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오늘 56주년 소방의 날] 현직 소방관의 일기

등록 2018.11.09 14:28수정 2018.11.09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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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일 오후충북 제천시 왕암동의 한 원료의약품 제조공장에서 난 화재 현장에서 진화에 나섰던 소방관이 바닥에 쓰러져 힘들어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달 초 오전 2시 30분, 잠을 자다 화재출동 벨에 벌떡 일어나 뛰쳐나간다. 여기저기서 대원들이 달려나가는 소리로 고요했던 사무실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다.

난 아직 잠이 덜 깼다. 자면서 꿈을 꾸었던 것 같은데. 화재 출동 벨에 뛰쳐나가는 중에도 그 꿈이 계속 이어지듯 비몽사몽이다. 몸이 무겁다. 다른 때보다 특히 더 피로감이 밀려온다.

아니, 언제부터인가 야간 새벽출동이 너무 힘들어졌다. 가수면을 취하다 출동벨 소리에 갑자기 뛰쳐나가면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는 듯한, 억지로 머리를 쥐어짜는 듯한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런 고통이 언제부터인가 견디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몸이 버텨주길 바랄 뿐이다. 무전기에서 현장 상황이 송출된다. 지하주차장 화재다. 비좁은 차 안에서 서둘러 장비를 챙겨 입던 대원들이 긴장한다.

"지하실 화재다. 면체(얼굴에 쓰는 호흡보조장치) 확실하게 쓰고, 혼자 다니지 말고 짝지어서 다녀라!"

대장이 한마디 한다. 지하층 화재는 소방관들에게 두려운 존재다.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이 어둡고, 한 모금만 들이켜도 정신을 잃을 농연이 가득한 현장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직감적으로 대원들의 머릿속에는 현장이 그려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감정과 두려움들 말이다.

다들 현장에서 부산하게 움직인다. 시커먼 매연에 방화복이 얼룩졌고, 면체를 썼던 직원의 얼굴에도 까맣게 그을음이 묻었다. 50분용 산소통으로 부족해 여기저기서 산소통을 교체하는 직원들이 눈에 띈다. 그만큼 지하층 화재는 두렵다. 아차 하는 순간에 세상을 등질 수 있다.

새벽 4시 30분께, 화재가 진압됐다. 희생자가 한 명 발생했다. 구조할 당시 아직 맥박은 뛰고 있었다지만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희생자가 자살 시도로 차에 번개탄을 피웠던 것이 화재로 이어졌다.

내가 변한 걸까
     
현장을 마무리한 대원들이 펌프 차량에 올라탄다. 방화복에 묻었던 특유의 매캐한 그을음 냄새가 차 안에 진동한다.

"담배를 다시 피워야 할까 봐요. 오늘 그동안 끊었던 매연을 한꺼번에 마셔버렸으니."

대원 하나가 웃으며 이야기한다.

"이 사람아, 담배에 비하겠어? 지금까지 내가 피운 담배 10배를 오늘 하루에 다 마신 것과 똑같을 걸."

대장이 말을 잇자 차 안 대원들이 모두 웃는다. 귀소 후, 언제 또 닥칠지 모를 출동에 대비하기 위해 장비를 재정비했다. 누구 하나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약간의 생동감까지 느껴진다.

그렇게 난 근 20년을 현장대원으로 근무했다. '힘들어서 소방관 못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최근까지는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이날도 그랬다. 대원들이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왜 이럴까. 예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최근엔 대원들이 안쓰럽고, 소방관이라는 내 직업을 떠올리면 자기연민에 휩싸여 울적해진다. 

내가 변한 걸까. 젊었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제는 새벽 출동이 너무도 힘들다. 나도 모르게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이제 나이를 먹어서 내 몸이 견디질 못하는구나. 이런 직장 환경이 힘들구나. 이러다 쓰러지면 어떻게 될까."

2014년 김범석 소방관이 혈관육종암에 걸려 7개월 만에 사망했다. 유가족은 직업적 연관성이 있다며 순직 인정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현재 법정 다툼이 진행 중이다. 곧 결론이 날 예정이지만 희망적이진 않다. 인천에 똑같은 질병으로 투병 중인 소방관이 있다. 김영국 소방관이다. 그는 살아있지만 공상 처리가 될지 알 수 없다.

소방관으로 근무하는 동안 중증 질환에 시달리는 동료를 어렵지 않게 접해왔다. 최근 5년간 원인을 알 수 없는 중증 질환에 시달리는 소방관이 151명(2017년 진선미 의원실 자료)이란다.

나는 온몸으로 위험을 체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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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6일 오후 세종시 새롬동 신도심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불이나 소방대원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잠을 자지 못하고 교대근무를 하는 노동자에 대한 외국 연구 결과나 생체리듬 파괴가 인체에 심각한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2017년 노벨생리학상 수상 연구 내용 같은 걸 접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는 소방관으로 살면서 온몸으로 모든 위험성을 체감하고 있다. 현장 활동 중 사고로 갑자기 순직하거나, 직업적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 어느 날 찾아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삶을 살고 있다. 오십을 앞두고서야 내 몸이 말해주는 불안과 두려움을 들었다. 내게 미안할 뿐이다.

<보이지 않는 고통>이라는 책을 쓴 캐런 메싱은 노동 현장을 누비며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 고군분투한 과학자다. 그는 열악한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노동자의 질병에 과학적으로 접근했지만, 그 방법이 결코 노동자들의 환경을 낫게 하진 않았다고 고백했다. 오히려 노동자보다 고용주에게 이로운 쪽으로 악용됐다고 했다. 그의 말을 상기하지 않아도 난 그런 현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고 김범석 소방관이나 김영국 소방관의 질병을 두고 직업적 연관성 인용 판결을 망설이는 법원이나 정부기관이 원망스러운 마음은 감출 수가 없다. 적어도 연관성이 없다는 게 확실하지 않다면, 미국처럼 소방관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고려하는 제도를 도입하면 되지 않을까. 미국은 '중증질환 인과관계추정법'에 따라 소방공무원의 중증질환은 공무상 질병으로 인정된다. 국가가 소방관의 고통을 폭넓게 헤아려주길 희망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까.

56주년 소방의 날이다. 알 수 없는 질병으로 명예퇴직한 한 선배가 생각난다. 이제 막 입사한 내게 항상 '씨'자를 붙여가며 존칭해주던, 참 점잖고 믿음직스러운 선배였다.

"저기 혹시 신 주임님 생존해 계신가요?"
"응. 아마 요양병원에 있지?"
"그 선배, 공상 처리 못 받았죠?"
"응, 소뇌 위축증... 그런 거였던 것 같은데. 그땐 신경도 못 썼지."


요즘따라 몸이 더욱 거부하는 담배를 꾸역꾸역 피워 허공에 날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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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소방관 서울소방근무,전)소방발전협의회장,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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