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와중에 '태양세'까지... 스페인이 주춤한 이유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34] 스페인의 경험 (하)

등록 2018.11.12 20:46수정 2018.11.12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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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거리는 태양과 풍성한 바람. 이런 천혜의 조건에 혁신적 기술까지 갖췄던 스페인의 재생에너지 산업을 내리막길로 떠민 것은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였다.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과 함께 전 세계로 번진 금융위기는 대서양 건너 스페인에서도 부동산 거품을 터뜨리며 금융과 실물경제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위기극복을 위한 정부의 긴축 정책은 태양열, 풍력 등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을 대대적으로 축소시켰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재생에너지 산업 강타

2008년 당시 스페인을 이끌고 있던 사회당(PSOE)의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58) 총리는 2004년 집권 이후 재생에너지 산업의 전성기를 만든 인물이다. 그는 원자력 발전의 단계적 폐지를 공약하고 정권을 잡았으며 대안으로 재생에너지를 집중 육성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지속가능발전'을 주창해온 미국 사상가 제러미 리프킨(73)을 경제자문으로 두기도 했던 그는 스페인을 유럽 재생에너지의 선두주자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사회당 사파테로 총리의 재생에너지 육성 정책은 스페인의 태양열·풍력 전성시대를 열었으나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로 암초에 부닥쳤다. 사진은 안달루시아 지방 그라나다시 외곽의 안다솔 태양열 발전소. ⓒ 제정임

  
사파테로 정부는 평균전력가격(AET)에 가중치를 더하는 방식으로 풍력과 태양광(열)을 지원했는데, 태양에너지의 경우 가중치가 240~575%나 됐다. 당연히 관련 설비가 급증했다. 스페인의 태양에너지 설비용량은 2003년 27메가와트(MW)에서 2008년 약 3000MW로 늘었는데, 이는 정부가 당초 목표로 했던 '2010년까지 400MW 건설'의 8배 가까이 되는 것이다. 정부가 보조금으로 지급해야 할 돈도 그만큼 급격히 늘었다. 

금융위기로 기업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쏟아지는 와중에 재생에너지 보조금으로 많은 세금을 쓰기는 어려웠다. 사파테로 정부는 2008년 9월 26일 '왕실훈령(Royal Decree)1578'을 통해 태양광(열) 보조금의 한도(quota)를 정하고 지원기간을 대폭 줄였다. 2010년에는 다시 기준가격을 낮추고 지원받을 수 있는 발전시간을 제한했다. 또 신재생에너지를 포함한 모든 발전원에 전력망 접속요금 명목으로 메가와트시(MWh) 당 0.5유로의 세금을 부과했다.

중도우파로 정권교체, 태양열·풍력 더 찬밥 신세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하고 국민의 원성이 커지자 사회당은 2011년 총선에서 중도우파 국민당(PP)에게 정권을 뺏긴다. 국민당의 마리아노 라호이(63) 총리는 이른바 피그스(PIIGS: 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를 강타한 유럽재정위기의 혼란 속에서 재생에너지 산업에 더욱 가혹한 정책을 단행한다. 신규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해서는 보조금 지원을 하지 않기로 2012년 1월 발표한 것이다.
 

유럽재정위기의 소용돌이 속에 집권한 국민당 정부는 재생에너지 지원 중단 외에도 재정긴축과 노동보호 후퇴로 시민들의 저항에 부닥쳤다. 2012년 3월 스페인 북부 팜플로나시에서 반정부 시위 도중 진압경찰에 쫓겨 달아나는 시민들. ⓒ Flickr

  
그해 6월 유럽연합(EU)에 1000억 유로(약 130조원)의 구제금융을 신청한 후에는 재정확보를 위해 신재생에너지를 포함한 모든 발전원에 5~7%의 전력세를 부과했다. 2013년 7월에는 재생에너지의 판매가격을 보장해주던 발전차액지원제(FIT)를 폐지해 태양열·풍력산업에 결정타를 날렸다.

악시오나(Acciona), 가메사(Gamesa), 아벵고아(Abengoa) 등 세계 정상에서 경쟁하던 스페인의 재생에너지 기업들은 자국 내 경영환경이 나빠지면서 경쟁력을 잃고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2008년 13만6163명이던 신재생에너지 종사자는 2014년 7만750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특히 태양에너지와 풍력 분야의 타격이 컸다.


 

스페인의 신재생에너지 관련 종사자 추이(좌)와 에너지별 종사자 추이. 2008년 경제위기 이후 태양에너지와 풍력 분야를 중심으로 뚜렷한 감소세를 보였다. ⓒ 스페인 신재생에너지협회, 한전경제경영연구원

 
라호이 정부는 2015년 한 발 더 나아가 '태양세(Sun Tax)'를 도입했다. 태양에너지 자가발전에 전력망 사용 비용 분담을 이유로 세금을 매긴 것이다. 이 세금은 기존 자가발전 설비에도 소급 적용됐다. 6개월 이내에 기존 설비에 대한 등록을 하지 않거나 세금을 내지 않으면 최대 600만 유로(약 80억원)의 벌금을 내도록 했다. 태양에너지를 지원하지 않는 것에서 한 발 나아가 '페널티'를 물린 셈이다.

태양세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카운티에서 2011년 도입돼 법적 분쟁을 일으킨 제도로, 다른 나라에서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스페인 마드리드 류재원(53) 무역관장에 따르면,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이 반발하고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가 '재생에너지원에 세금을 부과하지 말라'고 권고했지만 라호이 정부는 도입을 강행했다.

사회당 재집권, 재생에너지 부활 공약과 태양세 폐지 

경제위기, 보조금 삭감, 태양세 부과로 이어진 긴 터널을 달려온 스페인의 재생에너지 기업들에게 지난 6월 국민당 라호이의 실각과 사회당 페드로 산체스(46)의 집권은 '광명'과도 같았을 것이다. 스페인 국민당은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전현직 핵심 당원 29명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자 불신임 절차에 몰렸다. 이어진 총선에서 사회당은 제3당인 포데모스와 연정으로 집권했다.
 

7년 만에 정권을 되찾은 스페인 사회당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 태양세를 폐지하고 보조금부활을 약속하는 등 재생에너지 부흥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 Getty image

  
페드로 산체스 총리의 사회당은 오는 2030년까지 전체 발전량의 30%를 재생에너지원으로 한다는 목표를 35%로 상향 조정하고 재생에너지 보조금 제도를 되살리겠다고 약속했다. 또 논란이 됐던 태양세를 지난 10월 폐지했다. 그러나 연정으로 집권한 사회당이 의회에선 여전히 소수정당이기 때문에 국민당 등의 반대를 뚫고 재생에너지 부흥을 이룰 수 있을지 아직은 단언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지난해 7월까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에너지정책을 총괄했던 우태희(56) 전 산자부 제2차관은 지난 8월 2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선두주자였던 스페인 재생에너지산업이 추락한 것은 지난 10년간 연립정부가 난립하면서 일관성 없는 정책을 펼친 탓"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에너지정책은 긴 안목을 가지고 꾸준히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전력거래소 전력거래처 신시장개발팀 이재혁 차장은 지난 2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스페인 재생에너지 산업은 정부지원 축소 및 폐지로 침체를 맞은 뒤 이를 해소하기 위한 계획들을 수립하는 상황"이라며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장기적으로 수립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 준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단비뉴스 #환경시리즈 #재생에너지 #스페인 #에너지대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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