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갈며 '깔딱' 고개를 넘는 그 순간, 아시나요

늦깍이 라이더가 겪은 '자전거 쾌감'... 오늘도 달려봅니다

등록 2018.11.07 14:11수정 2018.11.0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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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처음 타본 건 건 8년 전이었다. 새로 이사 간 마을에 아담한 공원과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었다. 식구들과 산책을 나갔는데, 이미 자전거를 썩 잘 타던 딸과 남편은 자전거를 가지고 나간 터였다. 둘은 나를 두고 앞서 달렸다 돌아왔다 하며 오가고 있었다.

그런데 슬슬 걷고 있는 나를 두고 쌩하니 가버리기가 딱했던 모양이었다. 한 100미터쯤 앞서 달리던 딸이 유턴해 돌아와서는 "엄만 왜 자전거 안 타? 우리만 타니까 재미없어" 이러는 거다.

"엄마 자전거 못 타."
"그래? 배워. 내가 가르쳐 줄게."  


당시 초등 2학년이었던 딸에게 '맘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심심찮게 훈계질을 하던 나는 차마 무서워서, 귀찮아서, 연습하기 싫어서 안 하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간 내 훈계의 권위가 바로 추락할 것은 물론이고, 정작 자전거 따위도 시도해보지 못하는 주제에 애한테 꼰대질한다는 것이 얼굴 화끈거릴 일 아닌가?

자전거에 대해선 자동차만큼이나 모르던 나는, 구매를 위해 식구들을 대동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자전거 판매점에 들러보니 웬 자전거가 그리 많은지. 나는 무조건 작은 것을 타겠다고 했고, 남편은 익숙해지면 후회할 테니 좀 큰 거로 사라고 했다.

나는 뻑적지근한 라이더가 될 맘은 추어도 없었던지라 박박 우겨 바퀴가 가장 작은 자전거로 정했는데, 정말 자전거계의 '티코'라 할 만했다. 물론 가격도 20만 원 초반대로 저렴한 편이었다. 하늘색 알루미늄 프레임, 흰색 핸들, 12인치 바퀴, 탈부착 되는 바구니(간단히 장 볼 때 유용하다), 게다가 접히기까지 하는 자전거가 나의 첫 자전거이다.

이 자전거는 허리를 펴고 탈 수 있어 요통이 없고 스피드를 포기한 대신 안정감이 짱이다. 초보라이더였던 나에겐 안성맞춤이었다. 요 작은 자전거로 연습하며 아파트 단지 화단에 처박히기를 수차례, 까이고 멍들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배짱이 생기자 좀 멀리 나가 본 공원에서 구름다리 모양 다리를 건너다 앞브레이크를 급히 잡는 바람에, 몸 따로 자전거 따로 내동댕이쳐진 적도 있었다.

그러다 지금의 자전거를 타게 됐는데, 순전히 딸 때문이었다. 요것이 4학년쯤 되자 제 자전거가 시시하다는 거다. 바퀴가 작아 재미가 없다는 이유를 댔지만 내 보기엔 그건 핑계인 듯했고 실상은 비주얼 때문인 듯했다.

눈여겨보니 고맘때 애들이 정말 꽤 바퀴가 큰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아이 설레발에 "큰 거 탈 때 됐다"며 맞장구치는 남편까지 가세해 딸이 큰 자전거로 바꾸면서, 딸애의 시시한 자전거가 내게 떨어지게 되었다. 주황색 알루미늄 프레임, 7단 기어, 16인치 정도 폭의 바퀴, 뒤에 짐을 실을 수 있는 작은 선반이 달렸다. 아, 이것도 접힌다.

딸내미한테 자전거를 물려받은 게 썩 달갑지 않았던 나는 시큰둥하게 자전거에 올랐는데, 아니, 훨씬 잘 나가는 것이 아닌가? 티코 자전거보다 속도나 쾌감이 월등했다.

이 자전거를 타고 꽤 멀리 나가 보게 되면서, 운전할 때는 풍경으로 지나치던 논, 밭, 농원 등으로 나가 보게 되었다. 자전거로 한 20여 분 내달으면 닿을 수 있었다. 인적 드문 논길, 농수로인 개울을 끼고 달릴 때의 그 고즈넉함이라니.

논길 가장자리 키 큰 잎들의 살랑거림, 졸졸졸 개울물 흐르는 소리와 내 자전거가 가르는 바람의 묘한 궁합은 뜻밖의 감정을 안겨 주었는데, 환희이기도 하고 약간 슬픔이기도 한 것이었다.

누구도 탐하지 않을 경치를 자전거에 홀로 오른 채 독점하는 재미, 낭만이었다. 이 소박한 기쁨은 반드시 몸의 수고를 거쳐야 했기에 매우 고단했지만, 그 누구의 힘도 몸도 아닌 오직 내 몸으로 얻었기에 혼자 대견했다. 경사진 길을 수십 차례 실패하다 낑낑대며 겨우 올라섰을 때의 성취감은,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라이더들에겐 분명 빈축 살 일이지만, 나로서는 무척 소중한 감정이었다.

자전거의 스피드는 엔진동력으로 달리는 자동차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물론 자동차의 스피드가 월등 빠르고 더 세다. 그러나 내 몸의 힘을 전적으로 활용해 얻는 자전거의 스피드는 그보다 훨씬 느리지만 보다 감각적이고 주체적이다.

자전거를 타며 수시로 처박히고 다치면서도 중단하지 않았던 투지는 거창하게 말하자면, '몸의 주권 회복'이었다(남성들의 경우엔 유년기부터 청장년까지 늘상 경험하는 몸의 감각이겠지만, 여성들은 유년기를 거치며 자연히 잃고 마는 본능이다). 마흔도 훨씬 넘은 나이에 자전거로 획득한 몸의 느낌은 매우 강렬했고 경이로웠다.

이렇게 자전거로 회복한 몸의 감각에 감격했던 내가 지인에게, "나 요즘 자전거 타기 시작했다."며 자랑스레 건넨 말에, "언니는 여태 자전거도 안 배우고 뭐했어요?" 한 방에 그만 깨갱해 버렸다. 그러게, 왜 자전거를 어려서 배우지 못했던 걸까?

곰곰 생각해보니, 내 주위엔 자전거 타는 친구가 없었고, 내 부모님 형제자매 그 누구도 자전거를 권해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자전거는 내 삶에 들어온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토록 늦은 나이에 불쑥 만난 자전거에 흥분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인의 지청구에 잠깐 기죽었던 나는 '쳇, 자전거 타는 나이가 정해진 건 아니잖아.' 다시금 몸의 감각을 재무장하고 내 작은 자전거와 함께 요기조기 구석구석 신나게 누비고 다녔다.

좀 타니 이제 좀 큰 자전거로 바꾸라는 딸애와 남편이 성화가 한창이었다. "너희들 중다리가(둘 다 롱다리는 아니다) 내 짧은 다리의 비애를 아니? 지금 자전거가 내 다리에 딱 맞아. 빨리 달릴 생각도, 폼 잡고 싶은 맘도 없어." 끝. 내 단출한 자전거에 대한 100% 만족으로 식구들의 입을 봉인했다.
 

몸을 일깨워준 내 조촐한 자전거 ⓒ 윤일희


 
그로부터 5년 후,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됐고 왜 그랬는지 한동안 자전거를 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책모임에서 '호수공원 자전거 하이킹'이 제안됐다. 다들 자전거 타 본 지가 언젠지 모르겠다는 뒷걸음질에, 한 멤버가 "몸이 기억하지 않겠어요?"했다. 이 한 마디에 다들 찔끔대던 걱정을 날리고 자전거 라이딩을 감행했다.

자전거 하이킹에 끌고 나온 자전거를 보아하니, 다들 처박아둔 지 오래된 터라 광택을 잃은 지 오래였고, 내 자전거만큼 작은 생활 자전거였다. 게다가 자전거를 탄다는 사람들이 어디 동네 마실가는 차림새가 아닌가? 클클클. 라이더들의 유니폼인 쫄쫄이 바지에 헬멧, 복면형 마스크 등 무슨 운동이든 장비 먼저 선수급으로 챙기는 '가오형 라이더'는 다행히 없었다. 한 시간 남짓이면 도는 동네 둘레 길을 히말라야라도 정복할 복장을 하고 나서는 사람들을 보면 헛웃음이 나던 터였기에.

서로의 구닥다리 자전거를 흘끔거리며 낄낄대던 멤버들의 생활 자전거 5대는 상쾌한 호수 바람을 맞으며 줄줄이 달렸다. 몇 차례 나오는 깔딱 고개에서 가장 젊은 친구만 기아 힘으로 올라설 수 있었고, 나머지는 내려서 끌고 올라가야 했지만 그럼에도 모두 중단하지 않고 목표한 구간을 완주했다.

완주 후 점심을 먹으며 한 멤버 왈, "어려서 자전거 한 번 탈라치면, 처녀막이 터지네 어쩌네 하며 겁주는 통에 못 탔잖아요. 완전 속았지. 이제 다시 타야겠어요. '몸 쓰기 퍼포먼스'가 바로 이런 거 아니겠어요?" 그렇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엔 마음뿐 아니라 몸의 주체성도 있었다.

우연히 다시 자전거 본능을 일깨운 나는 이후로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은 탄다는 목표를 세우고 실행 중이다. 가장 난코스는 집 아래 대로에서 아파트까지 올라오는 약 100m 되는 경사로인데(한 45도 정도?), 몇 주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김훈이 <자전거 여행>에서 굽이굽이 고개를 넘으며 자전거를 '갈며' 넘는다고 한 말이 있다. 몸을 자전거에 딱 붙이고 맷돌을 타듯이 몸을 갈며 마침내 '깔딱' 넘어섰다. 와우!!! 

80 고령의 할아버지 라이더를 신문에서 보고 혀를 내두른 적이 있었다. 경탄이 나오지만, 나는 이 할아버지처럼 80이 넘을 때까지 자전거를 타겠다든지, 김훈처럼 자전거로 백두대간을 종주하겠다는 등의 원대한 꿈은 꾸지 않는다. 그저 눈이 많이 내리기 전까지 내 조촐한 자전거와 함께 부지런히 달려 보려 한다.

방금, 쫄쫄이 유니폼을 입은 라이더의 폼 나는 자전거가 내 옆을 빠르게 스치며 지나간다.

"가라. 내 질주 쾌감은 경쟁하며 얻은 것이 아니니. 나는 나만의 속도로 달릴지니."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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