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 폐지, 정부가 단계적으로 사기 치나"

[현장] 장애인들, 국회 진입 기습 시위... "예산을 반영하라"

등록 2018.11.05 12:52수정 2018.11.0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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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기습 시위 벌이는 장애인들 "예산 반영없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는 사기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장애인들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자신의 몸에 사다리와 쇠사슬을 묶고 “예산 반영없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는 사기이다”며 장애인 복지를 위한 예산확대와 장애인 수용시설 폐지 등을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기사수정: 5일 오후 5시 26분]

"이해찬 대표님, 김성태 대표님, 손학규 대표님, 정동영 대표님, 이정미 대표님. 만나주십시오."

5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출입문 앞. 사다리와 쇠사슬을 목에 건 장애인들이 외쳤다. "예산 반영해, '진짜' 장애등급제 실현하라"라는 목소리가 국회에 울려 퍼지도록 마이크를 쓰려고 했으나 국회 보안요원들이 앰프를 가져갔다. 작동하지 않은 마이크를 든 채 이형숙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각 정당대표들이 올 때까지 목에 사다리를 건 채 기다리겠다"라고 외쳤다.

국회가 5일부터 내년도 정부 예산안 본격 심사에 돌입한 가운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활동가 등 20여 명이 이날 낮 12시 국회의원회관 출입문 앞에서 "예산 편성 없는 장애등급제 폐지는 사기"라고 주장하며 기습시위를 벌였다. 휠체어를 탄 8명의 장애인들이 목을 사다리에 넣고 쇠사슬로 서로의 몸을 이은 채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예산 반영하라"라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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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기습 시위 벌이는 장애인들 "예산 반영 없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는 사기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장애인들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자신의 몸에 사다리와 쇠사슬을 묶고 “예산 반영없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는 사기이다”며 장애인 복지를 위한 예산확대와 장애인 수용시설 폐지 등을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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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기습 시위 저지하는 경위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회원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장애인 복지를 위한 예산확대를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벌이자, 국회 경위들이 이를 저지하며 피켓을 빼앗고 있다. ⓒ 유성호



장애인들이 마이크를 쓰려고 하자, 국회 보안 요원들이 앰프를 빼앗아 의원회관에서 멀리 가져가려 했다. 이들과의 몸싸움 끝에 앰프를 빼앗은 활동가들이 다시 의원회관 앞으로 앰프를 가져가려 하자, 보안요원들이 이를 막아서면서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우리는 마이크를 써야 한다"라고 장애인 활동가가 이야기했지만 한 보안요원은 "우리는 막아야 한다"라고 했다. 충돌이 이어지다, 보안 요원들이 낮 12시 35분쯤 앰프를 빼앗아 의원회관 안으로 들어갔다. 장애인 활동가들이 쫓아 들어가려 하자, 경찰 수십여 명이 의원회관 출입문을 막고 섰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지난 5년간 광화문 지하차도에서 싸웠다"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국민명령 1호로 선언한 것이 장애등급제 폐지다"라고 장애등급제의 의미를 설명했다. 박 대표는 "정부가 장애등급제를 폐지한다고 했고 모든 사람이 이를 알고 있다"라며 "정부는 폐지한다고 말만하고 예산에는 반영하지 않았다. 사기이며 우롱이다"라고 했다.


박 대표는 국회가 나서달라고 했다. 박 대표는 "수없이 공문을 보내고 면담을 요청해도 국회의원들은 우리를 만나주지 않는다"라며 "그래서 의원회관 앞에 왔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장애인 관련 정부 예산을 다루는) 보건복지부 상임위원회 논의가 내일이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라며 "각 당의 대표들이 직접 와서 우리들의 사다리와 쇠사슬을 풀고 진지하게 이야기 해주길 바란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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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대표 면담 요구하는 장애인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장애인들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자신의 몸에 사다리와 쇠사슬을 묶고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장애인 복지 예산확대를 요구하기 위해 이해찬 대표와의 면담을 요청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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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격려하는 박주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장애인들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자신의 몸에 사다리와 쇠사슬을 묶고 장애인 복지 예산확대를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벌이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시위 현장을 방문해 이들을 응원하고 있다. ⓒ 유성호




이들은 각 당 대표들에게 만나달라고 호소하며 1시간째 의원회관 앞에서 '사다리․쇠사슬 농성'을 이어갔다. 오후 1시 20분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을 시작으로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찾아와 이야기를 들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선으로 박경석 대표 등 활동가 3명이 1시 45분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를 만나기도 했다. 조정식 간사를 만나고 오후 2시 10분쯤 의원회관 앞으로 돌아온 박경석 대표는 "이는 여야 합의가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의지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다"라며 "그런데 정부와 국회 예산 논의에는 장애인이 없다"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박 대표는 이어 "우리가 이번 국회 때 논의해 달라는 금액은 수조 원이 아니다. 8천억 원이다"라며 "책임있는 여당이 기재부와 논의해 예산이 제대로 배정될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겠다"라고 강조했다.

'장애등급제 폐지' 발표됐는데도 장애인들이 기습시위 벌인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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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기습 시위 벌이는 장애인들 "예산 반영없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는 사기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장애인들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자신의 몸에 사다리와 쇠사슬을 묶고 “예산 반영없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는 사기이다”며 장애인 복지를 위한 예산확대와 장애인 수용시설 폐지 등을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그가 의원회관을 바라보며 목이 터져라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치는 이유는 뭘까. 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 의학적 판정에 따라 장애인을 1~6급으로 분류해, 이를 기준으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던 '장애등급제'를 내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폐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중증(1~3급)과 경증(4~6급) 두 가지로 단순화하되, 개인의 서비스 필요도를 평가하는 '종합조사'를 도입해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했다. 장애인들이 지난 1988년 시행된 이래 30년 넘게 폐지를 외쳐온 장애등급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이 같은 복지부의 발표를 '가짜', '허울 뿐인 발표'라고 주장하고 있다. '장애등급제'라는 이름만 사라질 뿐, 그에 걸맞은 예산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산 확보 없이는 지금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박경석 대표는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총예산이 2.2조 원(2018년)에서 2.7조 원(2019년)으로 5천억 원 증액됐다고 한다"라며 "하지만 따져보면 많이 오른 게 아니다"라고 했다.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예산 증액분의 절반을 차지하는 활동지원서비스 증액 내용을 살펴보면 엉터리임을 금방 알 수 있다고 했다. 6906억 원이었던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은 9684억 원으로 늘어나 2778억 원이 증액된다.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증액 예산분 5천억 원 중 50%를 차지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증액분이 활동지원서비스 확대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 대표는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예산 증액분을 살펴보면, 2019년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한 활동지원서비스 임금 단가 인상분과 장애인 활동지원 이용자 대상 확대 분이다"라고 했다. 2018년 기준 7만1000명이던 장애인활동지원 이용대상자를 2019년에는 7만8000명으로 늘려, 7000명 분의 예산을 확대한 것이다. 박 대표는 "이미 2016년 12월 기준 장애인활동지원 이용자가 7만9000명을 넘어서고 있다"라며 "7만8천명 분의 예산으로는 2019년 장애인활동지원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라고 했다. 당연히 중증장애인들이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기에는 한참 모자란 액수라고 했다.

이외에도 지역사회에서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중증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예산 또한 장애계가 요구한 64억 원에 비해 22억 모자란 42억 원으로 올라갔다. 뇌병변장애인 지원 명목으로 예산 16억 원을 요구했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서는 장애계가 주장하는 대로 3조5470억 원이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총예산으로 책정돼야 한다고 했다. 정부안인 2조7326억 원보다 8144억 원 더 달라는 것이다.

박경석 대표는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라 적힌 유인물을 흔들며 성토했다.

"보건복지부는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한다고 했다. 그러면 예산도 단계적으로 넣어야 하는 것 아니냐. 자연 증가분에 10원짜리 예산을 얹었다. 우리한테 단계적으로 사기 치는 것밖에 안 된다."
#장애인 #박경석 #국회 #기습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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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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