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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영화는 이 영화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오래된 리뷰 141]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18.11.02 15:39최종업데이트21.03.2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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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영화의 교과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 포스터. ⓒ UPI 코리아

 
10대 때부터 영화를 만들었다는 스티븐 스필버그는 미국 할리우드 역대 최고의 감독이라고 할 만하다. 여전히 현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그라서 의외로 저평가되는 것 같은 느낌인데, 그가 '소싯적', 즉 2000년대 전에 만든(주로 감독) <죠스> < E.T. >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쥬라기 공원> 시리즈 등은 여러 가지 의미로 전설의 반열에 올랐고 2000년 이후에 만든(제작, 기획도) 영화들은 할리우드 판을 유지하고 또 확대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할리우드 영화의 중추를 세우고, 기록을 세우고, 판을 지탱하고, 판을 확대하는 수순으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래서 그의 유명한 영화들, 그중에서도 특히 2000년대 전에 나온 영화들은 여러 장르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을 세웠다. 초창기의 SF, 판타지, 어드벤처, 공포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여기 21세기 바로 직전에 내놓았음에도 기념비적인 업적 또는 기틀을 세운 영화가 있다. 전쟁 영화, 정확히는 제2차 세계대전 영화의 교과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다. 

영화란 이런 것이다!
 

영화란 이런 것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한 장면. ⓒ UPI 코리아

 
1944년 6월 6일 일명 'D-DAY'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가장 치열한 곳 오마하 해변에 상륙한 미 육군 레인저 부대 소속 밀러 대위(톰 행크스 분)와 대원들. 수천 명이 죽어나간 그곳에서 살아남은 그들은 상부로부터 특별하고 특수한 작전을 하달받는다. 이 전쟁에 '라이언 가' 4형제가 출전해 3형제가 전사하고 막내인 제임스 라이언 일병(멧 데이먼 분)만 생존한 상황에서 그를 구해 집으로 돌려보내는 임무였다. 

하지만 라이언은 101공수사단 소속으로, 적지 한가운데나 마찬가지인 프랑스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 알 뿐 자세한 건 알 수가 없다. 밀러를 대장으로 한 8명의 '라이언 일병 구출 부대'는 오직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여정을 떠나야 한다. 

최상부의 절대적인 명령, 대원들의 불평불만, 대장과 부대장의 라이언을 향한 의심 등이 한데 뒤엉킨 이 여정은 성공할 수 있을까. 와중에 미군의 궁극적 목표인 '승전'을 위해서도 그들은 행동해야 한다. 그것만이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다...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빈틈없는 전투, 여정이 함께 하는 서사를 통해 생각해보게 되는 '전쟁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본격적이고 치열한 질문과 생각들이 쉼없이 우리를 덮친다. 그리고 우린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영화란 이런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영화의 새로운 시작
 

제2차 세계대전 영화의 새로운 시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한 장면. ⓒ UPI 코리아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제작되어 나온 건 1998년, 올해로 20주년이다. 지금이야 전쟁영화 하면, 최근 개봉했던 <덩케르크> <다키스트 아워> <헥소 고지> 등을 봐도 알 수 있듯 베트남전쟁보단 제2차 세계대전이 주류지만 20세기까지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미국에게 제2차 세계대전은 '행복'한 기억일 테지만, 베트남전쟁은 '불행'한 기억일 테다. 할리우드는 실로 오래전부터, 즉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오래지 않아서부터 기억해왔다. 다만, 대체적으로 반성하는 방식으로. 그래서일까. 전쟁이라는 장르를 떠나 명작이 많다. <택시 드라이버> <지옥의 묵시록> <디어 헌터> <플래툰> <풀 메탈 자켓> <햄버거 힐>... 하다 못해 <람보> 시리즈까지. 

그런 조류를 스티븐 스필버그가 완전히 바꿔버린다. 무차별적으로 사람이 죽어가는 전장에서 사람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인본주의'를 앞세우면서도, 폭발적인 블록버스터 개념을 끌어들여 전장에 와 있는 느낌이 들게 하는 '리얼리즘'을 추구했다. 기존과 아예 다른 차원인 것이다. 동시대에 나온 또 다른 제2차 세계대전 명화 <신 레드 라인>이 보여준 '전쟁으로 철학하기'와는 결이 다르다 하겠다. 

이후, 무사히(?) 세기말을 보내고 2000년대 초반 제2차 세계대전 영화들이 쏟아진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 <진주만> <윈드토커> 등. 그리고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까지. '생각하는' 장르에서 '보는' 장르로의 선회, 전쟁영화 장르의 새로운 장이 열렸고 지금도 제2차 세계대전 영화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전쟁을 바라보는 미국의 입장에서만큼,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구세주와 같다. 오랫동안 앓던 이를 빼고 임프란트를 박았다기보다, 오랫동안 콤플렉스였던 듬성듬성한 머리에 다른 곳의 털을 옮겨 심었다고 할까. 그 기억, 베트남전쟁의 기억을 완전히 지울 수도 또 지워서도 안 되기에.

인간. 인간? 인간!
 

인간. 인간? 인간!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한 장면. ⓒ UPI 코리아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영화 역사상 가장 강렬한 오프닝으로 손꼽힌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20년 동안 몇 번이나 봐왔지만, 여전히 전율에 몸을 떤다.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어서, 총과 대포가 빗발치고 사방에서 온갖 종류의 비명이 들리는 와중에 팔다리가 날아가고 내장이 쏟아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며 영화는 전쟁을 통해서만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아이러니함을 보여준다. 고작 라이언 일병 하나를 구하기 위해 특공대 소속 대원 8명이 적진을 통과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그 이면에는 한 명의 사람이 해낼 수 있는, 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돕고 살리는 삶의 존재가 있다. 결국은 그 사람 한 명으로 대표되는 인간 본연의 환원, 인간을 향한 무한대의 믿음이다. 

한편, 8명의 대원 중에는 겁쟁이 업햄이 있는데 그는 아군을 죽인 적군조차 항복했으면 살려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전장에서는 순진하기 짝이 없지만, 평시에는 그도 군인이 아니었을 터. 당연하다는 생각 이전에 순진이고 뭐고 성립조차 되지 않는 생각이다. 업햄의 생각 자체가 아이러니라는 점과 함께, 적군을 살려보내줘야 한다는 아이러니와 그 적군이 다시금 아군을 죽이러 오게 되는 아이러니가 함께 한다. 

전쟁에서는 인간적이고 싶은 이도, 인간이기를 포기한 이도,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도 모두 빨아들여 갈아버린다. 영화는 그 와중에도 인간에 대한 나름의 신념을 실천하는 업햄, 그리고 밀러 대위를 통해 인본주의를 외친다. 열광이나 내세움이 아닌, 생존과 도움의 외침이다. 여기 죽어가는 인간, 살고 싶은 인간, 살게 된 인간이 있다고 말이다. 그들 모두 최선을 다해 치열하게 살았다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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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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