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해산결정, 헌법재판소가 만든 또 하나의 과거사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⑧] 이미 정해놓은 결론을 향해 일도매진 한 헌재

등록 2018.11.08 17:33수정 2018.11.0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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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9일, 이진성·김이수·김창종·안창호·강일원 등 5명의 헌법재판관이 임기(2012~2018)가 만료되었습니다. 이로써 막을 내린 헌법재판소 5기 재판부는 헌법재판으로 분류된 위헌법률심판, 탄핵 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신청사건 및 특별사건 등 여섯 가지 종류의 재판을 모두 다루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5기 재판부가 내린 결정 가운데 시민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흥했거나 기대에 못 미쳤던 판결을 골라 <판결비평 헌재 5기 특집>을 진행합니다. 5기 재판부에 대한 판결비평을 통해 새로 임기를 시작하는 차기 재판부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특집 여덟 번째로 헌법재판소가 2014년 12월 19일에 내린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한 비평을 한상희 교수가 집필하였습니다. 이번 결정은 대법원조차 부정하였던 R.O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통합진보당의 강제해산이라는 결론을 향해 일도 매진 한 결정이라고 비판하며 외국의 사례와 함께 우리 헌법에 위헌정당해산제도가 들어오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봤습니다.
통합진보당 해산 (별칭 :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사건) / 사건번호 : 2013헌다1
재판장 박한철 재판관 이정미 김이수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 

'정당의 무덤'으로 불린 터키 헌법재판소는 세속주의와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26개의 정당을 해산시킨 것으로 악명 높았다. 터키조차 유럽연합 가입을 모색하던 2008년, 헌법재판소는 이슬람주의를 내세워 원대 최대 다수의석을 확보한 정의개발당(AKP)에 대해 해산이라는 극단적 방식 대신 국고지원금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그 '위헌성'을 응징하는 방법으로 선회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학살이 단행됐다. 

2014년 12월 19일 박근혜 정부가 최대의 권력을 휘두르던 헌법재판소는 254페이지(헌재판례집 기준)나 되는 결정문을 통해 대한민국 체제를 파괴하려는 북한과 대치 중인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통합진보당을 강제해산시키는 한편, 소속 국회의원 5명에 대한 의원직을 박탈하였다. 

독재의 길을 치닫던 이승만 정권이 1958년 강력한 정적이었던 조봉암을 사법살인하고 그의 진보당을 강제해산시킨 바로 그 시절로 민주주의가 뒷걸음질 치는 바로 그 장면이 재현된 것이다.

이미 정해놓은 결론을 향해 일도매진 한 헌법재판소

결정의 요체는 '주도세력', '퍼즐 맞추기', '숨겨진 목적'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에 있다. 당시 통합진보당은 수만 명의 당원과 함께 '진보적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합법적 정당이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진보적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내세우던 주도세력들의 이념적 성향 및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주도 세력으로 30여 명을 선별한다. 주도 세력들은 통합진보당의 창당이나 활동을 주도한 사람들이 아니라 '숨겨진 목적'을 찾기에 적합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선택된다. 그리고는 이들의 발언이나 활동들을 하나하나 조각내어 전체의 큰 그림에 맞추어 나간다. 

당시 정부 측 참고인은 헌법재판소의 구두 변론 과정에서 '퍼즐 맞추기'를 실현했다.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음모(이후 선동으로 바뀜) 사건에서 대법원조차 부정한 RO(지하혁명조직)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했다. 그것을 중심으로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의 강제해산이라는 결론을 향해 일도 매진했다. 


'북한식 사회주의'라는 판단 또한 마찬가지다. 정당을 강제 해산하기 위해서는 해당 정당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을 초래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주도세력이 말했던 저항권이나 민중 주권론을 언급하고 당원이 개인적으로 거론했던 식민지 반자본주의론까지 끌어들여 혁명론과 연계시켰다. "통합진보당의 숨겨진 목적이 북한의 그것과 전체적으로 같거나 매우 유사하다"는 임기응변식의 짜 맞추기 논법은 "발가락이 닮았다"는 식의 어정쩡한 결론을 만들어냈다.

통합진보당이 폭력성의 혁명을 추구해 위험하다는 논리가 아니었다. 헌법재판소의 순환 논법은 이들을 해산하기 위해 구체적 위험성이 있어야 하고, 그 위험성이 있어 보이는 발언들을 추려내어 보니 이런 저런 발언들이 있었고 그래서 위험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현실이 되어 버린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 결정이 내세운 비례성판단 또한 흠투성이다. 정당 해산은 어쩌지 못하는 최후의 순간에 비로소 가능한 조치다. "현재 우리 사회의 정치적 공론장이 적절하게 작동하고 그 정당의 정치적 위험성을 상당 부분 견제할 수 있다"면 맡겨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범죄행각이 드러나기도 전에 씨앗을 제거해버리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 장면처럼 원칙을 과감하게 저버린다. 헌법재판소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시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사회에서 헌법재판소는 시민들이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공론의 장 자체를 무시하고 배제해 버렸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터키 헌법재판소조차도 정당 해산을 이유로 소속 의원들의 자격을 획일적으로 내치지 않았다. 의원들이 위헌적 활동에 얼마나 개입했는지를 별도로 심사해 자격 여부를 심사했다. 하지만 우리 헌법재판소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정당 해산 결정의 취지와 목적을 실효적으로 확보하기 위해'라는 명분으로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에 대해 징벌을 가하였다. 입법자인 국회가 법률로 정하고, 법률이 없으면 의원직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헌법재판소는 스스로 입법자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법정 의견에 유일한 반대의견을 냈던 김이수 재판관은 "경미한 오류들이 축적되어 거대한 논리적 비약을 만들어 내고 혹여 그에 기초하여 정당 해산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면, 이는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 있어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 말은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우리 정치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근혜 체제는 '점진적 쿠데타', '연성쿠데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통치술을 구사했다. 그러나 촛불 시민의 분노와 압박에 밀려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당했다. 통합진보당 해산은 박근혜 정권이 구사한 회심의 일격이자 동시에 자충수였다.

실제 우리 헌법에서 위헌정당해산제도가 들어오게 된 것은 4·19 민주혁명 이후 3차 개헌을 통해서였다. 그것은 이승만의 독재체제에서 진보당이 강제해산 된 전례를 반성한 결과였다. 일반적인 결사의 자유보다 더 강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시대적인 요청을 반영한 것이다. 그래서 신나치주의의 발호를 막고 동서 냉전체제 하에서 희생양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국가사회주의당이나 독일 공산당을 해산시킨 독일의 경우라든가 혹은 아타투르크의 혁명이념을 전승하기 위하여 분리주의 정당이나 이슬람 정당을 해산시킨 터키 등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진다.

독일식 방어적 민주주의를 앞세워 나쁜 정당을 해산시키겠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정치적 다양성에 터 잡은 민주주의를 위해 나쁜 정당이라도 특별히 보호하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헌법적 결단을 저버리고 말았다.

한국 민주주의를 해산하다

헌법재판소가 심판한 것은 통합진보당이 아니라 헌법 그 자체였다는 비판도 가능해진다. 이 결정은 '악마는 각론에 숨어 있다'는 구태의연한 법률 속담을 그대로 재현한다. 결정문의 도입부는 '입헌적 민주주의'라든가 '민주적 기본질서'의 의미와 관련해 거창한 헌법 이론이나 장밋빛 정치지형들을 그려낸다.

어떤 사유에서도 통합진보당은 해산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정작 통합진보당에 관한 구체적인 판단이 이루어지는 각론은 이런 총론을 과감하게 배신한다. 사실관계에 대한 자의적인 선별작업과 그 의미에 대한 지레짐작, 자의적인 유추해석, 짜 맞추기에 충실하였던 논증, 그리고 당연한 결과로서의 해산 결정.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낭독한 "통합진보당을 해산한다"는 결국 "한국 민주주의를 해산한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2014년 12월 19일은 헌법재판소가 우리 헌정사에 남겨둔 또 하나의 과거사로 내내 회자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슬로우뉴스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블로그에 중복게재되었습니다. 이 글의 필자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입니다.
#참여연대 #판결비평 #헌법재판소 #정당해산 #통합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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