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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설', 눈을 뗄 수 없는 풋풋한 첫사랑... 의외의 반전까지

[리뷰] 8년 만에 재개봉하는 대만산 첫사랑 로맨스 <청설>

18.11.05 14:22최종업데이트18.11.0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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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설> 프로모션 스틸 컷. ⓒ 오드

   로맨스물은 장르의 '관습'이나 '상투성'을 피해가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연출하기 까다로운 장르다. 어떻게 이야기를 구성하고 연출해도 예전에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 혹은 장면이라는 느낌을 주기 쉽다. 오는 8일 재개봉하는 <청설>(聽說, Hear Me, 2009)도 '청각장애'와 '수화'라는 소재를 활용해 신선함을 추구하려고 시도했지만 몇몇 장면에선 기존 영화의 클리셰를 답습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개봉을 통해 관객에게 선보인 영화는 아니지만, 지난 2010년 <청설>이 국내 개봉한 시기에 수화와 청각장애인의 사랑을 소재로 한 국내 독립 장편영화 <오디션> 같은 작품이 있기도 했다. 남자 주인공 티엔커(펑위옌)의 부모가 여주인공 양양(천이한)에게 자기 아들과 결혼해 달라고 청하며 스케치북을 넘기는 장면은 <러브 액츄얼리>에서 가져왔다. 또 첫사랑 로맨스의 계보에 속하는 작품들이 대만 영화에 여러 편이 있는데, 작품마다 남녀 주인공의 풋풋한 외양, 옛 기억을 소환시키는 힘, 로맨스물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비밀과 어긋남, 반전, 전환점 등의 배치가 대만 영화 특유의 개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영화는 남녀 주인공이 서로 바라보거나 소통하는 투 샷(two shot) 장면이 유난히 많다. ⓒ 오드

 
그럼에도 <청설>은 나름대로의 개성과 극을 이끌어가는 재미를 가진 아기자기하고 예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지만, 메신저와 문자를 통해 서로 소통하는 남녀의 모습이 2009년 자국 개봉 당시엔 나름의 신선한 설정이었을 것이다. 어린 연인들은 '말'이라는 불완전한 소통 방식 대신 좀 더 명확해 보이는 수화와 텍스트 형태의 소통을 택한다.
 
또 로맨스 영화에선 젊은 연인을 갈라놓는 '장애물'이 필수 요소인데, 이 장애물은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로 지난 400년간 주로 '부모의 반대'였다. 한데 이 영화에선 여주인공의 언니가 두 사람 사이의 장애물로 등장하고, 언니와 동생의 자매애와 장애인의 자립 문제가 서브 플롯(sub plot)으로 차용됐다. 양양과 티엔커의 연애 이야기를 그린 메인 플롯과 양양-샤오펀(천옌시) 자매의 서브플롯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더욱 풍성하게 이야기를 엮어간다. 여기에 수화와 관련, 로맨스 장르에선 보기 드문 귀여운 반전이 준비돼 있다. 
 

양양과 샤오펀은 자매애가 남다른 자매다.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사이좋게 지낸다. ⓒ 오드

 
티엔커와 양양의 그늘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밝고 씩씩한 모습이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첫사랑의 전형성을 갖춘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티엔커는 양양에게 가져다주기 위해 손수 요리를 하고 메신저에 그녀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는 사랑을 해본 적이 없고 따라서 상처받아 본 일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적극적이다. 양양은 청각 장애를 가진 언니의 올림픽 출전과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자신의 장래와 동일시한다. 해외 선교를 간 아버지 대신 가장 노릇을 하고 아르바이트로 늘 바쁘지만 밝고 긍정적이다.
 
남성 감독이 만든 로맨스는 여성 관객이 보기에 공감할 수 없거나 불편한 부분도 간혹 발견되지만 여성 감독인 청펀펀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청설>은 여성 특유의 섬세한 연출로 여성의 시각과 감성이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톡톡 튀게 드러나 여성 관객들이 공감하고 동의하면서 편안히 볼 수 있을 작품이다. 그의 각본과 연출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며 배우들의 연기를 제대로 이끌어낸다. 또 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영민하게 적재적소에 배치했다는 인상을 준다.
 
<청설>은 내러티브상의 주요 장면들이 대부분 두 주인공의 수화 장면으로 채워져 있는데, 영화 사운드에 있어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대사(dialogue)'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해당 장면들로 인해 자칫 관객들에게 생소함과 지루함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낯선 빈틈을 독창적인 앰비언스(ambience, 각 신의 시공간을 설명해 주는 주변음) 디자인으로 잘 보완하고 있다. 두 사람이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을 때는 도시 소음이, 양양의 집에서는 멀리서 들려오는 피아노 연주 소리가 대사 부재의 빈틈을 잘 메워준다. 어쩔 수 없는 내러티브상의 아쉬운 점을 사운드 디자인이 효과적으로 메워준 좋은 예다. 
 

티엔커와 양양이 수화로 대화하고 있다. ⓒ 오드

 
로맨스는 상투성을 피해가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공포 장르와 더불어 가장 연출하기 까다로운 장르일 수 있지만 <청설>은 여러 면에서 기존 청춘 로맨스물의 장점을 잘 취하면서 다양한 모티브와 디테일을 잘 섞어서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완성했다. 첫사랑의 추억 소환에 잘 어울리는 풋풋한 배우들의 외모와 순수함이 스크린으로부터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또 다른 몰입 요소로 작용하는 것도 본 영화의 장점이다. 
청설 대만 재개봉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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