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간호사들 '이러려고 간호사 했나 자괴감'

노조 "인증평가 위해 조작행위"... 병원 "노조 주장 사실과 달라"

등록 2018.10.26 14:49수정 2018.10.2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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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이 인증 평가를 잘 받기 위해 허위·조작 행위를 한다고 주장하는 간호사들 서울대병원이 인증 평가를 잘 받기 위해 허위·조작 행위를 한다고 주장하는 간호사들 ⓒ 신지수

 
2년차 서울대병원 간호사 김소현(26)씨는 일할 때마다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하루 최소 침대 11개~12개를 돌며 환자들의 수술 부위를 확인하고 혈압을 재다보면 물 먹을 시간도 없다. 그러다보니 매뉴얼을 지키지 못 할 때가 많다.

환자를 체크하기 전 최소 20초 이상 손소독을 하는게 원칙이지만 20초는 사치다. 손 소독제가 마르기도 전에 환자에게 달려가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출근해서 하는 일은 오늘 하루 환자에게 투약해야 할 약을 미리 준비하는 일이다"라며 "이대목동병원에서 신생아 사망사건이 발생한 것은 투약 직전 약을 준비하지 않고 미리 준비해 장시간 상온에 두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는 "신생아 4명이 사망했던 이대 목동병원의 일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라고 토로했다.

정신없이 바빠 원칙대로 일하지 못 하는 것이 서울대병원 간호사들에게 일상이지만 서울대병원은 보건복지부가 인증한 '우수 의료기관'이다. 서울대병원 본관에 들어서면 금빛으로 된 '2주기 의료기관 인증마크'가 눈에 들어온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 서울대병원분회는 26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본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대병원이 인증평가를 위해 허위·조작 행위 등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력이 부족해 평소 지키지 못 했던 매뉴얼을 준수하고 있다고 거짓말 할 것을 지시받았으며 평가에 문제가 될 만 한 물품이나 기록 등을 숨기거나 폐기할 것도 요구받았다는 것이다.

노조 "인증평가 위해 병원 전체가 연기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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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본관 건물에 있는 인증마크 서울대병원 본관 건물에 들어가면 보이는 의료기관 인증평가 인증마크 ⓒ 신지수

 
서울대병원에서는 지난 23일부터 26일까지 4일 동안 의료기관 인증 평가가 진행 중이다. 의료기관 인증제는 환자 안전과 의료의 질 등을 평가해 정부가 인증마크를 부여하는 것이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이 인증단을 파견해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의료기관은 4년간 유효한 인증마크를 부여받는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2010년 국내 의료기관 중 최초로 1주기 의료기관 인증을 받았고 2014년 2주기 평가에서도 인증을 받았다. 현재 3주기 인증평가가 진행 중이다.

노조는 3주기 인증평가를 위해 병원 전체가 '연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우선 평가에 문제가 될 만한 비품이 병동에서 사라졌다고 했다. 서울대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최원영씨는 "오늘은 서울대병원 인증기간의 마지막날이다. 인증준비로 들썩이던 병동도 이제 조용해졌다"라며 "인증을 거치며 얻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잃은 것은 확실하다. 비품약들이다"라고 했다. 그는 "꽤 큰 서랍장에 보관하던 수백개의 약들이 사라졌다"라며 "전부 폐기되거나 탈의실 사물함이나 탕비실 서랍에 숨긴 것이다"라고 밝혔다.

최씨에 따르면 병동마다 상비해 둘 수 있는 약들이 정해져있다. 그 외에는 병원약국에 요청을 해야 한다. 최씨는 "응급시 사용해야 하는 약인데 상비약 항목에 없는 경우가 있다"라며 "그럼 그때마다 병원 약국에 요청하고 가지러 가야하는데 그럴만한 인력이 없다"라고 했다. 최씨는 이어 "가령 환자가 갑자기 숨을 못 쉴 때 기도확장을 하는 약제를 급하게 써야 한다"라며 "약이 없어 쩔쩔매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병동마다 자주 사용하는 약을 상비해두는 데 인증평가에는 좋지 않다"라고 했다.


허위 진술도 요구받았다고 했다. 최씨는 "인증단이 와서 물어보면 지난 6월에 소방안전훈련을 했다고 대답하라고 지시를 받았다"라며 "저는 (소방안전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라고 했다. 노조가 지난 19일부터 25일까지 간호사 3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9.1%가 인증단에 허위 진술을 할 것을 요구받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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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이 인증 평가를 잘 받기 위해 허위·조작 행위를 한다고 주장하는 간호사들 서울대병원이 인증 평가를 잘 받기 위해 허위·조작 행위를 한다고 주장하는 간호사들 ⓒ 신지수

 
쏟아지는 업무 때문에 지키지 못 했던 '원칙'이 평가 기간에만 지켜졌다. 김소현씨는 "감염 위험 때문에 검진에 사용한 기구는 지정된 장소에 둬야 한다"라며 "하지만 그곳까지 갈 시간이 없어서 한 쪽에 통을 마련해 사용한 도구를 담아둔다"라고 했다. 김씨는 이어 "원래는 그곳에 두면 안 되는데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것이다"라며 "인증평가 기간에만 그 통이 지정된 장소로 간다. 그렇게 위치 변경되는 물건들이 참 많다"라고 말했다.

노조는 서울대병원이 외래 환자와 수술건수를 의도적으로 줄여, 환자들이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는 것처럼 꾸민다고도 주장했다. 노조에 따르면 2017년 10월 4째주 서울대병원에서는 수술이 1123건, 외래는 50799건이었다. 하루 평균 224건의 수술과 10159건의 외래가 있었던 것이다.

반면 2018년 10월 4째주에는 수술이 758건, 외래는 46879건으로 하루 평균 151건의 수술과 9375건의 외래가 있었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수술은 365여 건이, 외래는 3920여 건이나 차이나는 것이다. 노조는 "서울대병원은 인증평가 기간에만 업무 조정을 통해 그 시간에 일하는 직원 수를 늘리거나 환자 수를 줄인다"라고 주장했다.

최원영씨는 "병원을 찾은 환자에게 의료기관 인증을 받은 병원이라고 홍보하려면 인증기간 며칠만 인증기준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라 1년 365일 인증기준에 맞는 의료 질을 유지해야 한다"라며 "그게 아니라면 사기꾼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365일 인증기준에 맞는 병원이 되기 위해서는 대규모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고 했다.

허술하게 진행되는 인증평가제도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상임대표는 의료기관 인증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신생아 사망사건 등도 인증 받은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사고"라며 "인증평가의 낮은 변별력이 문제다"라고 했다.

실제 서울 이대목동병원의 경우 2014년 인증평가에서 최상급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대로라면 인증평가 제도는 의료기관의 마케팅, 홍보를 위한 것으로 전락할 뿐이다"라며 "불시에 인증평가를 실시하는 등 인증평가제를 손봐야 한다"라고 했다.

병원 "노조의 주장 사실과 다르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노조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허위·편법으로 인증을 받고 있다는 노조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허위 진술을 하고 물품 등을 폐기하라고 병원에서 지시한 적이 없다"라며 "하지 않은 소방안전훈련을 했다고 말하라고 지시한 적도 없다"라고 했다. 환자 수를 조절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학회, 휴가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외래 환자 수가 달라진다"라며 "단순히 줄었다는 것만 가지고 예약을 줄여서 받았다고 볼 수 없으며 그런 사실도 없다"라고 했다.
#서울대병원 #최원영 간호사 #인증평가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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