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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했어도 아내는 내 거? 전 남편의 집착이 불러온 파국

[영화같은 현실②] 사적 영역으로 치부되는 '가정폭력'의 실상 <아직 끝나지 않았다>

18.11.11 12:03최종업데이트18.11.1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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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미래의 사자상, 두 개의 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전 세계 유수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었다. 19회 전주 국제영화제에서도 매진 사례를 이루었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을 능가한다', '엄청나게 충격적인 감정적 경험', '현실적인 후려침과 충격'이라는 평가가 잇달았다. 바로 자비에르 르그랑의 <아직 끝나지 않았다>가 이룬 성취이자 찬사이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이기에? 이야기는 가정법원에서 시작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 판시네마

 
폭력의 공기
 
하루에 20건을 처리한다는 가정법원, 판사는 분주한 걸음으로 법정에 들어선다.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은 남편이었던 앙투완(데니스 메노체트 분), 그의 아내였던 미리암(레아 드루케 분)과 그들의 변호사들. 부부는 남편의 집착과 폭력으로 이혼했다. 현재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의 면접권을 조정하기 위해 부부는 한 자리에 앉았다. 큰 딸 조세핀(마틸드 오드뵈 분)은 18세를 지나 더 이상 아버지를 만나야 할 의무가 없지만, 이제 열한 살인 아들 줄리앙(토미 지오리아 분)이 문제다.
 
판사는 편지 한통을 꺼내든다. 그곳엔 줄리앙의 친필로 아버지 앙투완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사연이 적혀있다. 아버지를 '그 사람'이라 칭하는 줄리앙, 더는 만나고 싶지 않다 강력하게 호소한다. 엄마에게 폭력적이었던 아버지, 학원을 빼먹었다고 딸의 손목을 꺾어버린 아버지, 심지어 이혼 후 외갓집으로 옮겨 왔는데,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그곳으로 옮겨와 그 주변에서 서성이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아들 줄리앙은 만나고 싶지 않다고 구구절절 하소연한다.
 
하지만 아들의 편지에 대해 남편 측 변호사는 목소리를 높인다. 엄마와 함께 사는 아들이기에, 충분히 엄마나 그 주변 어른들에 의해 강요되거나 생각이 주입될 수 있다고. 그리고 아버지는 엄마에게 집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보고 싶어 직장을 이곳으로 옮겼으며, 두 자녀와 아내에게 서툴렀을 뿐, 결코 폭력적이지 않으며 아들을 몹시 보고 싶어 한다고.
 
이에 대해 엄마 측 변호사는 항변했지만, 판사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결국 법적인 권리에 따라 아빠는 2주에 한번 아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아들을 데리러 찾아온 아버지, 아들은 그런 아빠를 따라가기 싫어 누워있고, 엄마는 아들이 배가 아프다고 전한다. 하지만 결국 그럴 경우 법적인 불이익에 처해질 수도 있다는 아버지의 반협박에, 아들은 어쩔 수 없이 아빠 차에 오른다. 그렇게 시작된 아버지와 아들의 만남.
 

아직 끝나지 않았다 ⓒ 판시네마

  

아직 끝나지 않았다 ⓒ 판시네마

  
부부가 이혼을 하고, 아빠가 법으로 정해진 권리에 따라 아들을 만난다는 이 권리의 시간.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바로 이런 '평범한 만남' 자체가 '공포'이자 '스릴러'가 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들이 마지못해 아빠 차에 타고, 그렇게 아빠와 떠나가는 아들을 엄마와 딸은 숨죽이며 창문에서 숨어 지켜보고, 아빠의 다그치는 질문에 마지못해 아들은 대답을 하고, 그 일상적인 이혼 부부와 그 아이들의 관계가 품은 함의, 즉 '폭력'이 공기처럼 온통 영화를 감싼다. 마치 단 한 대의 곤장만으로도 죄인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었다는 그 옛날 우화처럼. 실행된 폭력의 결과가 아니라, 폭력을 자아낼 수도 있는 그 상황이 이 가족을 휩싼다.
 
그 어떤 공포 스릴러 못지않게 그 '공기'가 주는 긴장감이 정말 관객들을 객석에 붙잡아 둔다. 그를 통해 관객이 깨닫게 된 것은 법정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어떤 사건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저 일상을 짓누르는 '폭력의 공기' 그 자체가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폭력적 사건'이 폭력이 아니라, 바로 '폭력'을 예감하고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이 '공기' 자체가 폭력이라고. 바로 이것이 '가정 폭력'의 실체라고.
 
가정, 사적이어서 위험한 관계
 
사회의 기본적인 단위인 가정. 부부와 자녀들로 이루어진 관계는 '사적 영역'으로 취급된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위계와 관계들로 인해 빚어지는 문제들은 그 문제들이 '사건'이 되기 전에는 '법적'인 조치나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여기서 문제는 바로 '내', '나의'라는 소유격의 문제이다. 내 아내, 내 아이들이라는 '나의 영역'에 해당되는 인식들이 '폭력'의 원인이 된다. 거기서 문제를 발생시키는 건 대부분 지금까지 인류 사회에서 면면히 잔존해온 '가부장제'의 잔해들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에서 아버지 앙투완은 이미 이혼을 한 사이임에도 여전히 아내와 아이들을 '나'의 영역 속에서 풀어놓지 않는다. 전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관심을 놓지 못한다. 아들을 핑계 댔지만 친정으로 삶의 근거지를 옮긴 아내를 따라 자신 역시 직장을 옮겼다. 아내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그 주변을 서성인다. 아들을 사랑해서 만나야 한다고 했지만, 결국 아들의 노트를 뒤지고, 아들을 윽박질러서 알아내려 하는 건 현재 아내의 거처요, 동정이다. 그의 분노는 '내 것'을 빼앗겼다는, '내 것'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상실'에서 비롯된다.
 
아들은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빠는 우연히 부모와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내의 거처를 알게 되면서 폭발한다. 아들을 윽박지르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폭력, 아니 폭력적 분위기의 강요로 인해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아버지를 인도한다. 하지만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한 아들의 기지는 잘못된 주소를 가르쳐 주는 것. 아들에게서 뺏은 열쇠로 다른 집의 벨을 누르는 순간, 아들은 도망친다. 그러나 도망치는 것도 잠시, 결국은 회유하는 아버지로 인해 다시 돌아온 아들. 진짜 집 주소를 '토로'하고 만다. 자기 자신과 엄마를 다른 사람도 아닌 아빠 앞에서 지키기가 얼마나 무력한지 영화는 고스란히 보여준다. 반면 아빠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폭력적 분위기 조성에서부터 회유와 협박까지.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포스터 ⓒ 판시네마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판사의 상투적인 결정은 결국 모자를 생명의 위기에 빠지게 만든다. 아들을 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읍소는 아들을 이용해 '나의 아내'에게 다가갈 빌미가 되고, 그런 상황에서 열 한 살 소년의 자기 방어적 '거짓말'은 역부족이다. 결국 아들을 통해 아내의 집을 알아내 그 집에 들이닥쳤던 남편은 일을 저질러 버리고 만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아내와 아들, 이 모자의 위기는 어디서부터 해명되어야 할까? 판사의 안이한 결정? 폭력적인 가부장에 대한 사회적 제재의 미봉책? 가부장의 인식적 한계? 우리 사회에서 최근 드러나고 있는 가정 폭력 사례에서 보이듯, '사건'이 나기 전까지는 '집안 문제'에 불과한 가정 폭력이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무섭다는 걸 영화는 보여준다. 가정폭력이 결코 '개인적 관계'의 문제로 치부될 수 없다는 것을.
 
'아버지의 사형'을 청원한 최근 사건에서도 보이듯 '관계가 존재하는 한' 쉬이 마무리되기 힘들다는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래서 아버지가 잡혀간 엔딩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제목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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