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파키스탄이 더 낯설다" 고3 사라칸이 꿈꾸는 한국사회

[인터뷰] 한국이 모국과도 같은 사라칸, 취업 어려워 대학진학으로 우회

등록 2018.11.06 15:22수정 2018.11.0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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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고3인 사라칸(Sara Khan, 여)은 여느 한국 청소년들과 다를 바가 없다. 인생과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은 청소년이다. 특별히 다른 것이 있다면 그의 국적이 한국이 아닌 파키스탄이고, 피부색이 약간 다르다는 점뿐이다.

4살 때 파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이민을 온 이후 만 15년을 충남 천안시에서만 살았다. 국적과 관계없이 그의 고향은 사실상 천안인 셈이다. 유창한 한국어 실력 때문인지 그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외국인이야, 아빠가 외국인이야?"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사라칸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외국인이다.

아버지는 파키스탄, 어머니는 파키스탄과 분쟁 중인 카슈미르 출신이다. 카슈미르는 캐시미어의 유래가 된 곳이기도 하다. 사라칸은 한국에 이주해온 외국인 다문화 가정 출신인 것이다. 다행히도 사라칸은 한국생활에 구김살 없이 잘 적응했다. 그의 말과 행동, 진로에 대한 고민을 들어 보면 보통의 한국 청소년들과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사라칸에게 최근 적잖은 문제가 생겼다.

사라칸은 현재 사업비자로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부모님과 함께 가족동반비자(F-3)로 살고 있다. 졸업 전에 취업을 하고 싶어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상고 졸업반인데도 취업비자가 나오지 않아 취업을 하지 못했다.

사라칸은 "나는 내가 공부하기 원하는 분야의 공부만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며 "대학 진학보다는 늘 취업이 우선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라칸이 최근 대학입학을 결심한 것도 취업 문제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해서 유학비자(D-2)를 얻으면 취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외국인이어서 취업과 대학진학에도 일정 부분 제약을 받고 있는 사라칸은 긍정적인 성격 탓인지 "또 다른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며 "대학에 진학해 원하는 공부도 하고 취업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19세인 사라칸은 상고 졸업반인데도 취업 비자를 얻지 못해 취업을 하지 못했다. 대신 한국의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 이재환

 
'열린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사라칸은 인권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충남 청소년 인권동아리인 '인연'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지난 1일 사라칸이 재학 중인 충남 천안시 천안여상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 4살 때 중고차 매매상을 하는 아빠를 따라 한국에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의 기억이 남아 있나.
"오래 전 일이지만 한국에 오던 날이 기억이 난다. 엄마는 평소와 다름없이 내게 옷을 입혀 주셨다. 파키스탄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 큰아빠 등 대가족이 살았다. 다들 누군가를 마중 나오듯이 서있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렇게 큰일(한국으로 이사)이 일어날 줄 몰랐다(웃음)."


- 파키스탄에는 몇 번 정도 다녀왔나. 문화적 차이도 많이 느꼈을 것 같다.
"지난 2010년과 12년, 그리고 지난해인 2017년에 파키스탄에 다녀왔다. 지난해에는 학교를 휴학하고 6개월 동안 파키스탄에서 공부했다. 하지만 4살 때 한국에 왔고, 한국에서의 경험이 더 많아서인지 오히려 내게는 파키스탄이 더 낯설게 느껴진다. 한국 사람들은 개성이 강하고 복장도 다양하지 않나. 파키스탄 사람들은 전통 의상을 많이 입는데, 그런 문화조차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물론 나도 명절이나 행사에 참여할 때는 파키스탄 전통의상을 입곤 한다. 하지만 평소에는 잘 입지 않는다."

- 청소년 인권동아리 인연(충남청소년인권연합회)에서도 활동하고 있는데, 가입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어느 토론회에서 다문화 학생으로서의 경험에 대한 발제를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그날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신 분이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근처에 앉아 있던 한 여성분이 '이번 토론회는 첫술이 아니다. 12년째 토론 중이다'라며 반론을 제기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그 분이 대신한 것이다.

소신있게 지적하는 그 분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 여성분에게 나도 인권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분이 천안에 청소년 인권 동아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다. 덕분에 '인연'과 인연이 닿게 되었다."

대학 진학 위해 통장 잔고도 '검증'  

- 이제 졸업반인데, 구체적인 진로는 정했는지 궁금하다.
"대학에 진학하기로 했다. 경상계열이나 어문계열을 전공하고 싶다. 만약 언어 쪽을 선택한다면 중동어를 선택할 생각이다. 파키스탄어나 중동어(아랍어)는 약간 차이가 있다. 파키스탄어는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랍어는 간단한 단어를 말하고 읽을 수 있는 수준이다."

- 외국인이라서 대학진학에도 차별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상황을 설명해 달라.
"외국인이어서 차별을 받는다기 보다는 절차가 좀 더 까다로웠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한국인 학생들의 경우에는 학자금 대출도 받을 수 있고 복지가 어느 정도 활성화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나 같은 외국인 학생들은 등록금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재정 입증 능력 서류'를 통해 통장에 잔고가 얼마인지를 확인받는 것이다. 내가 입학을 원하는 대학은 통장에 2천만 원의 잔고가 있어야 한다."

- 그래도 한국에 살며 차별을 느꼈을 때가 많을 것 같은데, 어떤가.
"선생님들의 개인적인 가치관 때문에 불편했던 기억이 더러 있다. 이를 테면 나 하나만을 보고 파키스탄을 일반화해 평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선생님은 "너희 나라에서는 원래 그러니?"라는 말을 한 적도 있다. 나 하나로 국가 전체가 평가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 들고 한편으로 부담이 되기도 했다."

"한국은 내겐 모국과도 같은 나라"

- 사라칸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내게 한국은 모국과도 같다. 내게는 그만큼 익숙한 나라라는 뜻이다."

- 혹시 파키스탄과 한국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 같은 것을 경험하지는 않았나.
"초등학생 때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왕따 비슷한 것을 당했다. 그때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것 같다.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상담 선생님을 많이 찾아갔다. 그렇게 위로를 받았다. 취미생활에 몰입했던 것도 도움이 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독립심이 강했던 것 같다. 영어 공부를 좋아해서 점심시간에 원어민 선생님을 찾아가서 대화하는 것을 즐겼다. 퍼즐 맞추기나 게임도 많이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혹시 한국 국적을 취득할 생각은 없나.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방법도 알아보긴 했다. 하지만 내가 평생 이곳에서 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이 없다. 한국도 많이 변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여전히 한국은 열린 사회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파키스탄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도 아니다. 영어권의 다른 나라로 갈지도 생각해봤으나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
"통·번역 쪽이나 무역 분야의 일을 하고 싶다. 아빠가 자동차 무역업을 해서 그런지 무역업은 익숙한 느낌이 든다. 어릴 때는 아빠를 따라 폐차장도 많이 다녔다. 의뢰인에게 의뢰를 받아 의뢰인이 원하는 차를 찾고, 수출을 하는 과정이 꽤 흥미로웠다."
#사라칸 #외국인 #다문화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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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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