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키면서 돈 뜯는 심보를 고발한다

[주장] 이주노동자 수습기간 적용은 고용노동부의 자기부정

등록 2018.11.06 16:15수정 2018.11.0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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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반농반어하는 시골에서 자라서 어릴 적부터 낫질, 호미질을 해왔다. 고향을 떠나 살던 중, 살림살이가 어려워서 농촌에 가서 일하려고 했더니 석 달은 돈 내면서 배우라는 말을 들었다. 그 돈은 월급에서 제한다고 했다. 그는 사장에게서 비닐하우스에서 상추를 따려면 상당한 기술과 시간이 지나야 자세가 나온다는 말을 태어나서 처음 들었다. 

농촌에서 석 달은 배워야 한다는 소릴 듣고 어촌으로 가 봤다. 바닷가에서 자라서 어려서부터 배를 타 봤고, 가두리 양식장에서는 물고기에게 사료 주는 일을 수없이 해 봤던 그였다. 그런데 어촌에도 똑같았다. 석 달은 꼼꼼히 배워야 물고기 사료를 줄 수 있다고 했다. 사장이 무게를 재서 담은 사료를 뿌리는 일인데도, 제대로 안 배우면 고기들이 배 터질 때까지 사료를 주는 경우가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농어촌뿐이 아니었다. 가까운 박스 제조 공장에 갔더니, 박스에 칼질하고 테이프 붙이는 일을 제대로 배우려면 석 달로는 충분하지 않고, 1~2년은 배워야 한다며 한술 더 떴다. 지금 입사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수습기간을 더 길게 할 거라면서 빨리 입사하라고 재촉했다.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흔히 겪는 일을 정리한 것이다. 이게 상식일까? 낫질과 호미질을, 사료 주는 일을 몇 달씩 배워야 자세가 나온다는 말. 박스에 칼질하고 테이프 붙이고 나르는데, 무슨 기술이 따로 있어야 한다는 말. 

작년 9월에 개정 고시된 최저임금법 제5조 ②항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런 단순노무는 따로 시간을 들여 배우지 않아도 되고, 숙련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

또 통계청은 한국표준직업분류에서 단순노무 종사자는 "단순하고 일상적이며, 어떤 경우에는 상당한 육체적 노력이 요구되고, 거의 제한된 창의와 판단만을 필요로 하는 업무를 수행한다"고 고시하고 있다. 이들은 농림어업 및 기타 서비스 단순 노무직과 제조 관련 단순 노무직 등을 포함한다. 
 

최저임금 위반 규탄 기자회견서울지방고용청 앞에서 외국인이주운동협의회가 이주노동자 수습기간 적용을 규탄하고 있다. ⓒ 고기복

 
그런데 단순노무직종에 수습을 금하도록 최저임금법이 바뀐 지 1년이 넘었지만 외국인 고용허가제 주관부서인 고용노동부가 표준근로계약서 양식을 수정하지 않아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아래 외노협)는 6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수습기간 적용으로 이주노동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고용노동부의 늑장 행정을 규탄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박영아 변호사는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은 비전문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체류자격의 특성상 대다수는 단순노무에 종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더불어 개정법을 반영하여 단순노무업무에 종사하는 경우 수습기간을 적용하지 않도록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외노협은 ▲ 고용허가제 수습기간 삭제 ▲ 이주노동자 고용업체의 최저임금법 위반 전수 조사 ▲ 표준근로계약서 양식 전면 개정을 요구하며 "법 개정 후 (계약서) 작성 실태를 파악하고, (고용주가) 수습기간을 명목으로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적용토록 한 경우 차액을 보전토록 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가 이주노동자 고용주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표준근로계약서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은 단순노무직임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배워야 한다. 또 최저임금법이 개정되었는데도 수습기간을 따로 두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고용노동부의 행태는 국적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한 근로기준법이나 ILO협약을 굳이 논하지 않아도 지탄받아 마땅하다. 매해 고용허가제 외국 인력 쿼터를 정할 때마다 중기중앙회를 비롯한 각 이익집단들이 인력을 늘려달라면서 아우성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수습기간 적용이 얼마나 자기모순인지 알 수 있다.

그들은 내국 인력을 구하지 못해서 외국 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수습 기간을 두자고 말하는 건 모순이다. 인력이 없어서 비교 대상이 없는데,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건 억지 논리다. 

한국 사람이라고 누구나 낫질, 호미질 처음부터 잘하고, 사료도 알아서 척척 주고, 공장에서도 모든 일을 야무지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농어촌과 단순노무 같은 경우 어려서부터 노동현장에서 단련된 사람은 이주노동자들이 더 많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임금을 차별하자고 한다면 상식이 있는지 물어야 한다. 

설령 이주노동자들이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그 책임을 노동자에게 돌리는 건 악덕업주나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 작업환경 개선 등은 고용주의 몫이지, 노동자에게 책임을 부과할 성질이 아니다. 

고용허가제 기본 원칙 중에 노동시장 대체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내국인 고용시장 보호가 있다. 이주노동자 때문에 내국인 일자리가 잠식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용주가 수습이라는 명목으로 이주노동자를 싸게 고용할 수 있으면 노동 시장에선 필연적으로 대체 현상이 일어난다. 이런 면에서 고용노동부가 이주노동자 수습기간을 두는 것은 자기부정이다. 

이런 사실을 고용노동부라고 모를 리 없다. 근로기준법도 알고 국제법도 알고, 노동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도 잘 알고 있는 담당부서다. 다만, 기업주들과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인들, 관료들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주노동자 권익을 무시하는 게 문제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외국인근로자 최저임금 수습기간 별도 적용'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지난 9월 중기중앙회 후원으로 토론회를 연 바른미래당 의언주 의원은 이에 대해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다른 임금체계를 적용하는 연구가 필요하다"며 중기중앙회를 옹호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 장관 역시 이 자리에서 '외국인 근로자 수습기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고용노동부가 이주노동자 수습기간 적용에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것은 '일 시키면서 돈 뜯는 심보'를 묵인하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다. 단순노무 직종 수습기간 적용 제외라는 최저임금법 개정 취지를 무시하고 이주노동자에게 수습기간을 두겠다는 것은 역사를 거스르겠다는 말과 같다.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 부서 확장과 산업인력공단 등의 산하기관 고용허가제 업무 대행으로 인한 수혜는 고스란히 고용노동부 몫이었다. 이런 사실을 떠올린다면 고용노동부는 법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을 괄시해서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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