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선교사들은 서울을 '버섯 마을'이라 불렀죠"

목포와 신안군 섬마을의 목회자 부부 동반 서울 나들이 여행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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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권(minjumam12)등록 2018.10.30 17:48

서울 나들이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 권성권

지지향(紙之鄕) 2층에서 정갈한 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세 번째 세미나 장소인 은평교회로 이동했습니다. 그 교회 예배당 안에 들어갔는데 벌써부터 새로 부임한 유승대 목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분은 새벽이슬교회를 개척하여 13년간 섬겼고, 포항성결교회를 11년 8개월 섬겼고, 이후 남은 14년의 목회 여정을 은평교회에 헌신키로 하고 올라왔던 것입니다.
 

서울 나들이 은평교회 유승대 목사 ⓒ 권성권

사실 그 분은 서울에 대한 낯선 두려움도 있었고, 서울 사람들에 대한 낯선 이미지도 없지 않아 은평교회에 부임하는 게 적잖은 부담감으로 작용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더욱이 지방신학교 출신인 자신의 연약함, 기도와 말씀 밖에 모르는 자신의 부족함이 과연 서울 사람들에게 통할까 싶었던 것이죠.

하지만 성령님의 이끄심 속에서 서울로 올라왔는데 의외의 모습 앞에 감사했다고 합니다. 이른바 은평교회 성도들이 너무나도 순수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 것 말입니다. 자신은 그래서 은평교회의 성도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일에 충실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하죠.
 
그 세미나가 끝날 무렵 부슬부슬 가을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우리 일행을 총괄 인도하던 역촌교회 부교역자 강요한 목사와 정병훈 목사가 무척 염려하는 얼굴빛을 띠였습니다. 그 비가 멈추지 않고 연이어 퍼붓는다면 그 다음 길목에 많은 차질을 빚지 않겠나 싶었던 것이죠. 그래서 그랬을까요? 점심 식사 이후에 가려고 했던 서울 역사박물관을 먼저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그곳이 잠시나마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죠.
 

서울 나들이 오영환 목사 부부. 전남서지방 교역자회 부회장으로 섬기고 있는데, 두 분도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 권성권


1993년에 착공하여 2002년 5월 21일 개관한 '서울역사박물관'은 서울의 유물과 도시 유적들 그리고 역사가옥을 보호하고 전시하는 기관이었습니다. '육조거리'를 비롯해 조선제일의 번화가였던 '운종가' 등 조선시대의 다양한 유물을 보여주는 일종의 '도시역사박물관'이라 할 수 있죠. 이곳에는 조선왕조의 '한양'과 식민시기 '경성'을 거쳐 대한민국의 '서울'에 이르는 600년 수도의 모습을 시대별로 조명해 주고 있었습니다.       

서울 나들이 허문경 목사 부부. 그날 생일을 맞이하여 함께 축하해 줬습니다. 오래도록 행복하게 사세요. ⓒ 권성권


그곳 운종가 전시물 앞에서 어느 해설사가 우리 일행에게 그런 이야기를 곁들여 주었는데, 역사에 대한 깨우침 하나를 잔잔하게 던져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때 외국인 선교사들은 서울 동네를 보고 '버섯 마을'이라 불렀죠. 다들 볏짚을 엮어 지붕으로 얹고 살았기 때문이죠. 그 뒤에 운종가 길이 정비되고 전봇대가 놓이고 전차가 운행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차에 우리나라 아이가 치였는데, 그때 다들 몰려들어서 그 전차를 엎어버리기도 했죠.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시간 개념'이 들어온 때가 바로 그때부터였습니다."
  

서울 나들이 청와대앞 분수 공원 앞에서 ⓒ 권성권

 
서울역사박물관은 본관 말고도 도시별자리처럼 이어지는 6개의 분관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일행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점심을 먹고 곧장 청와대로 향했습니다. 청와대 기자실이 있는 건물인 '춘추관'과 청와대 정문 앞 '분수대 광장'을 지나 경복궁 북쪽 신무문 쪽을 지나는 동서로 잇는 500m 길목이었죠. 1968년 김신조 등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 뒷산까지 진출한 1·21사태 이후 그 길목을 엄격하게 제한해왔는데, 이번에 문재인 정부 들어 50년 만에 완전 개방한 것이라고 합니다.
 
 

서울 나들이 김석오 목사 부부 모습입니다. 이번 여행길에 최고령자였는데, 오래도록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 권성권

우리들은 분수대 광장과 신무문 앞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여러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그것은 우리 일행만 그런 게 아니라 수많은 관광객들도 마찬가지였죠. 거기에는 갓난아이들을 비롯해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많았고, 외국인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물론 분수대 광장 앞에는 억울한 사연을 해결해 달라며 1인 시위를 하는 이들도 한두 명 보였습니다. 그야말로 청와대 문턱이 그만큼 더 낮아지고 있다는 신호이지 않나 싶었습니다.
   
청와대 그 길목을 지나 우리 일행은 북촌 '한옥마을'을 거쳐 '삼청동' 골목길, 그리고 '인사동' 쌈지길까지 쭉 걸어갔습니다. 걷는 동안 삼삼오오 부부가 짝을 이루며 여러 옷 가게와 골동품을 둘러보기도 했고, 싱글로 온 분들은 각자 아내의 귀걸이와 스카프를 하나씩 구입하기도 했고, 어떤 분은 자기 아내의 사진을 화가에게 주면서 부부사진으로 된 캐리커쳐를 하나 그려달라고 했습니다. 그 길목 끝 지하에 있는 '계절밥상'에서 우리들은 푸짐한 저녁만찬을 즐겼습니다.
 

서울 나들이 양성택 목사 부부. 오래도록 간직할 사진을 부탁했는데, 잘 나오지 않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앞으로는 떨어지지 않도록 손 놓지 말고 다니시고,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 권성권


둘째 날 저녁 마지막 코스인 홍대 앞 근처의 '난타 공연' 소극장으로 이동했습니다. 난타 공연은 칼과 도마 등의 주방기구에 리듬을 입히고 스토리를 더해 멋진 생명을 불어넣은 작품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중국인과 일본인은 물론 미국인과 독일인 관광객들까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난타는 그만큼 국적을 불문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신나게 즐길 수 있는 파워풀한 공연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때 가장 크게 웃고 즐겁게 소리쳤던 분이 암태중앙교회 정석희 목사의 아내 황혜정 씨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난타공연을 관람한 우리들은 드디어 마지막 날 밤을 보내기 위해 지지향으로 출발했습니다. 그 때 버스에 오르기까지 그날 걸었던 발걸음이 무려 일만 보 이상은 된다고 이야기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다들 지쳐 보인다며 동조했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첫날 저녁에는 밤늦게까지 책도 보고 이야기꽃도 피우고 심지어 통닭도 시켜 먹던 분들이 그날 밤은 아주 조용한 침묵의 밤을 보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서울 나들이 북촌 김장주 목사 부부 ⓒ 권성권

 
이제 마지막 셋째 날이 되었습니다. 그날 오전에 중앙교회 한기채 목사의 세미나 한 타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마음만은 다들 목포나 신안 섬마을의 교회에 가 있었겠죠. 특별히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4시 배를 송공항에서 타야만 했습니다. 12월에 개통예정인 새천년대교가 아직까지는 열리지 않아 배 시간에 다들 발이 묶인 상태라 그렇게 조마조마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일행의 마음을 알아줬던 것일까요? 중앙교회 한기채 목사는 우리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다음 기회에 목포에 직접 내려와 세미나를 섬겨주기로 연락해 왔던 것입니다. 그 순간 다들 큰 소리는 지르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환호했고, 그때부터 목포로 내려오는 발걸음은 더없이 가벼워졌습니다.
  

서울 나들이 난타 공연 소극장에서 ⓒ 권성권

 
모름지기 여행이란 어떤 길목을 향해 떠나는가보다 누구와 함께 떠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마음이 편해야 여행도 즐거운 법이란 뜻이겠죠. 더욱이 장소보다도 그 장소에 담긴 뜻을 되새김질 하는 것이 여행의 진면목이라고 하죠. 곳곳을 누비고 다녔는데도 그 속에서 주는 의미를 캐내지 못한다면 어찌 뜻깊은 여행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뜻에서 볼 때 이번 여행길은 평소 잘 알지 못하는 분들과 사귈 수 있어서 좋았고, 부부지간에 멋진 장소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담을 수 있어서 좋았고, 곳곳의 길목마다 생명을 불어넣는 그 소중한 의미들을 되새길 수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아무쪼록 목포 소도시 시내와 신안군 섬마을 목회자 부부에게 그 모든 길목을 섬기고 베풀어 준 서울지역 4개 교회에게 한없이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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