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대학생 '주거공동체', 면접으로 거주자 선발

[독일 대학도시를 가다3] 괴팅겐통합학교 학부모 허수미 인터뷰 (2)

등록 2018.11.05 08:32수정 2018.11.0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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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과밀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아파트값도 폭등하니 서울의 대학과 기업체, 관공서를 지방으로 분산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독일엔 역사가 깊은 대학도시가 있다. 특정 도시에만 대학이 몰려 있지 않고 대부분 지방 소도시에 분산돼 있다. 대학도시에서 "대학이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면 난감해 할 수도 있다. 대학이 도시 안에 있는지, 도시가 대학 안에 있는지 쉽게 구분되지 않기도 한다. 하이델베르크, 괴팅겐, 튀빙엔, 마부르크가 대표적인 대학도시다. 대학도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몇 차례로 나누어 들어본다. - 기자 말
 

"괴팅겐은 대학도시" 괴팅겐 교민 허수미 씨는 "한국에 대학도시를 만드는 일이 만만치 않을 거라고 잘라 말했다. ⓒ 신향식

 
"인구를 분산시키자는 주장에는 찬성합니다. 하지만 한국 문화 특성상 대학도시를 쉽고 빠르게 건설하고 그에 맞는 문화를 갑자기 형성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괴팅겐 교민이자 '괴팅겐통합학교' 학부모인 허수미씨는 한국에 대학도시를 만드는 일이 만만치 않을 거라고 잘라 말했다. 허씨는 "독일 대학들은 (사립대학이 많은) 한국과 달리 모두 국립"이라면서 "그 차이가 주는 문화적, 정책적 방향도 다를 것"이라고 밝혔다.

"겉으로 보이는 점이 좋다고 하여 섣불리 (독일 대학도시의 모델을) 도입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독일에 대학도시들이 형성되고, 이 도시들이 인구분산에 기여할 수 있었던 전통과 뿌리, 환경을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서두르지 않고 한국 문화에 맞게 서서히 변화를 실행해 가는 것이 좋겠지요."
 

허씨는 "독일은 매우 오래된 지방자치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면서 "그것이 각 도시나 지역의 특징과 개성으로 자리 잡았다"고 밝혔다. 그는 "독일에선 어느 대학이 최고다, 좋다 하는 서열이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면서 "도시별로 어떤 학문이나 학과가 좋다거나 유명하다거나 하는 사례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평준화되었다"고 말했다.

허수미씨에게 독일 대학도시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4월 괴팅겐에서 만나 인터뷰를 하였고 최근까지 이메일로 추가 취재를 하였다. 다음은 문답 전문.

"대학 건물들이 학과나 분야별로 도시 곳곳에 분산"
  

괴팅겐 시내 풍경 대학도시 괴팅겐 시내 풍경 ⓒ 신향식

 
- 대학도시 분위기가 궁금합니다.
"(많은 대학 도시들을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괴팅겐만 이야기하자면) 도시 자체가 대학의 학사나 방학 일정에 따라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괴팅겐은 대학 건물들이 학과나 분야별로 곳곳에 분산돼 있습니다. 대학과 도시가 마치 하나인 듯 서로 열려 있고 어우러지며 소통하는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대학 교정과 일상 도시 공간에 담장이 없다고 할 수 있지요."

- 유서 깊은 건물도 많다면서요.
"괴팅겐엔 약 4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습니다. 전쟁 중에도 크게 파손되지 않은 도시여서 400년이나 된 건물도 아직 있습니다. 거리의 많은 건물 외벽에 유명 학자들의 이름과 머물렀던 시기 등이 적혀 있어 그 역사를 가늠하게 합니다. 또, 거리와 공원 등의 이름이 저명한 작가들과 학자, 음악가들의 이름들로 되어 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저절로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만큼 그들을 향한 존경과 인정을 느낄 수 있겠지요."

- 독일에서 인구 분산 정책이 잘 시행되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학생들이 대학 때문에 서울로 많이 몰린다고 해서 지나치게 집값이 오르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독일에서도 물론 대도시나 관광도시는 집값이나 월세가 소도시에 비해 비싼 편입니다. 대학 도시도 매년 조금씩 집세와 물가가 오릅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주거 공동체는 큰 폭으로 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주거형 건물이나 개인 주택들은 투기 방지를 위한 장치가 있습니다. 세입자 보호정책도 있어서 집주인이 바뀌지 않는 한 월세를 마음대로 올릴 수가 없습니다. 아주 예외적인 이유 없이는 세입자를 나가라고 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일자리 창출과 균등한 교육 기회 있어야 진정한 인구분산 가능"
 

괴팅겐 도서관 독일 괴팅겐대학교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자료를 대여하는 장면. ⓒ 신향식

 
- 그렇다면 한국에서 인구 분산을 위해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대학이 어느 도시에 들어서면 분명 그에 필요한 인력들이 보충되므로 인구 분산 효과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교육이 백년지대계라고 했듯이, 대학도시 계획 역시 백년 이상의 장기 계획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서울의 명문 대학들을 지방으로 옮겨 대학 도시를 만들자는 아이디어에 일단 동의하지만) 그 효과를 당장 보기는 힘들 겁니다. 그 과정에서 부동산 관련 거품이 발생하는 등 과거 문제가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방지하려면 되도록 대학도시 공동체 전통을 만든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해야겠지요."

- 한국은 수도권 집중인구를 지방으로 분산하는 게 현안입니다만.
"제가 한국을 떠나오기 15년 전에도 그 이야기는 중요한 논의거리였습니다. 오랜 시간 이를 고민하고, 필요성을 느낀다면 정말 작은 일부터라도 시작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뻔한 이야기지만 인구분산 방안이란 결국 일자리 창출과 교육의 균등한 기회가 아닐까요."


- 독일에 이러한 모범 사례가 있나요?
"괴팅겐에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대학, 병원, 학교, 막스플랑크 연구소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중 외국인들도 많이 포함돼 있지요. 그 외에 참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 혹은 근방에서 태어나 자라고, 결혼하고 일을 합니다. 평생을 이 지역에서 거주한 사례도 많습니다. 굳이 다른 대도시나 다른 나라를 가지 않아도 이 도시에서 먹고 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대학을 가기 위해서라거나 이 도시에 없는 직업교육을 받기 위해 다른 도시로 떠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도시에서 복지 혜택을 받고 직업 교육을 받을 수 있으므로 토박이로 살아가는 걸로 보입니다."

"시골과 중소도시도 질 높은 삶 누릴 수 있는 공적 인프라 구축"
  

괴팅겐 거리 풍경 대학도시로 유명한 독일 괴팅겐 거리 풍경. ⓒ 신향식

 
- 한국에선 젊은이들이 도시로 몰려듭니다만 유럽에선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물론 대도시에서 더 많은 일자리와 문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은 한국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작은 시골 동네나 중소도시나 질 높은 삶을 누릴 수 있는 공적 인프라 구축이 잘 되어 있습니다. 도로와 건물이 정갈한 것은 물론 학교와 체육 및 문화시설도 인구 규모를 바탕으로 균등하게 구비되어 있는 편입니다."

- 도시나 시골이나 차이가 없는 거군요.
"같은 지역, 같은 국가 공동체라면 서로 인정한 한 울타리에 사는 겁니다. 그렇다면 기본적인 삶의 질을 공동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이 있는 셈입니다. 일상생활에서 권리와 의무가 공평하게 이행되는 건데 한국도 이러한 대의를 공유하면 좋겠습니다. 이에 동의하는 과정에서 인구 분산, 지역 간 격차해소 등의 성과를 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 주민 프로그램이 있나요?
"대학 주최로 주민 활용 프로그램을 적극 운영합니다. 예를 들면 어린이 대학(Kinder Uni)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두 번 엽니다. 학과나 분야별로 대학에서 강의하듯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하고 발표도 하고 실험도 합니다. 때론 거의 100명이 넘는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이 관심 분야에 신청합니다."

"버스, 기차, 기숙사, 빵집, 운동기관 등 학생 할인 일반화"
 

"자전거 활용" 괴팅겐대학교 학생들은 학교와 주거지를 오갈 때 주로 자전거를 활용한다. ⓒ 신향식

 
- 참여한 경험이 있는지요?
"아들과 여러 번 어린이 대학 프로그램에 방문했습니다. 실제 교수님들의 강의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아이들도 진지하게 듣습니다. 평소 경험하기 어려운 다양한 전공 프로그램입니다."

-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시지요.
"1년에 한 차례 '학문의 밤'(Nacht des Wissens)이 전공별 대학건물과 대학병원, 그리고 5개의 막스플랑크 연구원들에서 하루 동안 열립니다. 이른 오후부터 학과나 학문별로 안내와 소개, 세미나, 영화 상영, 실험 등 다채롭게 진행됩니다. 유치원생부터 일반인까지 수준과 관심에 맞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1개월 전부터 일정을 공지하고 셔틀버스도 운행합니다. 아이들은 일찌감치 다양한 학문과 대학 문화를 경험하고 친숙해집니다."

- 주민들에게 또 어떤 혜택이 있을까요?
"학생 할인이 일반적입니다. 버스, 기차, 기숙사, 빵집, 운동기관 등 액수가 크든 작든 학생 할인이 많습니다. 학생들을 배려하는 문화가 있는 겁니다. 학생들의 주거형태는 다양합니다. 신입생들이 집을 구하지 못해 주거난을 겪기도 합니다. 매년 월세가 오르기도 하지요. 물론 터무니없이 비싸지는 않습니다. 아래 소개된 주거 공동체를 기준으로 보면, 4~5명이 함께 할 때 세금 포함해 200~250 유로(한화 26~32만원) 정도로 가능합니다."

"대학 입학 뒤 부모에게서 경제적 독립을 하는 건 오래된 문화"
  

대학교정인지 주거지인지 대학도시 괴팅겐을 거닐다보면 대학 교정인지 주거지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지역이 많다. ⓒ 신향식

 
- 학생들의 주거 형태를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기숙사는, 입주 신청서를 내고 1년 정도 기다리곤 합니다. 그 외에 네다섯 명이 한 집에 모여 사는 주거공동체(WG, Wohngemeinschaft)를 선호합니다. 남녀가 함께 사용하는 아파트, 남자 혹은 여자만 가능한 전통적인 주거 공동체, 정치 성향이 같은 학생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공동체 등 다양합니다. 입주 신청 뒤 정해진 일정에 방문하여 기존 주거자들과 면담하고 합격해야 주거공동체에 입주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학기 중에 갑자기 한 사람이 떠나면 대체자를 찾기도 합니다. 그래야 분담 비용이 줄어드니까요."

- 주거공동체의 장점으로 어떤 점이 있을까요?
"욕실과 부엌을 함께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렴하고 또래들과 친분을 나누며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지요."

- 대학에 가면 부모와 독립하는 학생들도 많다면서요?
"한 도시에 살고 있는 부모로부터도 독립하여 주거공동체에서 사는 학생들이 제법 많습니다. 월세와 생활비가 상승하다보니 부모 집에 거주하며 등하교하는 학생들도 늘었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18세가 넘고, 대학에 입학하면, 자신이 일을 하며 어느 정도 경제적 독립을 하는 것이 오래된 문화입니다. 월 450유로(한화 57만원)의 수입까지는 세금을 안내도 되므로 주당 15시간 이내 일을 하며 학업을 병행하곤 합니다."

"주거비, 생활비가 한국에 비해 크게 비싸지 않아"
  

일광욕 햇볕이 잘 드는 날의 괴팅겐대학교 풍경. 햋볕을 쏘이기 위해 실외로 나오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 신향식

 
-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업과 병행하는 사례가 많습니다만.
"한국에서도 학생들이 알바를 많이 하겠지요. 그래도 부모와 한 도시에 살면서도 경제적으로나 생활적으로나 독립해서 지내는 사례는 드물 겁니다. 독일에서 자녀가 독립할 수 있는 이유는 주거비용이나 생활비가 한국에 비해 크게 비싸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음식은 주로 해 먹거나 학교 식당에서 해결합니다. 교통수단도 주로 자전거나 버스, 도보로 이동 가능합니다. 물론, 주말이나 주중에 하루 정도는 부모에게 돌아가 함께 식사도 하고 외출도 하며 가족의 유대관계를 이어갑니다. 물론 이것은 괴팅겐의 사례이고 베를린이나 프랑크푸르트 등 큰 도시에서는 상황이 다를 수 있습니다."
#대학도시 #괴팅겐 #독일 #교육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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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글을 씀.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서울시립대, 인덕대 등서 강의.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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