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사 이순신 장군 영정 앞에서 경악한 이유

[주장] 영정 봉안실이 절간인가?

등록 2018.11.07 21:39수정 2018.11.07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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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8일 일요일. 초등학교 친구들의 산악회 모임이라 충남 온양의 설화산을 등반했다. 자그마한 산이지만 아담한 산세에 짙어가는 가을 단풍을 즐기는 산생을 하고 외암(巍巖) 민속마을을 관람하기로 했다. 그런데 비가 내려서 등산로 초입 근처에 있는 조선시대의 청백리로 이름 높은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1360∼1438) 선생의 유적지 " 맹씨 행단(孟氏 杏壇)"을 관람하고 외암 마을과 현충사를 관람하기로 했다. 

맹씨 행단에는 고불 선생이 심었다는 오래된 은행나무, 선생을 향사하는 세덕사(世德祠), 삼정승이 올라서 즐겼던 삼상당(三相堂)은 아홉그루의 느티나무를 삼정승이 함께 심었다고 구괴정(九槐亭)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이렇게 맹씨 행단을 둘러 보며 선조의 얼을 기리고 문화유산에 대한 의의와 오늘의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역사탐방과 초등 동창들의 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되어 아주 흡족한 얼굴로 외암 마을로 갔다.

외암 민속마을은 조선 후기의 학자인 외암(巍巖) 이간(李柬, 1677∼1727) 선생의 예안이씨가 집성촌을 이룬 마을이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율곡 이이의 학문적 적통을 이어받은 뛰어난 학자로 인정받아 문정(文正)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옛 정취가 묻어나는 돌담길을 걸으며 전통적인 방식으로 음식을 만드는 것을 구경하기도 하고 체험도 하고 음식맛을 보면서 민속마을의 분위기를 마음껏 즐겼다. 그리고 현충사로 향했다.

현충사(顯忠祠)는 초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왔던 곳이라 옛시절을 회상하니 잠시 가슴이 두근거리며 동심의 추억을 불러내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때 이후로 한 번도 들르지 않은 45년 만의 초행(?)길이었다.

갑자기 바람이 불고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의 각오로 나라를 구했던 구국간성(救國干城)이신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제독의 사당을 이제야 찾느냐고 호통치는 것 같다. 


정문 안으로 들어서니 경내의 노랗고 붉은 정원수의 비에 젖은 나뭇잎들이 바람에 휘날리며 촉촉이 젖어드는 풍경이 탄성을 자아낸다. 오래된 나무들의 우람한 자태와 기기묘묘한 수형(樹形)이 수십만 평의 넓은 정원의 아름다움은 경건한 마음을 잃고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먼저 후손들의 묘소를 둘러보며 활터를 둘러보는데 잠시 그쳤던 비가 쏟아져서 어린시절 자랐다는 고가로 가서 비가 긋기를 기다렸다. 

사당을 크게 확장하여 옮긴 곳으로 오르자니 잘 확장된 포장도로와 계단을 오르는 데 왠지 꺼리침한 기분이 든다. 너무 외형만 예쁘고 웅장하게 치장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담장 공사도 새롭게 진행중이라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안내문도 있다.

사당을 오르는데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커다란 한글 현판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초등학교 때 봤던 커다란 한자의 현판이 아니다. 대통령의 친필이라는 이유 외에는 저 곳에 걸어둘 이유가 없다. 뛰어난 필체도 아니고 글씨가 주는 경건성도 없다. 추사(秋史) 선생의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를 들먹이지 않아도 사당의 격에 어울리는 글씨의 품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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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현충사의 이순신 영정 ⓒ 유병상

유쾌하지 않은 마음으로 계단을 올라 영정 봉안실에 이르러 분향을 하고 영정을 보다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영정 봉안소가 왜 저렇지? 도무지 납득이 돼질 않았다. 표구된 액자에 모셔진 영정이 부처님을 모시는 절집의 닷집(天蓋) 아래 모셔진 것이다. 말문이 막혀 할 말을 잃었다. 국가사적에 모셔진 사당의 영정이 이렇게 아무런 개념도 없이 내부를 임의적으로 설치해도 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탁한 공기를 마신듯 갑갑한 가슴을 안고 초등학교 때 찾았던 구현충사로 갔다. 그때는 그렇게 컸던 사당이 이렇게 작았나 하는 의구심이 인다. 문이 활짝 열어젖혀진 텅 빈 사당엔 숙종(肅宗)임금이 내린 위풍당당했던 어필 현판(복각본)이 휑뎅그렁하게 초라한 모습으로 걸려 있다. 저 현판을 새로운 사당에 걸어야 올바른 추모의 예를 다하는 것이 아닌가? 조선시대의 공신(功臣)에게 조선시대 최고의 영예로움으로 추모하는 임금의 친필 현판이니 말이다.

무거운 발걸음을 유물전시관으로 옮긴다.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과 이순신 제독에 관한 문건들을 주마간산 격으로 훑어보며 친구들과 함께 커다란 장검에 대한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전시관을 나선다. 저렇게 큰 칼을 직접 휘둘러서 적을 벨 수 있는가에 대한 각자의 견해로 설왕설래하며 바람에 날리는 비에 젖은 단풍잎의 스산함을 밟으며 현충사 경내를 나선다.

공자는 "예란 그 사치스러움 보다는 차라리 검소한 것이 낫다(禮與其奢也寧儉)"고 했다. 겉치레만 번드르르하게 치장하여 허장성세(虛張聲勢)만 부리던 행위는 이제 그만 두자. 추모의 공간이라 엄숙하며 공경하는 예의의 자세를 갖추라고 경고문을 써 놓고 추모공간인 사당의 모습은 천박한 치장을 하고 있으니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닐 수 없다.
 
"개선할 필요 느끼지 않는다"
이에 대해 아산 현충사 관계자는 "영정 닫집은 1967년 사당을 새로 지을 때부터 있었고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며 "왜 불교식으로 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특별히 개선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충사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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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잘못된 것에 분노하고 옳은 일에 박수칠 줄 알며 세상의 어려운 사람에게 훈훈한 인정을 주고 싶은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중년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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