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08 09:28최종 업데이트 18.11.08 13:49
중국사람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정확하게 포착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중국사람 이야기>의 저자 김기동 작가가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중국 현지에서 송고되는 '김기동의 차이나 클래스'는 매월 둘째, 넷째주 목요일에 만날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수호지에서 반금련이 밥을 먹곤 했던 중국 산동성 '사자루' 건물 ⓒ 김기동

 
중국 사람이 즐겨 읽는 중국 4대기서(네 편의 소설)는 <삼국지>와 <서유기> 그리고 <수호지>와 <금병매>다. <금병매>는 <수호지>의 일부분을 줄거리로 차용했다. 그래서 <수호지>와 <금병매>에는 동일 인물이 등장한다.

이 두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반금련'이다. 두 소설에서 반금련은 소위 '부정한 여자'다. 그래서 중국사람은 지금도 여성의 행동을 비난할 때 그를 '반금련'이라고 부른다. 소설 속 가상 인물이지만 중국 사람 모두가 아는 인물이기도 한 것이다.

의미심장한 제목 "나는 반금련이 아니다"
 

영화 '나는 반금련이 아니다' 포스터 ⓒ 중국 바이두

 
중국의 '국민 감독'으로 불리는 펑샤오강이 2016년 영화 <나는 반금련이 아니다>(아부시반금련)를 발표했다. 중국 소설가 류전원이 지난 2012년에 출간한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한국에는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됐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최근 탈세 의혹이 불거진 후 돌연 종적을 감춰 논란이 됐던 중국 유명 배우 판빙빙이다.

2년 전 영화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지금 판빙빙이 처한 상황과 비교했을 때 여러모로 의미심장하기 때문이다. 우선 영화 포스터를 보자. 한가운데 여자 주인공이 있고 그를 감싼 8명의 남자는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고 있다.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흘겨볼 뿐이다. 감독은 영화 포스터를 왜 이렇게 만든 걸까?


펑샤오강 감독은 당시 제작 발표회에서 "이 영화는 일종의 사회적 우화를 다룬 내용"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배경으로 등장하는 마을 이름부터 눈에 띈다. 한국어로 발음하면 '영안시 광명현 괴만진(永安市光明縣拐彎鎮)'. 우리나라 행정구역 체계와 비교해 풀어보면, 영원히 마음이 편한 시(市), 밝고 환하게 빛나는 구(區), 길이 비딱하게 구부러진 동(洞)이다. 그러니까 상급 행정 단위인 '시'와 '구'의 지명은 긍정적이지만, 하급 행정 단위인 '동'의 지명은 부정적이다.

등장인물 이름 역시 범상치 않다. 판빙빙이 분한 여자 주인공 이름은 이설연(李雪蓮 ). 해석하면 반금련과 같은 상황에 처한 여자가 눈 내리는 허허벌판에 서 있다는 의미다. 이설연이 사는 마을의 현급판사(한국 행정구역 '동'을 담당하는 판사) 이름은 왕공도(王公道)다. 왕씨 성을 가진, 공명정대한 길만 가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마을 현장(한국의 '동장') 이름은 사유민(史惟閔)이다. 사씨 성을 가진 항상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유민(惟閔)'의 중국식 발음 '웨이민'은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단어 '위민(為民)'을 의미하기도 한다. 국민을 위한다는 의미다.

종합하자면 영화 속 이설연은 항상 국민을 위하여 노력하는 '동장'과 공명정대한 길만 가는 '판사'가 있는, 길이 비딱하게 구부러진 마을에서, 반금련과 같은 처지에 빠진 채 눈 내리는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는 것이다.

주인공 통해 보여준 사회비판, 그리고 흥행 
 

'길이 비딱하게 구부러진 마을'에 사는 영화 주인공 ⓒ 중국 바이두

  
영화는 이설연이 남편과의 위장 이혼을 취소하기 위해 사법·행정 기관을 찾아다니면서 겪는 일들을 다뤘다. 중국에서의 무상 주택 조건을 갖추기 위해 남편과 서류상으로 이혼했는데, 갑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이때 이설연은 남편과의 서류상 이혼을 취소하고 다시 혼인 상태로 되돌린 다음 제대로 이혼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관료화된 공무원들의 행태가 걸림돌이었다. 이설연은 처음엔 동 단위 공무원을 찾아가 호소한다. 여의치 않자 구와 시, 도를 거쳐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중국 최고 국가기관)까지 찾아간다. 한국으로 치면 장관급인 '상무위원'이 관심을 가져 이 사건을 해결하라고 직접 지시하지만,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주인공은 10년 동안 매년 전국인민대표대회장을 찾아 호소한다.

이런 일련의 시련을 통해 감독이 포착하고자 한 건 '중국 사회'였다. 위장 이혼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드러나는 공무원들의 관료화된 모습을 풍자적으로 접근한 이 영화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2016년 11월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또 제64회 산세바스찬 영화제에서 최고영화상인 '황금조개상'과 여우주연상인 '조개상'을 받는 영광도 누렸다.

풍자는 왜 더 나아가지 못했나
 

중국 배우 판빙빙 ⓒ 연합뉴스

 
이렇게 중국의 '문제적 감독'으로 떠오른 펑샤오강은 지난 5월 10일 <휴대폰2> 제작 발표회를 열었다. 중국 토론 프로그램 유명 앵커의 이중적 모습을 담은 <휴대폰>(2003)의 후속작으로, 중국 언론인을 다시 한 번 '저격'하는 내용이었다. 전작에 조연으로 출연한 판빙빙이 후속편에선 주인공으로 섭외된 상태였다.

판빙빙의 탈세 의혹이 터져 나온 건 그 직후다. 지난 6월초 중국 CCTV 전 진행자 추이융위안은 판빙빙이 영화 출연계약서를 이중으로 작성해 실제 받은 돈보다 적은 금액으로 세무 당국에 신고했다고 폭로했다. 추이융위안은 <휴대폰>에서 이중생활을 즐기는 앵커의 실제 인물로 지목된 사람이다. 이 폭로는 그가 단지 언론인이어서가 아니라 15년 전 영화에 대한 '보복'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 일로 판빙빙은 세무당국의 조사를 거쳐 약 8억9천만 위안(한화 1473억 원)에 달하는 세금과 추징금을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석 달간의 '실종 상태'를 끝내고 다시 모습을 드러냈지만, 최근엔 은퇴설까지 불거졌다. <휴대폰2> 역시 이 논란의 여파로 제작이 불투명한 상태다. 펑샤오강 감독 역시 '민감 인물'로 분류됐다는 설이 솔솔 나온다.

판빙빙의 탈세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중국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로 알려진 '체제 비판' 영화 <나는 반금련이 아니다>는 별 탈 없이 상영됐는데, 언론인을 풍자하려는 <휴대폰2>는 시작부터 어려움을 겪을 것을 보니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언론 기관 종사자가 정부 기관 공무원보다 힘이 더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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