴마크의 경험 (하)

등록 2018.10.29 07:50수정 2018.11.0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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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오염, 그리고 후쿠시마 참사가 보여준 원전재난의 가능성은 '더 이상 위험한 에너지에 기댈 수 없다'는 깨달음을 확산시키고 있다. 지난해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으로 본격화한 탈핵 논쟁은 우리 사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에너지체제를 전환할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할 시험대가 되고 있다. <단비뉴스>는 기후변화와 원전사고의 재앙을 막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에너지구조'를 만들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모색하는 심층기획을 연재한다. - 기자 말

[덴마크의 경험 (상)] 기적의 섬 '삼쇠'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의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리는 시민들. ⓒ 제정임

 
북유럽의 대표적 복지국가이자 1인당 국민소득(GDP) 세계 9위(2017년) 부자나라인 덴마크는 '자전거 천국'으로도 유명하다. 국민 10명 중 9명이 자전거를 갖고 있다. 특히 수도 코펜하겐은 국제사이클연맹(UCI)이 2007년부터 매년 선정하는 '자전거의 도시'에 첫 번째로 뽑혔을 만큼 '두 바퀴의 탈것'이 물결을 이루는 곳이다.

코펜하겐시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코펜하겐과 프레데릭스베르시, 보른홀름섬 등 덴마크 수도권에서 주민들이 통근·통학 운송수단으로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이 자전거(41%)였다. 버스·기차 등 대중교통은 27%, 자가용 승용차가 26%, 도보가 6% 등으로 뒤를 이었다.

코펜하겐에는 갓돌 등으로 차로와 구분한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고, 교차로에서 최대한 신호에 걸리지 않고 운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자전거 신호등이 있다. 또 교통신호를 최소화해 고속주행이 가능한 '자전거 고속도로(Cycle Superhighways)'도 있다. 코펜하겐과 주변 도시를 연결하는 자전거 고속도로는 8개 노선이 있으며, 교차로 등에서 멈췄을 때 한 발을 올리고 기다릴 수 있는 발판과 전용 공기펌프 등 편의시설도 갖추고 있다.

덴마크 외교부가 관리하는 국가 홈페이지(https://denmark.dk)에 따르면 자전거는 덴마크에 처음 소개된 1880년 이후 대표적인 운송수단이 됐지만 1950년 후반부터 자동차가 늘면서 퇴조하기 시작했다. 덴마크 정부는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자동차 중심으로 도시 계획을 짰다.

1970년대 두 차례 몰아닥친 석유 파동은 이런 흐름을 바꿨다. 널뛰기하는 국제원유 가격에 '에너지 안보'가 위협받는 처지에 이르자 수입 에너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국가적 각성이 일어났다. 전력생산 분야에서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늘려나가는 노력과 함께 '석유 먹는 하마'인 자동차를 줄이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코펜하겐시는 '차 없는 일요일' 제도를 도입했고, 시민들은 '자동차 없는 도시를 만들자'고 거리에 나와 시위를 벌였다. 1982년에는 시민단체인 덴마크 사이클리스트연맹(Cyklistforbundet) 회원 수십 명이 코펜하겐 시청 광장에서 자동차를 망치로 부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가 일으키는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이런 운동은 더욱 힘을 얻었다.
 

1982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시청 광장에서 자전거 중심 교통체계 도입을 요구하며 자동차를 부수고 있는 사이클리스트연맹 회원들. ⓒ 덴마크 사이클리스트연맹 홈페이지

 
자동차엔 높은 세금, 자전거엔 인프라 확충 


정부는 조세와 사회기반시설(SOC)건설 등 다양한 정책을 통해 이런 흐름이 대세가 되게 만들었다. 우선 자동차에 높은 세금을 매겼다. 1977년에는 자동차 등록세를 도입, 차량가격의 최고 180%를 세금으로 물렸다. 이 세금은 지금도 최고 150%의 세율을 유지하고 있다.

또 자동차 연비 구간별로 세금을 매겨 1년에 두 번씩 걷는 승용차 그린세(green tax on passenger cars), 트럭·버스 등 그린세 대상이 아닌 모든 자동차 소유자에게 걷는 자동차 중량세(weight tax on motor vehicles)도 도입했다. 적재중량 12톤(t) 이상 차량이 도로를 이용할 때 물리는 도로사용자 부담금도 생겼다.

이렇게 세금을 통해 자동차 보유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대신 자전거에 대해서는 획기적인 장려책을 폈다. 코펜하겐의 경우 2006년부터 10년간 새 자전거도로 46킬로미터(km)와 자전거·보행자 전용 다리 17개를 건설했다. 자동차도로의 폭은 좁히고 자전거도로의 폭은 넓혔다. 자전거주차장과 공용자전거도 크게 늘렸다. 여기에 쓴 돈만 10억크로네(약 1742억 원)다.

이렇게 꾸준한 투자의 결과로 2016년에는 코펜하겐 시내 중심부의 하루 평균 자전거 통행량(26만5700대)이 자동차(25만2600대)를 앞지르게 됐다. 집계를 시작한 1970년의 통행량이 자전거 10만대, 자동차 34만대였던 것에 비해 엄청난 변화다.

코펜하겐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전거를 통근·통학수단으로 타는 주민 비율을 2025년까지 50% 이상으로 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예산 26억 크로네(약 4530억 원)를 더 쓰겠다는 계획을 지난해 2월 발표했다.

덴마크가 이렇게 자전거 장려정책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자동차 운행 감소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고 공기가 맑아지는 등의 환경개선과 함께 국민 건강증진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 이후 코펜하겐시 중심부의 자전거, 자동차 통행량 변화 추이. 46년간 자동차는 꾸준히 줄고 자전거는 빠르게 늘어나 2016년에 자전거 통행량이 자동차보다 많아졌다. ⓒ Mikael Colville-Andersen

 
두바퀴족, 덜 아프고 비만·과체중도 적고

덴마크 정부에 따르면 2016년 수도권 주민 180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약 110만 명이 '자전거를 타지 않았을 때와 비교해 1년 중 아픈 날 수가 줄었다'고 응답했다. 이런 조사결과에는 의학적인 근거가 있다.

영국의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공중보건대학 연구팀이 지난 2013년 영국 직장인 2만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출퇴근 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자동차 이용자에 비해 당뇨병 발병률이 절반 정도로 낮았다. 또 비만율은 자전거 이용자가 13%로 가장 낮았고, 도보는 15%, 자동차 이용자는 19%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코펜하겐 시내에서 볼 수 있는 자전거 신호등과 다양한 모양의 자전거들. ⓒ 제정임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덴마크는 세계 주요국 중 네덜란드에 이어 자전거 수송분담률이 두 번째로 높은 나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8년 건강통계'를 보면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 자전거 수송분담률이 높은 나라의 '과체중 또는 비만인구 비율'은 46~48%로 자전거를 많이 타지 않는 미국, 영국, 그리스, 캐나다 등의 52~64%에 비해 상당히 낮다. 

북미와 유럽 국가들은 기름진 식생활 등의 요인 때문에 '비만과의 전쟁'을 벌일 만큼 과체중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식습관이 비슷한 국가들 중에서도 자전거를 많이 타는 나라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건강하고 날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자전거 수송분담률이 낮지만 식습관 등 다른 요소의 차이로 과체중·비만 인구 비율도 서구에 비해 매우 낮은(25%) 특수한 사례에 속한다. 
 

주요 국가별 자전거 수송분담률 비교.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순으로 분담률이 높다. 우리나라의 자전거 수송분담률은 덴마크의 10분의 1도 안 된다. ⓒ 한국교통연구원, 박진홍

 
전기는 풍력·태양광, 난방은 바이오매스로  

덴마크는 자전거 중심의 교통·수송 분야 친환경 혁신, 풍력·태양광 중심의 발전분야 혁신과 함께 난방 부분의 바이오매스(동·식물 등 생물체의 부산물을 활용한 에너지)활용으로 탄소배출 감축에서 세계적인 모범국가가 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바이오에너지 국가별 보고서 2016>에 따르면 2014년을 기준으로 덴마크의 총 1차에너지 공급량(TPES)의 76%가 바이오연료와 폐기물이다.

덴마크가 주로 활용하는 바이오에너지는 밀짚, 목재 펠릿 등 고체 바이오연료다. 이를 활용해 열병합발전소에서 전기와 난방용 열을 생산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2016년 발간한 '덴마크 지역난방산업의 역할과 과제' 보고서를 보면 2014년 기준 덴마크 인구의 60% 이상이 석유나 가스보일러 대신 지역난방으로 난방과 온수를 공급받는데, 여기 쓰이는 연료의 절반이 바이오매스다.

덴마크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979년 65.91메가톤(Mt)CO2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인 하향곡선을 보였고, 2016년에는 39.92MtCO2로 37년 동안 약 39%가 줄었다. 같은 기간 덴마크 1인당 국민소득(GDP)은 1만3752달러에서 5만3579달러로 약 290% 증가했다. 1인당 소득이 거의 4배가 되는 동안 탄소배출은 3분의 2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탄소배출 감축 정책이 경제성장에 전혀 불리하지 않다는 것을 스웨덴, 독일과 함께 덴마크도 증명한 셈이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덴마크 기후변화위원회는 2011년 2월 수립한 '에너지 전략 2050'에서 오는 2050년까지 화석연료 사용을 '제로(0)'로 만든다는 목표를 밝혔다.
 

1972년 이후 덴마크 이산화탄소 배출량 변화 추이. 2016년 배출량은 역대 최대량을 기록했던 1979년에 비해 39.4% 줄었다. ⓒ 덴마크 에너지청, 박진홍

 
'수입의존도 98%'에서 '에너지 완전자립' 실현 

덴마크의 에너지전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득은 '에너지 안보'를 확보한 것이다. IEA와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덴마크는 석유 소비 비중이 높았던 1970년에 1차 에너지(석유·석탄·풍력 등 가공되지 않은 상태로 공급되는 에너지) 사용량의 98%를 수입에 의존했다.

그러나 1998년에는 수입량이 -1.8%를 기록, 총 에너지 사용량보다 자체 생산량이 많은 에너지 자급자족 국가가 됐다. 에너지 사용량 대비 수입 비율은 2005년 –65%로 정점을 찍었고, 가장 최근 통계인 2015년에는 1.7%대를 유지하고 있다. 수입량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해당 연도에 국내에서 쓰고 남는 에너지를 수출했다는 뜻이다.
 

덴마크 1차 에너지 사용량 대비 수입 비중. 1998년에 완전자립을 시작했고, 2005년에는 65%의 순수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 세계은행, IEA, 박진홍

 
풍력, 태양광, 바이오매스 등 국산 재생에너지 사업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덴마크 에너지청이 지난 4월 펴낸 '에너지부문 고용 2016' 보고서를 보면 2016년 덴마크의 재생에너지분야 고용자 수는 3만1200명으로, 전체 에너지산업 종사자 7만3400명의 43%를 차지했다. 2년 전인 2014년의 39%에서 4% 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특히 2년간 에너지분야 종사자 수가 총 1800명 증가할 동안 재생에너지 분야는 3300명이 늘었다. 화석연료 등 기존 에너지산업에서는 일자리가 줄고 있으며, 대신 그보다 많은 수의 일자리가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생겨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덴마크 #코펜하겐 #자전거 #바이오매스 #단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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