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는 지극히 넓다" 조선인이 세계지도 그린 이유

[지도와 인간사] 조상들은 어떻게 아프리카를 그렸을까

등록 2018.11.02 18:13수정 2018.11.0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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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 아프리카 ⓒ 류코쿠대학 도서관

 
15세기에 한양에서 제작된 강리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조선시대에 제작된 세계지도)의 아프리카는 거대 호수를 품고 있습니다. 과연 이 거대 호수의 형상을 어디에서 가져온 것일까요? 그 출처는 어떤 지도일까요? 이번호의 탐험 주제입니다.

아프리카의 거대 호수가 그려진 원천 지도를 어디서부터 찾아보는 게 좋을까요? 동서양의 모든 지도를 다 뒤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혹시 지도의 맨 아래에 적힌 글 속에 무슨 힌트가 있지 않을까요? 고려말 조선 초의 학자 권근이 지도 제작 동기와 원천 자료 및 경위를 기록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 기회에 권근의 글을 읽어 봅니다.
  

강리도 권근의 발문 ⓒ 류코쿠대학 도서관

 
천하는 지극히 넓다.

안으로 중국에서부터 밖으로는 아득한 사해(四海)에 이르기까지 몇 천 몇 만 리나 되는지 알 길이 없다. 이를 줄여서 몇 자(尺)의 화폭에 상세히 그리기란 어려운 일이다. 지도를 만들면 대체로 엉성해지고 마는 까닭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오문(吳門, 오늘날 중국 소주) 출신 이택민의 <성교광피도(聲敎廣被圖)>는 매우 상세하고, 역대 제왕의 연혁은 천태승(天台僧) 청준(淸濬)의 <혼일강리도>에 잘 나타나 있다. 

건문(建文) 4년(1402) 여름에 좌정승 김사형(金士衡)과 우정승 이무(李茂)가 공무 중에 시간을 내어 이 지도들을 연구한 후 이회(李薈)로 하여금 상세히 교정하여 한 장의 지도로 만들도록 하였다.

그런데 요수의 동쪽 땅과 우리나라의 강토는 이택민의 지도에도 오류와 생략이 많았다. 이 참에  우리나라 지도를 특별히 더 넓히고 일본까지 덧붙여 새로운 지도를 완성하게 되었다. 지도가 정연하여 눈이 시원하다. 실로 문밖을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알 수 있다.

-금년(1402) 가을 8월(음력)에 양촌 권근이 쓰다-

이글의 첫 문장인 '천하는 지극히 넓다'는 평범하게 들리지만 의미심장한 메시지입니다. '중국만이 세계가 아니다. 중국 너머 얼마나 넓은 세상이 있는지 모른다'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탈중화주의적 세계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강리도를 제작하였기 때문에 중국 너머의 아라비아와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 땅도 강리도에 그려질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권근의 기록 자체가 매우 소중합니다. 만일 이 글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반도가 엄청 크게 그려져 있는 걸로 보아 조선 사람이 만든 지도라고 추정할 수는 있겠지만 이 지도가 과연 언제 어떻게 어떤 동기에서 누구에 의해 만들어 졌는지는 영원히 드러나지 않을 겁니다.

아주 이상한 일지만, 권근의 글 이외에는 다른 어디에도 강리도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조선실록에도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따라서 강리도 제작 배경을 이해하려면 권근의 글을 찬찬히 음미해 보아야 합니다. 글의 표면에 보이지 않는 빙산의 밑 부분까지를 들여다 볼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조선 초에 누군가가 처음으로 세계지도의 결정판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당시까지 알려진 천하의 모든 영역을 한 장의 지도로 그려보겠다는 야심을 품은 것입니다. 그 주인공은 좌정승 김사형(고려말 조선 초의 명신, 학자)이었을 수 있습니다(이에 대해서는 추후 살펴볼 예정).

김사형 등은 이 야심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먼저 지도를 모으고 검토합니다. 중국에서 수집한 지도들을 열람하고 검토한 결과, 세계 지도의 밑그림이 될 수 있는 가장 우수한 지도 두 개를 선택합니다. 그 하나는 원나라 이택민의 지도이고 다른 하나는 역시 원나라 청준의 지도입니다.

놀랍게도 이택민의 지도에는 중국 저 너머 서역 세계가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아라비아, 유럽, 아프리카라고 부르는 지역들입니다. 동으로는 한반도와 일본에서부터 서로는 이베리아 반도와 아프리카에까지 이르는 광대한 세계가 그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몽골 제국이 개척한 초광역의 세계상이었습니다.

이들 중국제 지도를 유심히 살펴보던 김사형의 시선이 한반도에 꽂히면서 탄식이 터져 나옵니다. 으음, 우리 조선을 이렇게 엉터리로 그리다니… 말이 안 돼. 김사형은 곧 지도 전문가 이회를 부릅니다. 그리고 지침을 일러줍니다.

강리도 모본의 존재

이와 관련해 근래에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한양에서 우리 선조들이 강리도라는 세계지도의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던 시기보다 좀 더 앞서 중국에서도 똑같은 일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중국 절강성 출신의 오사도(烏斯道, 원나라 말 명나라 초 사람)라는 학자가 원나라 말기에 세계지도의 결정판을 만든다는 야심을 품고 지도를 수집하고 검토합니다. 진정 흥미로운 일은 오사도 역시 두 종류의 지도를 선택해 밑그림으로 삼았는데 그게 권근의 글에서 언급된 두 지도와 일치한다는 사실입니다. 이택민과 청준의 지도가 그것입니다. 서로의 안목이 정확히 일치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발견한 학자는 일본 교토 대학의 소장 학자 미야 노리코 교수입니다. 노리코는 강리도에 대한 연구서를 단행본으로 펴낸 최초의 학자이기도 합니다. 책의 원제는 <몽골이 낳은 세계지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이 그린 세계지도>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됐습니다.

미야 노리코는 말합니다.
 
<성교광피도>의 작자 이택민에 관해서는, 권근이 오문(현재의 소주)출신이라고 만 언급했을 뿐으로, 地方志나 당시의 비문 등에도 그의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오사도라고 하는 인물의 문집 <춘초제집(春草齊集)> 3권의 "<여지도> 출판의 서"라는 문장에 아주 중요한 실마리가 들어 있는 것이다.

"지리를 지도에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은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 왔으나, 본조(원나라를 가리킨 것으로 보임-미야 노리코)의 이여림(李汝霖)의 '성교피화도(聲敎被化圖)'가 최후에 등장한 지도이다(최신 지도이다). 지금까지 다양한 지도를 검토해 본 결과 나는 <광륜도>가 유일하게 실제 지형과 거의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지도는 유감스럽게도 산악지형이 정확한 장소에 실려 있지 않으며 하천은 그 원류가 확실히 표시되어 있지 않아 (...) 한편 이여림의 지도를 보자면, (…) 상세하기는 하지만 너무 번잡하고 엉켜 있어 그 경계를 알아보기 어렵다.

이에 이여림 지도의 모눈에 의거하여 재차 대조하여 교정을 가했다. (...) (자료를) 폭 넓게 탐구하여 새 지도를 완성했다. 이 지도를 통해 황제의 교화가 미치는 범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며 천하의 지리서와 지도가 싣고 있는 내용을 고찰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 <조선이 그린 세계지도>109~110쪽 참조)

미야 노리코는 오사도가 언급하고 있는 '광륜도'가 권근의 글에 나오는 청준의 '혼일강리도'라는 것, 그리고 이여림이 바로 이택민의 字(남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 붙이는 이름, 중국의 옛 풍습)이며 이여림의 '성교피화도'가 곧 이택민의 '성교광피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앞의 책 110~111쪽). 이로써 그동안 안개에 가려져 있던 강리도의 모본 혹은 저본의 존재가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매우 의미있는 발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야 노리코는 말합니다.
 
"여기에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원나라 치하에서 오사도가 이미 바로 청준과 이택민의 두 지도를 이용하여 (강리도 제작과) 비슷한 작업을 했다는 사실이다. 역시 청준과 이택민의 두 지도가 가장 우수한 지도였던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권근이 수많은 지도 중에서 이택민과 청준의 지도만을 평가하고 있는 점에서 보면, 오사도와 조선왕조의 지도 콜렉션은 거의 같은 수준이었음이 틀림 없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과 한국 양국의 선각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몽골 세계대제국의 지리적 유산을 새로운 세계지도에 담고 있었던 것입니다. 뿐더러 동일한 두 지도를 밑그림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고려말 조선 초 우리 선조들의 지도에 대한 유별난 관심, 높은 안목과 큰 시야를 확인하게 됩니다.

위에 언급한 지도 중에 강리도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실물이 전해오지 않습니다. 중국 오사도의 지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강리도 속에 그것들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이지요. 아프리카의 거대 호수를 그렸을 이택민의 지도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혹시 그 파편이나 잔영 혹은 잔본(殘本)이 어디 남아 전해오지 않을까요? 그게 존재한다면 거기에서 아프리카 거대 호수를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 그걸 찾아봅니다.

강리도의 원천을 보여주는 자료

옛 중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지도첩을 들춰 보기로 합니다. 명나라 시대에 나홍선(羅洪先), 1504~1564)이라는 학자가 편찬한 '광여도'(1555년경)라는 지도첩입니다. 나홍선은 광여도를 편찬할 때 원나라 때의 여러 지도를 참고하고 수록했습니다. 광여도는 오랫동안 널리 유포됐습니다. 청나라 시절 1799년에도 출판됐습니다. 250년 가까이 장수를 누린 셈이지요.

때문에 여러 판본이 나왔습니다. 현재 중국 국내의 많은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국회 도서관), 영국(옥스포드대 Bodleian 도서관), 일본(국립공문서관) 등지에도 서로 다른 판본들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광여도 원본에 해당하는 초각본이 2012년 중국에서 출판된 바 있습니다.
  

광여도 초각본 ⓒ 김선흥

 
놀랍게도 이들 지도첩에 아프리카 거대 호수의 모습이 들어 있습니다. 초각본의 모습을 같이 보겠습니다.
  

광여도 서남해이도 ⓒ 김선흥

  
이 지도의 왼쪽 상단에 아프리카가 보입니다. 강리도의 아프리카와 흡사합니다. 윗쪽 부분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지도의 맨 오른쪽 상단을 보면 '서남해이도(西南海夷圖)'라 적혀 있습니다. '남서 바다 쪽에 있는 오랑케 땅의 지도'라는 뜻입니다.

그 아래에는 '경계 안은 눈금 하나가 400리(약 220km - 기자 말)이지만 경계 밖은 크기를 알 수 없어 기록하기 어렵다'라는 뜻의 글이 적혀 있습니다. 중국 땅에는 정방형의 모눈으로 축척을 표시했지만 아프리카에는 축척을 표시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한편 서남해이도의 아프리카에는 몇몇 한자가 적혀 있습니다. 이 글자들은 강리도의 류코쿠대 본에는 보이지 않지만 강리도의 다른 버전에는 기록돼 있습니다.

요컨대 광여도의 서남해이도가 강리도 아프리카의 원천을 보여주는 유일한 자료입니다. 그렇다면 이 서남해이도의 원주인은 누구일까요? 광여도의 제작자 라홍선은 그 출처를 명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야 노리코는 서남해이도가 이택민의 지도라고 단정합니다(<조선이 그린 세계지도> 103쪽). 이러한 관점은 석연치 않은 면이 있습니다. 서남해이도의 아프리카가 이택민의 지도라면 강리도의 아프리카와 같거나 매우 흡사해야 할 것입니다. 전체적인 형상은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아프리카 남부를 자세히 보면 무시하기 어려운 차이점이 드러납니다. 백문불여일도! 양자를 대조해 보겠습니다.
  

강리도와 서남해이도 아프리카 남부 ⓒ 김선흥

 
보다시피 나일강의 원천 부분의 묘사에 뚜렷한 차이가 보입니다. 또한 강리도의 아프리카 남부에는 산맥이 그려져 있는데 서남해이도에는 없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원래 큰 지도를 줄여서 지도첩에 간략히 옮기는 과정에서 초래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강리도에는 아프리카 남부에 서쪽으로 흘러드는 강(남아공의 오렌지 강)이 그려져 있는 반면 서남해이도에는 그게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나아가 중국에 있는 대명혼일도의 아프리카에도 오렌지강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대명혼일도는 그 크기가 강리도의 6배 이상 되는 대작인데도 오렌지강이 그려져 있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거대 호수를 담은 아프리카 지도들은 두 계열의 지도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하나는 오렌지 강이 없는 아프리카, 다른 하나는 더욱 발전된 버전으로서 오렌지 강이 그려진 아프리카.

광여도는 본래 원나라 시대 지도학의 거장이었던 주사본, 원나라, 1273~1333)의 지도를 바탕으로 만든 지도첩입니다(다른 지도들도 참고하고 수록함). 그런데 여기에 수록된 서남해이도의 아프리카에는 오렌지 강이 보이지 않는 반면 강리도의 모든 버전에는 오렌지강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서남해이도는 이택민의 것이 아니라 주사본의 것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주사본의 아프리카를 이택민이 발전시켜 오렌지 강을 그렸을 것이고 그것을 우리 선조들이 강리도에 반영시켰다고 보면 모든 의문이 풀립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강리도가 현전하는 동서양의 지도 중에서 남아공의 오렌지강을 가장 먼저 그린 지도라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 글에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사람들이 자기 나라의 가장 큰 강을 가장 먼저 그린 지도가 조선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강리도는 지금도 남아공의 국회 천년 프로젝트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15세기에 우리 선조들이 한양에서 그린 지도가 지금 아프리카에서 이처럼 주목 받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지 않나요? 더욱 신기한 일은 정작 우리는 신기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닐까요?
  

강리도 남아공 국회 천년 프로젝트 ⓒ pmpsa.gov.za


이번 호로써 아프리카를 벗어날까 합니다. 다음 호에서는 이태리 반도로 건너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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