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효심이 담긴 화성 용주사를 다녀오다

등록 2018.11.07 16:31수정 2018.11.0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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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에 수원 시내에서 34번 버스를 타고 화성에 있는 용주사와 융건릉을 다녀왔다. 용주사는 신라시대(854년)에 갈양사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 하지만, 갈양사는 고려시대에 원의 침입 때에 소실되었다. 

이후 용주사는 조선시대인 정조시대인 1790년에 다시 지어졌다. 용주사는 정조와의 인연이 깊다. 정조가 사도세자의 무덤을 새롭게 만들고, 이 무덤을 만든 인력을 동원해서 용주사를 만들었다. 이후 용주사는 융릉과 건릉을 관리하는 사찰이 된다.
 

용주사 입구 홍살문 ⓒ 여경수


  
용주사는 사도세자와 정조의 위패를 모신 호성전(護聖殿)이 있다. 여느 사찰에는 없는 홍살문이 용주사 앞에 있는 이유이다. 정조는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의 은혜에 관한 설법인 부모은중경을 들었다.

정조는 부모은중경 내용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목판본도 만들었다. 부모은중경 목판본은 용주사에서 보관 중에 있다. 용주사의 이름도 정조가 지었다고 전해진다. 정조가 대웅보전 낙성식 전날에 용이 여의주를 품은 꿈을 꾼 이후, 절의 이름을 용(龍)자와 여의주를 뜻하는 주(珠)자를 합해서 용주사로 정했다고 한다.
 

용주사 삼문 ⓒ 여경수

  
사천왕문을 지나면 용주사의 대문인 삼문이 보인다. 삼문은 궁궐 양식의 문이다. 삼문 옆으로 행랑이 줄지어진 줄행랑이 있다. 삼문을 지나면, 천보루가 있다. 천부루를 받치고 있는 돌기둥이 정감스럽다.
 

용주사 대웅보전 ⓒ 여경수


천보루에서 대웅보전을 보면 대웅보전의 윗부분을 볼 수 있도록 건축했다. 대웅보전 불상 뒤에는 단원 김홍도가 제작한 불화가 걸려 있다. 용주사 건립 때 지은 대웅보전은 보물(제1942호)로 지정되어 있다.
 

용주사 범종 ⓒ 여경수


용주사 안에는 국보로 지정된 범종(국보 제120호)이 있다. 이 범종의 윗 부분에는 용통과 고리에는 용이 한 마리가 있다. 이러한 양식은 신라후기와 고려초기의 한국식 범종의 양식이다. 용주사 범종은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용주사가 만들어 진 이후, 종각을 만들어서 이 범종을 용주사가 관리하고 있다.

이 범종에는 선녀가 하늘에 내려오는 그림이 새겨져 있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천년의 세월이 넘는 동안, 수 많은 이들이 하늘을 나는 선녀의 모습에 감탄을 했을 것이다. 용주사 옆에는 사도세자(후에 장조로 추존)와 정조의 묘인 융릉과 건릉이 있다. 지금 이맘때는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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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힘이 되는 생활 헌법(좋은땅 출판사) 저자, 헌법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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