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 때문에 힘든 이유, 호르몬 때문이다

[서평] 앨릭스 코브 '우울할 땐 뇌과학'

등록 2018.11.06 08:15수정 2018.11.06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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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재기발랄한 이 책은, 우울증에 대항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뇌과학적 증거와 함께 제시한다. 우울하지 않다고 해서 이 책을 멀리할 이유도 없다. 좋은 습관을 만들고 행복감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는 조언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우울증의 가장 큰 문제는 하강 나선, 즉, 악순환의 고리다. 악순환이 존재한다는 말은, 그 반대 방향으로 고리를 돌려 선순환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운동을 하면 잠을 푹 자게 되고, 수면의 질이 좋아지면 통증이 줄어들며, 통증이 줄면 스트레스 수준이 완화되어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은 결정은 좋은 습관을 만들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좋은 습관은 더 나은 기분을 불러오고, 기분이 좋아지니 감사할 일이 많아진다. 모두가, 우울한 마음을 물리치고 행복한 느낌을 가져오는 것들이다.

우울증과 화학물질
 

<우울할 땐 뇌과학> 표지 ⓒ 심심

 
우울증과 관련하여 알아 둘 중요한 화학 물질은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 그리고 노르에피네프린이다. 세로토닌은 행복 호르몬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행복감과 직결되는 호르몬이다. 도파민은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강력한 의욕 고취제다. 얼마나 강력하냐고? 코카인과 필로폰의 막강한 힘은 모두 도파민의 혈중 농도를 높이는 데서 나온다.

옥시토신은 일명 사랑의 호르몬이다. 인간이건 동물이건 옥시토신은 자기 자식을 돌보게 만든다. 어렸을 때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으면 옥시토신 수용체가 증가한다고 한다. 옥시토신은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게 만드는 호르몬이다. 옥시토신은 편도체의 반응성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노르에피네프린은 투쟁-도피 반응을 지배하는 긴장 호르몬이다.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심장박동을 증가시키고 혈압을 올린다. 또한 폐활량을 늘리고 근육을 긴장시킨다. 호랑이로부터 도망갈 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주는 고마운 호르몬이다.

그런데 현대인은 호랑이 대신 직장 상사의 모습을 보고 노르에피네프린을 분비한다. 호랑이라면 도망 가서 벗어나면 그만이지만, 직장 상사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노르에피네프린에 만성 노출되어 긴장 상태 속에서 살아간다. 이것이 만성 스트레스다.
 

아무래도, 운동은 만병통치약인 것 같다 ⓒ Pixabay

 
운동은 노르에피네프린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해준다. 운동이라는 스트레스 상황에 지속해서 노출되면 스트레스에 대해 내성이 생긴다. 신체가 흥분상태로 돌입하는 것을 더 이상 비상 상황이라 판단하지 않게 되면, 뇌는 노르에피네프린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다. 이것은 실험 결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운동한 쥐는 그렇지 않은 쥐에 비해 스트레스 상황에서 노르에피네프린을 적게 분비하였다.


운동은 또한 세로토닌과 GABA의 분비량을 증가시켜 불안 상태를 줄여 준다. GABA는 뇌 혈류 개선을 통해 뇌에 산소 공급을 증가시키고 신경 안정 작용을 돕는 물질이다.

병원의 도움을 무조건 멀리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적절한 투약과 상담은 우울증에 큰 도움이 된다. 뇌 활동 관련 물질을 제어하는 약의 기제는 몇 가지로 나누어진다. 해당 물질을 많이 만들거나, 그 전구체를 만들기도 하지만, 해당 물질의 재흡수를 담당하는 수용체를 줄여 보다 많은 양의 호르몬이 활동 상태에 있도록 조장하기도 한다.

예컨대, 유명한 우울증 약인 프로작(Prozac)은 세 번째 방법을 쓴다. 프로작은 세로토닌 수용체의 수를 줄여, 시냅스에 더 많은 양의 세로토닌이 활동 상태로 남게 한다.

최종병기, 잠

잠이 부족한 것은 누구에게나 큰 고통이다. 나의 경우, 커피를 마시고도 잘 자는 것을 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그렇게 자는 잠은 잘 자는 잠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요즘에는 6시 이후로 커피를 삼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예전보다 잠의 질이 좋아진 느낌이다. 서파 수면, 즉 느린 뇌파의 잠이 충분해야 좋은 잠이다. 혈액 내 카페인 농도를 높이고 자는 습관이 서파 수면을 충분히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리가 없지 않은가.

누워 있어도 잠들지 못하는 경우, 걱정거리로 전전두엽이 안절부절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어떻게 하면 될까? 저자는 걱정거리를 머릿속에서 꺼내 글로 옮겨 두라고 조언한다.
 
걱정과 계획 세우기는 전전두피질을 활성화하기 때문에 수면에 방해가 된다. 곧 잠을 자려 하면서 걱정을 하거나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그 생각을 글로 적어보라. 머리에서 꺼내 종이에 옮겨두고 걱정과 계획은 접어두어라. (183~184쪽)

잠을 잘 자는 방법은 인터넷 뉴스에도 매일 소개된다. 요즘엔 청색광을 멀리하라는 충고가 가장 유행인 듯싶다. 잘 자는 방법에 관한 책도 많다. 허브차나 우유를 마시고, 자기 전에 과한 음식이나 운동은 피하며, 잠드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하라는 것 등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한 가지를 더해 보자. 자기 전 준비단계로 특정한 행동을 '의식'으로 만드는 것이다. 양치질, 세수, 독서, 명상 등 다양한 목록에서 한두 가지를 정해 자기 전에 규칙적으로 하면 된다.

수면 일기를 쓰는 방법도 좋다고 한다. 일기를 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경우는 데이터 확보가 목적이다. 취침과 기상 시간만 적는 것이 가장 간단한 형태이고, 일어나서 느낌이 어땠는지, 즉 수면에 점수를 매겨보고, 뭐가 문제였는지, 스트레스 수준은 어땠는지, 어떤 점이 잠에 도움이 되고 방해가 된 것으로 생각하는지를 적어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더 잠을 잘 자는 방법을 찾게 된다.

<스탠포드식 최고의 수면법>이란 책은 한 뮤지컬 가수의 사례를 소개한다. 매일 밤 늦게 끝나는 공연 때문에 그녀는 자정이 훨씬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는 환경에 있다. 많은 시행착오 결과, 그녀는 귀가 직후에 독한 술 한 잔으로 수월하게 잠들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질 좋은 잠을 쟁취하는 방법은 과연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우울증 종합 처방전
 

지금, 당신의 혈액 내에 옥시토신이 증가하는 중이다 ⓒ Pixabay


뇌에 관한 서적이 범람하게 된 배경에는 단연코 뇌 가소성이 있다. 과거의 과학 상식과는 달리, 뇌세포는 끊임없이 재생되며, 뇌의 물리적 형태는 평생에 걸쳐 변화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뇌가 바뀔 수 있다면, 그 방법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뇌를 바꾸고, 우리 자신을 바꿀 방법을 가르치겠다는 책이 넘쳐난다. 그 많은 책들 중에 왜 이 책을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실용성을 이유로 들고 싶다.

이 책은 지루하고 어려울 수 있는 과학 설명은 최소화하고, 우울증을 다스릴 실용적인 방법 제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운동과 감사하는 습관부터 바이오피드백과 전문가의 도움까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제시한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자주, 길게 포옹하라. 옥시토신이 공짜로 흘러넘칠 것이다. 그런데 포옹할 사람이 없다면? 사람들 사이에 그냥 있기라도 해보라. 커피숍이나 도서관에 가라. 대화할 필요도 없고, 물리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그냥 있기만 해도 해도 도움이 된다. 꼭 사람일 필요도 없다. 반려동물과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옥시토신이 증가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안달복달하며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대충 괜찮은 결정에 만족하라.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오래 노출될수록 스트레스는 증가한다.

자주 웃어라. 감사하라. 그리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전문가의 도움은 도구일 뿐이다. 하지만 도구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울할 땐 뇌과학 - 최신 뇌과학과 신경생물학은 우울증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앨릭스 코브 지음, 정지인 옮김,
심심, 2018


#<우울할 땐 뇌과학> #우울증 #뇌과학 #노르에피네프린 #옥시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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