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친구 위해 2천만원 기부한 장애인 꽃님이

[포토에세이] 노들장애인야간학교 겨울 급식비 마련 프로젝트

등록 2018.11.07 08:23수정 2018.11.0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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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드펀딩 '텀블벅'에서 진행 중인 '노들야학' 밥값 마련 프로젝트 ⓒ 크리에이티브 다다

 
'노들장애인야간학교'(아래, 노들야학) 박경석 교장과 친구하기로 했습니다. 20대에 행글라이더 추락 사고로 장애인이 된 그는 장애인 인권운동에 앞장 선 멋진 사나이입니다. 박경석만 친구로 삼은 게 아닙니다. 노들야학의 친구들도 친구로 삼았습니다.

노들야학 친구들이 겨울 급식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텀블벅'에서 '노들야학 겨울나기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아래의 글은 노들야학 밥값 마련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도 밥값을 보탰습니다. 아픔을 나누면 줄어들고 기쁨을 나누면 배가된다는 말을 믿습니다. (기자 주)

 

노들야학의 즐거운 수업. ⓒ 크리에이티브 다다

   
내 친구들은 별입니다.
 
몸과 마음은 아프지만 영혼은 맑은 별입니다. 장애를 안고 태어났거나 각종 사고로 장애인이 된 내 친구들은 외롭고 힘든 세상을 헤쳐 나가다 별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세상이 쳐 놓은 차별의 벽을 넘으려다 쓰러지기도 하지만 오뚝이처럼 우뚝 일어섭니다. 외롭고 힘들어도 웃음 짓는 노들야학의 열두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노들야학의 큰 형님 같은 명학
웃음소리와 노래 소리가 큰 경남
독립의 꿈을 키우는 마흔 살 수연
꽃피던 봄날 새벽에 별이 된 호식

 

니체를 사랑하다 별이 된 고(故) 김호식. ⓒ 크리에이티브 다다

 
뇌병변장애인 친구 호식이는
 
19년간을 궤짝 같은 방에서 살았습니다. 복지관에서 20년간 공부했는데도 난독증 때문에 글을 읽지 못한 호식이가 노들야학에서 철학을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듣기 능력 덕분이었습니다. 호식이는 니체를 사랑했습니다. 니체의 '아모르파티'(운명을 사랑하라) 때문이었습니다. 노들야학의 장애인권 교육 강사로 활동하며 아모르파티의 삶을 살던 호식이는 봄꽃 흐드러지던 새벽에 별이 됐습니다. 다 풀지 못한 인생의 해답을 찾기 위해 니체 선생을 만나러 갔습니다.

전동스쿠터 타고 새 세상을 만나는 정숙
오토바이 사고로 뇌병변장애1급 판정을 받은 경진
춤추는 것과 음식을 좋아하는 지적장애1급 소민
장애인 시설을 온몸으로 기어 탈출해 독립한 애경
돈 많이 벌어 노들야학을 돕고 싶어 하는 만능 살림꾼 태종
전국 일주와 가족 만남을 꿈꾸는 장애인 권익옹호활동가 동림
행글라이딩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된 노들야학 교장 경석
자신보다 장애인 친구들을 더 사랑한 내 친구 꽃님 김선심

 

장애인 친구들의 자립을 위해 2억 같은 2천만원을 기부한 장애인 김선심. ⓒ 크리에이티브 다다

 
내 친구 꽃님은
 
장애인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20억 같은 2천만 원을 기부했습니다. 나만 행복한 게 장애라고, 돈만을 위해 사는 삶이 장애라고, 아프고 힘든 이웃을 외면하는 게 장애라고, 사람은 행복을 나누어야 한다고, 돈은 낮은 곳과 필요한 곳으로 흘러야 한다고, 아프고 힘든 이웃을 보면 손을 잡아주는 게 인간이라고 선언한 내 친구 꽃님은 임대아파트에서 자립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꽃님이 말입니다.

"그 돈, 정말 눈 감고 귀 막고 살며 모았어요. 먹고 싶은 거 안 먹고, 가고 싶은 데 안 가고. 2천만 원이면 나 같은 중증장애인한테는 상상도 못할 거금이에요. 시설에서 나왔을 때 국가보조금이 한 달에 40만 원이었는데, 거기서 월세 35만 원 내면 5만 원 남잖아요. 그 돈으로 먹고 살았어요. 나만 이렇게 행복할 수 없어서 활동가들한테 돈을 줬어요. 그 돈 다른 데 쓰지 말고 한 사람이라도 더 시설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데 쓰라고요. 다른 사람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라고요."

아아, 꽃님의 돈은 돈이 아니에요.
아아, 꽃님의 돈은 자유이고 행복이에요.
아아, 꽃님의 돈은 나만 행복해선 안 된다는,
아아, 꽃님의 돈은 장애인의 인간선언이에요.

 

노들야학 친구에게 밥을 먹이고 있는 자원봉사. ⓒ 크리에이티브 다다

 
내 친구들의 밥을 위하여
 
계단 때문에 들어갈 수 없는 식당
돈도 없고 손 잡아주는 이도 없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말고 방에만 있으라는 사회
 

노들야학은 2014년부터 평등 밥상을 차렸습니다. 70여명의 장애인 학생들과 10여명의 상근자와 교사, 자원봉사자들이 밥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는데 아주 꿀맛입니다. 계단이 막지도 않고, 돈이 없다고 문전박대하지도 않고, 방에만 있으라고 강요 하지도 않으니 행복한 밥상입니다. 이렇듯 맛있게 먹다보니 1년이면 밥값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갑니다.

노들야학 평등한 밥상의 걸림돌은 돈입니다. 1년 무료급식 비용이 5천만 원 넘게 들어가는데 이 겨울에 밥값이 떨어졌습니다. 곧 눈이 내릴 텐데 그 눈이 쌀이라면 쓸어 담겠는데 그 눈은 내 친구들의 발을 묶거나 넘어지게 할 뿐입니다. 그래서 '2019년 열두 친구 이야기' 캘린더와 평등 숟가락을 판매해 겨울나기 밥값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조호진 시인의 시 '내 친구들의 겨울 밥을 위하여' ⓒ 크리에이티브 다다

 
1993년 개교한 '노들장애인야간학교'(노들야학)의 '노들'은 '노란들판'의 준말로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의 터'란 뜻입니다. 노들야학은 장애인 교육 기회 제공과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해소를 위한 서명운동, 소송, 농성 등을 통해 장애인 정책과 인권을 향상시키면서 올해의 인권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와 함께 장애인자립작업장, 교육권 확보를 위한 천막야학, 시설장애인을 위한 탈시설 학교 등을 진행하면서 장애인극단과 노들 음악대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2014년 개교 20주년을 기념해 <지금이 나는 더 행복하다>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등 2권의 단행본을 펴냈습니다.
덧붙이는 글 노들장애인야간학교 겨울 급식비 마련을 위한 '2019년 열두 친구 이야기' 캘린더와 평등한 숟가락을 크라우드펀딩 '텀블벅'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노들장애인야간학교 #박경석 #급식비 #장애인 #인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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