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다급한 전화 "노니 알아? 요니 아니고 노니!"

내가 외국식재료를 국내산으로 대체해서 요리하는 이유

등록 2018.11.12 08:48수정 2018.11.1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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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너트가 그렇게 좋다며? 하루에 5개씩만 먹으면 그렇게 좋단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호들갑스러운 전화다. "어,어, 그래? 알았어~ 먹을게"라고 대충 얼버무린다. 견과류를 많이 사용하는 요리를 가르치는 나는 브라질 너트라는 걸 처음 들어본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 엄마의 식재료 정보를 따라갈 재간이 없다.

요즘 건강이 화두가 되면서 몸에 좋다는 다양한 식재료들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둔갑되는 경우가 많다. 일부 방송에서 그것만 먹고 건강이 회복되었다는 기적같은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재연되고 영양사, 의사, 약사들이 설명을 덧붙여준다.

그렇게 방송을 타게 되는 듣도 보도 못한 식재료들이 하루아침에 국보급으로 귀인 대접을 받게 된다. 더 희한한 것은 다음날 즉시 각종 홈쇼핑에서 그 식재료들은 멋지게 포장해 '방송 사상 최초 1+1 이보다 더 저렴할 수 없다'고 외친다. 건강한 삶을 위해 반드시 구입하도록 끈질기게 설득한다.
  

가능한 한 집 앞 마트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어야 되고, 제철 식재료를 최대한 이용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작업한다 ⓒ 손하영


채식 요리를 외국에서 배운 나 역시 이 요리를 위해 필요한 많은 것들이 수입재료들이었다. 카카오가루, 코코넛, 아몬드, 호두, 캐슈너트, 토마토 가루뿐만 아니라 각종 허브까지 해외 직구가 없었다면 쿠킹 스튜디오를 운영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

완성된 요리의 50% 이상을 수입품에 의존하고 있으면서 채식이니, 건강이니 하고 떠들어 되는 나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생채식 요리를 미국에서 배웠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우리나라 식재료로 레시피를 대체하는 작업을 시작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재료 중 대체 불가능한 견과류, 카카오, 코코넛 정도를 제외하고 (이것도 가능한 공정무역을 통해 구매하려고 노력) 가능한 한국 식재료들을 이용하니 사실 거의 대부분 대체가 가능했다. 오히려 더 신선하고 건강하게 접근할 수 있는 요리도 많았다.


간단하게 클릭 몇 번만으로 지구 반대편 물건이 문 앞으로 배달되어오는 요즘이다. 이런 시대에 '신토불이'를 외치며 레시피 한 메뉴마다 머리를 싸매고 공들여 한국의 식재료로 레시피를 수정하고 있다. 가능한 한 집 앞 마트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어야 되고, 제철 식재료를 최대한 이용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작업한다.

사람은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서 자연스럽게 나고 자란 곡식과 채소, 야채를 취하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더운 나라에서는 몸을 식이려고 망고, 코코넛워터 등 열대과일을 주로 먹고, 추운 나라는 말린 고기와 병조림 한 야채, 과일을 먹는다.

비록 요즘은 계절의 차이가 예전같진 않지만 우리는 사계절을 지내는 사람들이다. 봄에는 독소 배출에 도움을 주고 입맛을 돋우는 온갖 봄나물, 여름에는 몸의 열기를 식혀줄 수박과 호박, 가을에는 주렁주렁 열리는 과일들, 겨울에는 무, 배추, 고구마 등 뿌리 작물을 먹는다. 이런 것이야말로 계절의 정기가 가득한 자연스러운 식재료가 아닐까.

하루가 멀다 하고 방송에서 떠들어대는 신기루 같은 슈퍼푸드들은 사실 거의 대부분 우리나라의 아주 평범한 식재료들과 비슷한 것이 많다. 오히려 우리 것이 더 좋은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어 작년에는 씨앗 열풍이 불었다. 아마씨는 오메가3가 풍부하고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함량이 석류의 2000배나 넘는다 하고 치아씨, 바질씨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 청소에 도움을 주고 물에 불려서 올챙이알처럼 먹으면 배도 부르고 다이어트에 최고라 하고 홍보하며 난리가 났다. 햄프씨(대마씨) 역시 최고의 식물성 단백질이며 남성 스태미나 향상에 도움이 된다 하여 열풍이 불었다. 이들은 TV 홈쇼핑, 대형마트에는 물론 동네 구멍가게에 가도 모두 구입 가능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참깨, 들깨, 흑임자, 쥐눈이콩, 한천도 위에서 말하는 효과가 넘치는 식재료이다. 요리를 하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는 식재료가 아닌가? 무엇이 정말 우리 몸에 맞는 것일까?
 

생채식 요리를 미국에서 배웠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우리나라 식재료로 레시피를 대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 손하영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20대 시절 인도에 여행을 할 때 불현듯 식당이 온통 인도 음식점 뿐이란 것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 내국인들은 외식을 해도 인도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다. 아예 다른 나라 음식점이 없었다. 인도 도시인 델리나 뭄바이에서는 간혹 맥도날드 같은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식당이 몇몇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곳에서 99% 인도 음식점만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거리에 널리고 널린 이태리식, 중국식, 일식, 미국식의 식당을 나는 전혀 본 적이 없었다.

오직 그 나라 재료를 이용한 인도 음식만이 외식 음식이기도 했다. 이유를 물으니 인도 사람들은 다른 나라 식재료를 수입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고 한다. 자신에게 가장 건강한 음식은 인도에게 난 재료로 요리한 음식이라고 말했다. 음식과 식재료들의 충분한 지혜를 얻기 위해선 모든 것을 직접 요리하지 않고서는 알기 힘들다는 말도 덧붙인다.

한국 사람은 늘 새로운 것을 원하고 또 빨리빨리 새로운 트렌드가 생겨나길 바란다. 눈만 뜨면 희한한 요리법과 특이한 재료로 인기 있는 새로운 맛 집이 생기고 없어진다. 그것에 크게 열광하고 한 번쯤 접해보고 쉽게 잊어버린다. 그리고 또 새로운 것을 만나면 그만이다. 이런 열풍은 건강 음식과도 연결된다. 새롭고 뛰어난 효능과 맛을 자랑하는 처음 보는 식재료들이 넘쳐나고 그것을 팔기 위해 고분분투한다.
 

우리 식재료가 얼마나 훌륭한지를 관찰하며 요리한다. ⓒ 손하영


이제 나는 이런 것들에게 무관심해지고 있다. 대신, 진짜 슈퍼푸드인 양파, 당근, 감자, 현미, 숙주나물, 시금치, 참기름, 들기름 등 항상 우리곁에 있고 익숙한 이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어떤 효능이 있는지 어떻게 먹으면 좋은지 등 우리 식재료가 얼마나 훌륭한지를 관찰하며 요리한다.

오늘도 지방에 계신 엄마에게 다급히 전화가 온다.

"노니 알어? 노니? 그게 필리핀에서 나는 건데 그렇게 좋단다~ 이거를 가루로 먹던지 아니면 노니즙으로 하루에 한 잔만 먹으며 암세포도 절대 안 생기고 회춘한대! 꼭 먹어야돼! 요니가 아니고 노!니~ 빨리 알아봐고 좀 사서 보내줘봐봐."

나는 엄마에게 '밤마다 먹는 돼지 막창만 안 먹어도 100살까지 살겠다'며 허탈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날 저녁 찬거리를 사러 마트에 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지난주까지 레몬밤이라는 슈퍼푸드가 놓인 자리에 노리 가루가 떡하니 위상을 자랑하며 자리 잡고 있었다.
#슈퍼푸드 #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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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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