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껏 박수 치고 싶은 '29금 에세이'

[리뷰] 정새난슬 글, 그림 '러키 서른 쎄븐'

등록 2018.11.06 08:36수정 2018.11.0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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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둘을 키우며 바쁘게 사는 친구가 어느 날 생뚱맞은 고백을 해왔다. 그간 미안했다고. 아무런 서운함도 느낀 적 없는 나로서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데, 친구가 이어 말했다. 

"한동안 출산과 육아를 해보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 뭐야. 아이 키운다고 다 성불하는 것도 아닌데 말야. 무슨 경험을 하든 뭘 느끼거나 성장하는 건 다 사람 나름인 것 같아." 

예상치 못한 말에 나도 웃고, 친구도 웃었다. 출산과 육아가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성장시키는 큰 토대가 된다고 믿지만,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것에 나 역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보니 최근, 조금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처음 만난 나보다 두세 살 많은 비혼의 여인이 내게 말했다. 

"결혼을 했는데 아이를 왜 안 낳아요? 결혼을 안 했으면 모를까, 했으면 낳아야 하지 않아요?" 

가슴이 답답해졌다. 질문의 형식을 띤 강요, 처음 듣는 말은 아니다. 얼마간은 익숙할 정도다. 그러나 그녀로부터 듣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그녀 삶의 형태가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녀는 내게 호기심을 넘어선 의도를 드러내야만 했을까. 

우리, 서로의 삶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될까. 꼭 모두가 똑같은 삶의 형태를 취해야만 행복한 걸까. 같은 것은 같아서, 다른 것은 달라서, 그래서 덜 경쟁하며 더욱 조화롭게 살 수는 없는 걸까. 
 

<러키 서른 쎄븐> 책표지 ⓒ 한겨레출판


  
이런 생각을 하던 중 펼친 책이 정새난슬의 <러키 서른 쎄븐>이다. 발랄한 표지에 유쾌함만 기대했건만, 그 이상이 담겼다. '29금 본격 서른 후반 에세이'를 표방하는 책, 나로선 때마침 잘 만난 동지와도 같다. 덕분에 웃고 울었다.

중년이나 노년이라면 몰라도, 어중간한 삼십대 후반의 자신은 상상해 보지 못했다며 저자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드는 나이였다고. 아니나 다를까 삼십대 중반부터 온갖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결혼, 출산, 그리고 이혼. 

사람들은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기도 한다. 슬픈 이야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는 다 끝난 이별이고 매듭지은 감정이기에 '이혼 농담'을 하면 했지, 슬픈 표정에 맞장구 칠 생각이 없다. 물론 비밀로 할 생각도 없다.
 
"나는 사랑했었던 사람과 헤어졌을 뿐,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혼을 숨길 이유가 없다. 엄숙히 금지할수록 이혼이란 단어는 내 안에서 더 높이 솟구칠 뿐이다. 이혼은 나를 구성하는 인생 경험 중 하나일 뿐이지, 침묵으로 지킬 비밀이 아니지 않은가."(pp56-57)

그녀의 당당함에 기분이 유쾌해진다. 과장되게 법석을 떨면 오히려 실례가 될까 염려되지만, 그럼에도 힘껏 박수 치고 싶은 기분. 일어나 외치고 싶다. 제 삶에 충실한 모든 이들이여, 부디 당당하자고. 당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든, 나는 그대들을 응원한다고. 

1부가 '사랑의 전장, 전격 후퇴하다'란 제목으로 이혼 후의 삶을 말한다면, 2부는 '평판 나쁜 엄마'로, 육아에 관련된 이야기다. '겸손의 탈을 쓴 비겁함' 같은 건 일절 없이, 꼬이지 않은 순수한 자기 자랑을 하는 아이를 상상하며 몇 번이나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 모성애는 신성함 그 자체!"(p93)라고 말을 꺼낼 땐 화들짝 놀랐으나, 역시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 그녀는 모성 신화를 헛웃음 나는 이야기라고 딱 잘라 말한다. '당연한 희생'을 강요하며 여성을 퇴로 없는 길 위에 몰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다른 길을 택한다.
 
"나는 다 자란 딸에게 엄마로서의 희생을 이야기하는 대신 내가 겪은 진실, 여성이 살아온 현실을 알려주고 싶다."(p96)

3부의 제목은 '그들은 나를 모른다'. 여러 주제를 망라한 그녀 자신의 이야기다. 막연히 꿈꾸는 '속물 여행', 못생긴 손, 로또 등 그녀만의 고찰이 담겼다. 책을 끝맺는 마지막 장은 은근한 반전이다. 그녀 역시 타인을 알지 못했다는 뭉클한 고백. 마지막 문장은 나 역시 사람들에게 건네고 싶다.
 
"상대를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교만이나 권력, 무지 자체가 악의인지도 모른다.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선행되지 않은 호의는 '베푸는 자'의 자위일 뿐이다."(p275)
"당신을 다시 알고 싶어요. 성급한 마음이 저지른 일들을 용서해주세요."(p276)

책을 보며 진심을 다해 그녀를 응원했다.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건네는 근사한 이, 반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또한,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모두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지로서의 순수한 연대의식을 담아. 

응원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나는 다른 이들을 응원했을 뿐인데, 든든한 지원군이 내 곁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시시각각 나는 외로울테지만, 지금 이순간의 나는 결코 외롭지 않다. 

독특한 제목, <러키 서른 쎄븐>에 꼭 어울리는 구절을 옮기며 글을 맺는다.
 
"삶을 살아가기에 불길한 나이는 없다. 서른 후반은 바람 빠진 튜브가 아닌 구명보트다. 스스로를  추스릴 수 있는 힘좋은 시절이다. 앞으로도 내게는 좋은 일, 나쁜 일, 그저 그런 일들이 많이 생길 것이다. 마음의 날씨를 종잡을 수 없고, 스스로가 혹평당하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느껴질 때마다, 나는 이 운 좋은 나이를 떠올릴 것이다. 나의 구명보트에 누워 온전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릴 것이다."(p7,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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