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에서 만난 작은 게들의 행진

호주 동해안 여행기(7)

등록 2018.11.07 14:45수정 2018.11.0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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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과 활력이 넘쳐나는 에일리 비치(Airlie Beach)에서 게으름을 피우며 이틀 더 머문다.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하던 젊은 시절은 지났다. 퇴직한 삶이다.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인생 황혼기에 찾아온 특권을 마음껏 누린다.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 미숀 비치(Mission Beach)를 향해 떠난다. 미숀 비치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케인즈(Cairnes)라는 큰 도시가 있다. 그러나 큰 도시는 피하고 싶다. 따라서 미숀 비치까지만 가기로 했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니 509km 떨어져 있으며 5시간 57분 걸린다는 정보가 나온다. 하루에 운전하기에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다.

고속도로를 운전하며 목적지로 향한다. 호주를 한 바퀴 도는 1번 도로다. 예전에 1번 고속도로만 따라 호주 여행을 하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직도 그 꿈을 간직하고 있다. 꿈을 간직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사탕수수가 빼곡하게 들어찬 도로를 운전한다. 한쪽에서는 수확하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싹이 돋아나고 있다. 수확한 사탕수수를 수십 대의 작은 화물칸에 싣고 가는 기차도 보인다. 선로 길이도 보통 기차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다.

가는 길에 보웬(Bowen)에 잠시 들렀다. 바닷가에 있는 작은 동네다. 어촌이지만 토마토나 고추 등의 농작물을 키우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따라서 세계에서 온 젊은 여행자들이 머물며 농사를 돕고 용돈을 버는 곳이기도 하다.

동네 한복판을 지나니 선착장이 나온다. 선착장에서 처음 시선을 끄는 것은 대형 조형물로 만든 망고다. 망고 농사도 많이 짓는 것 같다. 망고 수확 철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평소에 좋아하는 망고 생각을 생각하니 침이 절로 돈다.
 

작은 게들이 떼를 이루어 갯벌을 누비고 있다. 군인 게(Soldier crab)라고도 부른다. ⓒ 이강진


 
선착장으로 발을 옮기니 작은 벌레 같이 생긴 것들이 갯벌을 덮고 있다. 자세히 보니 손톱크기 만한 작은 게들이다. 모양이 동그랗고 크기도 아주 작은 처음 보는 게들이다. 숫자가 많아 귀를 기울이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희귀한 광경에 한동안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선착장을 걷는다. 오래된 긴 선착장이다. 천천히 걸으며 여유를 즐긴다. 선착장을 걷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선착장 끝까지 가니 널찍한 벤치가 있다. 생선 손질할 수 있는 시설은 물론 쓰레기통까지 마련된 낚시하기 좋은 장소다. 낚싯대를 깊은 바다에 드리우고 대어를 기다리는 강태공이 여럿 보인다.

선착장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한국말이 들린다. 청년 둘이 갯벌에 깔린 작은 게들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곳에서 잠시 농사일을 돕고 있는 여행자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오지에서도 한국 사람을 자주 만나기 때문에 특별한 반가움을 나타내기가 쑥스럽다.

동네를 천천히 자동차로 한 바퀴 돌아본 후 길을 떠난다. 지평선이 보이는 광활한 평야가 펼쳐진다. 호주 땅덩어리가 크다는 것을 또다시 실감한다. 황량한 벌판을 조금은 지루하게 달린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쉬기도 하면서 오랜 시간 운전했다.

얼마나 운전했을까, 도로변에 악어 동상이 보인다. 캥거루, 코알라와 함께 호주를 대표하는 악어 동물원(?)이다. 입구에는 악어에게 먹이 주는 시간표도 있다. 악어가 출현하는 따뜻한 지방까지 온 것이다.

이곳에서 목적지 미숀 비치까지는 멀지 않다. 해안을 중심으로 조성된 예쁜 동네가 자주 보이기 시작한다. 주위 풍경을 즐기며 느긋하게 운전한다. 커다란 주택 단지를 조성하는 곳도 있다. 경치 좋은 해안가 외진 동네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한편으로는 무엇을 하며 생활을 지탱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미숀비치에는 카소워리(Cassowary)가 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미숀 비치로 가는 국도에 들어선다. 잘 닦여진 이차선 도로다. 호주 국도를 운전하다 보면 캥거루를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많다. 그러나 이곳에는 캥거루 대신 카소워리(Cassowary)를 조심하라는 큼지막한 표지판이 자주 보인다. 타조처럼 덩치가 큰 칠면조 비슷하게 생긴 조류다.

바닷가에 있는 숙소에 짐을 풀고 자동차로 주위를 돌아본다. 해안 도로변에는 휴양객에게 빌려주는 크고 작은 집들이 즐비하다. 야영장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캠핑차가 들어차 있다. 바다를 마주한 카페에서는 관광객들이 한가하게 차를 마시며 바다를 즐기고 있다.

동네 중심가를 가본다. 식당을 비롯해 휴양객을 유혹하는 가게가 즐비하다. 스카이다이버를 광고하는 가게도 있다. 해변 입구에는 젊은 여자가 말을 세워두고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백사장에서 말을 타는 것도 이색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일 년 내내 따뜻한 곳이다. 끝없는 모래사장이 끝없는 펼쳐진 곳이다. 휴양지로 손색이 없다.

하루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숙소에서 나와 길 건너편에 있는 백사장을 맨발로 걷는다. 하루를 끝내고 백사장을 걷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밟히는 모래 촉감이 좋다. 종아리를 적시는 바닷물이 상쾌함을 더해준다.

백사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부부와 몇 마디 나눈다. 남쪽 지방, 호주에서는 춥다고 하는 빅토리아(Victoria)주에 사는 사람이다. 퇴직한 후 지금은 작은 캐러밴을 끌고 여행하는 중이라고 한다. 바쁜 삶을 뒤로하고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이다.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풍요롭게 사는 사람과 백사장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해안에서 관광객에게 승마 경험을 제공하는 아가씨 ⓒ 이강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호주 동포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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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호주 연방 공무원, 외국인 학교 교사 (베트남, 타일랜드). 지금은 시드니에서 3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바닷가 시골에서 퇴직 생활. 호주 여행과 시골의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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